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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유럽 옛말…끊어진 하늘길에 러 극동 교민 시름

연합뉴스 입력 05.23.2022 09:19 AM 조회 413
생계 걱정에 귀국 고민…러시아 환자들도 치료 못 받아 발 동동
기지개 켜던 교류 흔들…양국 지자체 뱃길 복원 논의, 낙관 일러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국제공항





'가장 가까운 유럽'은 이제 옛말입니다. 언제쯤 한국을 편하게 오가는 날이 다시 올까요…"

우크라이나 사태로 두 달 넘게 한국과 러시아 극동을 연결하는 하늘길이 막히자 발이 묶인 우리 교민 등의 시름이 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후 어렵사리 열린 하늘길이 기약 없이 다시 끊기자 기지개를 켜려던 관광산업과 각종 교류 활동 등도 움츠러들고 있다. 

◇ 닫혀버린 하늘·바닷길에 교민들 한숨

한국과 러시아 극동 간 하늘길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020년 3월에 닫혔다.

이후 2021년 5월 러시아 아브로라(오로라)·시베리아(S7) 항공 2곳이 인천∼블라디보스토크 노선 정기 운항을 재개했고, 대한항공과 에어부산 등 우리나라 항공사 2곳은 지난 1월 25일과 2월 5일 각각 정기 항공편을 투입했다.

하지만 지난 2월 24일 우크라이나 사태가 터지자 러시아 항공사들은 서방 제재 여파로 항공기를 모두 철수했다.

대한항공과 에어부산도 운항 재개 한 달여만인 지난 3월 8일을 끝으로 인천∼블라디보스토크 노선 운항을 중단했다.

유일한 대안인 강원도 동해∼블라디보스토크 뱃길은 코로나19 영향으로 2020년 3월부터 여객 운송을 중단한 상태다.

해당 노선을 오가는 카페리(여객·화물 겸용선)는 이후 화물만 실어나르고 있다.

이처럼 잠시 숨통을 틔워줬던 인천∼블라디보스토크 간 항로가 재차 끊기자 러시아 극동에 사는 교민들은 각종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연해주를 비롯해 하바롭스크주, 사할린주 등 러시아 극동에는 우리 교민 600명가량이 살고 있다.

지난 3월 90세 노모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에 한국으로 갔던 한 교민은 최근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오기 위해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해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러시아 모스크바 등을 경유해야 했다.

인천과 블라디보스토크는 항공기로 2~3시간 정도 거리지만, 직항로가 없는 까닭에 이틀가량을 비행기와 공항 등에서 보내야 했다.

지난 22일 오후에도 블라디보스토크 국제공항에서는 한국으로 가기 위해 경유지인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행 항공기를 타는 한국인들을 볼 수 있었다.

코로나19 후유증이 채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하늘길이 또 막히자 생계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다.

관광업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지자체·기업과 현지 바이어를 연결해주는 컨설팅·마케팅업체 등 분야에서 일하는 교민들은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이상수 러시아 연해주 한인회장은 "코로나에 이어 우크라이나 사태로 하늘·바닷길이 모두 막히자 한계상황에 직면한 일부 교민은 아예 한국으로 돌아가려 한다"고 말했다.

연해주 등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의 경우 사업에 필요한 각종 서류를 국제우편으로 제때 받지 못하는 등의 불편을 겪고 있다.

현지 러시아인들도 피해를 보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의료여건이 우수한 한국에서 큰 수술을 받고 돌아온 극동지역 중증 러시아인 환자들은 오랜 시간 항공기를 탈 수 없는 까닭에 다시 한국을 찾아 후속 검진을 받거나 추가로 약 처방을 받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런 까닭에 일부는 급한 마음에 우리 교민들에게 대신 약을 구할 수 있는지를 수소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의료관광 체험하는 러시아인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 의료관광 타격·교류 흔들

굳게 닫힌 하늘길은 우리 교민·기업뿐만 아니라 되살아날 기미를 보이던 각종 교류 활동에도 타격을 주고 있다.

의료관광 분야도 이 같은 사례 가운데 하나다.

23일 한국관광공사 블라디보스토크지사에 따르면 우수한 기술과 편리한 시설 덕분에 한국 의료관광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선호도는 높다.

코로나19 팬데믹 전인 2018년 한국을 찾은 러시아 환자는 2만7천185명으로 그해 전체 외국인 환자(37만8천967명)의 7.2%를 차지했다.

지난 2월에도 러시아인 120명이 수술, 건강검진 등을 목적으로 블라디보스토크 국제공항을 출발해 한국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직항로가 끊기면서 추가 관광객 모집은 중단됐다.

이런 까닭에 블라디보스토크지사에는 '언제쯤 한국으로 다시 갈 수 있는지'를 묻는 현지 러시아인들의 문의 전화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수년 동안 연해주와 활발한 교류를 이어온 경북도는 올해 들어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연해주 사무소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 양국 지방정부 뱃길 복원 논의…낙관 일러

하늘길이 끊긴 상황은 러시아 극동지역 우리 교민들의 생활과 다양한 교류사업 등에 피해를 주고 있지만, 우크라이나 사태 등을 고려할 때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국토교통부 측은 "교민들이 불편을 겪는 사실은 파악하고 있으나 현재로서는 뚜렷한 방안이 없다"며 "서방 제재 영향으로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직항로가 언제 재개될지는 알 수 없다"고 밝혔다.

다만 양국 지방정부 차원에서 돌파구를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교민들은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있다.

지난 4월 초 러시아 연해주 정부는 하늘길이 막힌 상황에서도 인적 교류 등을 이어가기 위해 강원도에 카페리 여객 운송을 재개하자는 제안을 했다.

이에 따라 연해주 정부와 강원도,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한국총영사관 등이 모여 회의를 열기도 했다.

앞서 지난 3월에도 블라디보스토크·사할린주·하바롭스크주 등에 체류하는 우리 국민 70명이 특별 편성 여객선을 타고 한차례 강원도 동해항에 들어온 바 있다.

그러나 여객 운송 재개에 대한 최종 결정은 결국 양국 중앙정부 판단에 따른 것이라 긍정적인 결과를 속단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특별 여객선 타고 귀국한 러시아 교민들 [연합뉴스 자료 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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