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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퇴직자가 본 평범한 이웃들…영화 "실버맨"

연합뉴스 입력 06.07.2023 09:05 AM 조회 1,553
진지한 문제의식보다는 잔잔한 감동·웃음에 주력
영화 '실버맨'의 한 장면 [이놀미디어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구청 공무원으로 30년 동안 일하다가 퇴직했다. 유일한 동반자인 아내는 세상을 떠났다.

혼자 사는 집에서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뭘 하지?' 하고 골똘히 생각한다.

영화 '실버맨'은 61세 퇴직자 '순철'(김정팔)의 이야기다.

외로운 나날 속에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도 고민하던 그는 어느 날 꿈결에 아내를 만나 마음을 고쳐먹고 '실버맨 심부름센터'를 찾는다.

면접에서 언쟁을 벌인 순철은 일자리를 얻진 못하지만, 이곳에서 악착같이 일하는 한 살 연하의 무뚝뚝한 '탁배'(박상욱)를 만난다. 그리고 무작정 그를 따라나선다.

순철이 탁배를 좇는 건 남의 일에 참견하길 좋아하는 '오지랖' 탓이라지만, 그 밑엔 외로움이 깔린 듯하다.

대답도 잘 안 해주는 사람에게 시시콜콜 캐묻는 순철의 모습에서 누군가와 한마디라도 섞어 보려는 욕망이 느껴진다.

그가 탁배의 몸짓을 따라 하는 건 사소한 것이라도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은 사람의 몸부림처럼 보인다.

그렇게 두 실버맨의 여정이 시작된다. 영화는 이들의 여정을 좇는 로드 무비가 된다.

순철과 탁배가 만난 사람들은 산업재해로 숨진 일용직 노동자의 유족처럼 우리 사회의 약자이거나 평범한 이웃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잔잔한 감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여기에 순철과 탁배의 '티키타카'가 웃음을 더한다.



영화 '실버맨'의 한 장면 [이놀미디어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안타고니스트'(주인공과 대립하는 인물)는 보이지 않는다. 진지한 문제의식으로 대립 구도를 만들고 갈등을 폭발시켜 무언가를 드러내는 것은 이 영화의 목적이 아닌 듯하다.

산재 피해자 유족을 만난 순철은 그 아픔에 깊이 공감하면서 공무원의 경험을 발휘해 피해를 보상받을 절차를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영화는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실버맨'을 연출한 최윤호 감독은 지난 5일 시사회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두 실버맨이 만난 사람은 다 약자들"이라며 "그런 사람들이 모인 세상이 아름답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극 무대와 스크린을 오가며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 김정팔은 이 영화에서도 빼어난 연기를 펼친다.

혼자 있을 땐 누구보다 외롭고, 사람들 속에선 참견하길 좋아하며, 가끔은 멋진 아이디어로 감동을 선사할 줄도 아는 퇴직자를 그는 인상적으로 연기했다.

'실버맨'은 2019년 제작됐지만,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스크린에 못 올리다가 4년 만에 개봉하게 됐다.

영화의 대부분이 경기도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 일대에서 촬영됐다. 촬영 시점인 늦가을의 정취는 잔잔한 감동을 추구하는 영화에 맞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14일 개봉. 98분.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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