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올림픽)은 놓쳤지만 그대신 닭(아시안게임)이라도 -
현재 중국의 항저우에서 아시안게임이 한창이다.
3년뒤에는 일본의 나고야에서 차기 대회가 열리게 된다.
나고야는 한국의 영원한 라이벌인 일본에서 3번째로 큰 도시이며 중부 아이치현에 속해있다.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던 해태 타이거스의 에이스 선동열 투수가 나고야에 본거지를 둔 주니치 드래건스에서 90년대 후반 맹활약, 한인팬들도 익히 알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선동열 외에 '삼손' 이상훈, '바람의 아들' 이종범도 나고야돔에서 주니치의 파란색 유니폼을 입고 뛰었다.
나고야는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대도시다. 그렇지만 관동지역을 대표하는 수도 도쿄, 관서지방의 대표주자이자 재일동포가 가장 많이 거주하는 오사카에 밀려 국제적으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같은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나고야는 지난 1981년 지역개발과 홍보강화를 위해 야심차게 여름올림픽 유치 경쟁에 나섰다.
1972년 뮌헨대회는 아랍 테러조직 '검은 9월단'의 이스라엘 인질 살인사건 때문에, 1976년 몬트리올대회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인종차별 항의 보이콧으로 얼룩졌다.
이에 그치지 않고 1980년 모스크바대회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의 불참, 1984년 LA올림픽은 소련 등 공산권의 보복 보이콧에 따라 여름올림픽은 존망의 위기에 처했다.
또 천문학적인 경기장 건설비용으로 적자가 쌓이며 아무도 올림픽 개최를 희망하지 않은채 초반에는 나고야 단독으로 입후보했다. 그러나 광주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고 총칼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이 정통성 확보를 위해 1988년 올림픽 입후보를 결정, 한일간의 2파전으로 돌변했다.
당시 스페인 출신인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낙후된 한국은 이번에 올림픽을 유치하려고 입후보했다는 점에 만족해야 할 것"이라며 노골적으로 일본편을 들었다.
그러나 1981년 독일의 휴양도시 바덴바덴에서 실시된 투표에서 정주영 현대회장이 로비를 벌이며 아프리카-남미표를 독식한 한국은 52-27로 나고야를 꺾고 88서울올림픽을 성대하게 치러냈다.
충격에 빠진 일본은 2021년 도쿄에서 두번째 올림픽을 개최했지만 코로나 사태에 따라 무관중으로, 1년 늦게 열리며 의미가 반감됐다.
42년전 투표에서 서울에 일격을 당한뒤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나고야는 뒤늦게 2026년 여름 아시안게임 개최로 지역발전을 꾀하게 됐다.
1994년 히로시마 대회이후 32년만에 처음으로 일본땅에서 내년 9월19일~10월4일 제20회 아시아드를 열게 된 것이다.
만약 35년전 여름 올림픽이 서울이 아닌, 나고야에서 벌어졌다면 대한민국 위상이 지금처럼 커졌을지 의문이다.
올림픽을 서울에 빼앗긴채 대신 아시안게임을 치르게 된 나고야.
한자어로 '명성있는 오래된 집'이란 뜻처럼 제2의 도약을 이룰지 여부에 관심이 모아진다.
88서울올림픽 개최지 투표서 뼈아픈 역전패후 와신상담
3년뒤 나고야 아시아드 유치..'뒤늦게 지역발전' 위안
3년뒤 나고야 아시아드 유치..'뒤늦게 지역발전'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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