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초창기인 90년대 초였을 것이다.
퇴근시간이 훨씬 지난 9시쯤 자리를 정리하던 중에 전화벨이 울렸다.
몇 번이나 “여보세요?”를 해도 상대는 말이 없었다.
잘못 걸려온 전화인가 싶어 “끊겠습니다.”고 한 후
전화기를 놓으려는데, 망설이는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라도 됩니까?”
“네? 소리가 잘 안들립니다. 좀 크게 말씀해주시겠어요?”
“이혼녀라도 됩니까?”
순간 상황 파악이 되었다. 이혼한 여성이 상담전화를 한 것이다.
“물론입니다...”
“며칠 고민했습니다. 이혼녀는 자격이 없을까 봐요.”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직접 뵙고 설명을 드릴께요.”
다음날 바로 사무실을 찾아온 여성을 만났다.
이혼한지 7-8년 되었다는 그녀는 많이 지쳐있었다.
30년도 안된 일인데, 옛날 같다.
그만큼 지금과는 이혼을 대하는 방식과 생각이 달랐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이혼에 대한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당사자는 당당하지 못했고, 이혼사실을 숨겼다.
주변의 시선이 따가웠고, 사회생활에도 불이익이 따랐기 때문이다.
그러니 재혼하기도 힘들었다.
본인이 돈 내고 이용하는 결혼정보회사인데도 회원으로 받아준 것을 오히려 고마워했다.
이혼자들을 많이 접하면서 다수의 칼럼을 통해 이혼의 심각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혼자들의 만남을 모색하기 위해 공개적으로 만남 행사를 진행했다.
이혼을 일반화시킨 것이다.
당시 이혼이 얼마나 금기시되었으면 행사 자체가 큰 뉴스가 되었다.
1990년대 중반의 일이다.
이렇듯 20세기와 21세기의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는 이혼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일 것이다.
직장인 A씨는 얼마 전 친구로부터 모바일 청첩장을 받았다. 새혼이었다.
“청첩장을 주는 친구나 저나 분위기가 자연스러웠어요,
친한 친구 5명 중에 3명이나 이혼을 했어요.”
이혼자들도 이혼한 사실을 애써 숨기지 않는 경향이다.
이제 ‘돌싱’이라는 말은 거의 생활용어가 됐다.
이혼이 많아지는 것을 우려하던 시절에서 이제는 이혼의 후유증을 최소화하고
사회의 건강성을 찾는 방향으로 이혼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참으로 격세지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