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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지 않으면 죽어요"…감정노동자 현주소 그린 "불멸의 여자"

연합뉴스 입력 03.22.2023 09:22 AM 조회 1,921
연극 무대를 그대로 스크린에 옮겨
영화 '불멸의 여자'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사랑합니다, 고객님."

희경(이음 분)은 화장품 브랜드 '앙주 가르디앙' 매장에서 일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매장 방침에 따라 고객을 웃으며 상대하는 그는 '불멸의 미소 천사'로 불리는 우수 사원이다.

희경의 모범적인 근무 태도 뒤에는 파견직이라는 고용 형태가 자리 잡고 있다. 고객 항의로 언제든 해고당할 수 있는 희경은 입꼬리를 힘껏 올릴 수밖에 없다.

평소와 다름없이 동료 직원 승아(이정경)와 함께 일하던 어느 날, 희경은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아이크림을 구매한 고객 정란(윤가현)은 화장품을 사용한 뒤 오히려 눈가 주름이 더 늘어났다며 반품을 요구한다.

희경은 신상품을 챙겨주겠다는 말로 고객을 달래보지만, 정란은 매장을 찾아와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화를 낸다.



영화 '불멸의 여자'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불멸의 여자'는 화장품 판매사원 희경이 손님의 갑질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영화는 희경을 통해 감정노동을 강요받는 노동자, 고용 불안에 놓인 파견직 사원의 현실을 신랄하게 꼬집는다. 희경은 "우린 웃지 않으면 죽어요. 하지만 웃으면 웃을수록 더 죽고 싶어져요"라고 말한다.

또 여성 노동자가 겪는 어려움을 가감 없이 보여주기도 한다. 희경은 소위 '단정한 용모'를 유지하기 위해 하지정맥류를 앓고 있음에도 굽 있는 구두를 신고 일한다. 승아는 정규직이 되기 위해 지점장 성필(안내상)의 성희롱을 웃으며 받아준다.

동명의 희곡을 각색한 만큼 연극 무대를 그대로 스크린에 옮겨낸 듯한 연출 기법도 흥미롭다. 출연진도 성필 역의 안내상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 작품으로 연극 무대에 올랐던 배우들 그대로를 캐스팅했다.

영화는 텅 빈 무대 위를 핀 조명 하나가 비추며 시작되는데, 러닝타임 내내 무대 뒤 검붉은 커튼은 그대로 남아있다. 인물들도 무대 위를 벗어나지 않으며, 연극에서나 볼 법한 긴 독백과 방백도 자주 등장한다.



영화 '불멸의 여자'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러나 극단적인 클로즈업 등 독특한 촬영 기법, 배우들의 몰입감 넘치는 연기는 이 작품이 연극 무대 위에서 진행된다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 인디밴드 '3호선 버터플라이'의 멤버로 활동했던 성기완 음악감독의 즉흥 연주를 효과음으로 삽입해 현장감을 더하기도 했다.

연출을 맡은 최종태 감독은 시사회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제가 연극을 했었기 때문에 연극의 재미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그 재미를 살려야만 이 영화가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했다.

다만 그는 "무대에서 관객과의 거리 때문에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을 때론 섬세하게, 때론 더 폭발적으로 전달해내려 했다"면서 "연출적으로는 1920∼1930년대 독일 표현주의 영화들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영화 '불멸의 여자'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최 감독은 또 대출까지 받아 가며 제작비를 충당했다면서 부천에 있는 극장에서 6일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모든 장면을 촬영했다는 뒷얘기도 전했다.

"단 1분의 틈도 없이 완전히 초집중해서 한정된 자원으로 영화를 완성했어요. 배우분들, 원작자분, 스태프분들의 헌신 덕분에 탄생할 수 있었어요. 안내상 씨는 담배 두 보루만 받고 큰 몫을 해주셨죠. 이 작품이 꼭 잘 돼서 어떤 식으로든지 보답이 됐으면 합니다."

내달 5일 개봉. 87분.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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