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책을 읽는 이유, 무용과 문학의 만남 “ 성역 ” 리뷰
매달 첫째 금요일 저녁 6시 30분, 진발레스쿨에서는 낭만 독서 모임이 열린다. 이 모임은 8년째 이어져 오고 있으며, 매달 한 권의 고전을 읽고 토론하는 시간을 갖는다. 나는 독서 모임 덕분에 책을 끝까지 읽는 습관을 들일 수 있었고,
다양한 문학 작품을 접할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책장 가득 모인 책을 볼 때마다 느껴지는 행복감은 나만의 작은 성취이자 소중한 보물이다.
책 한 권,
한 권이 쌓일 때마다 나의 생각과 감성이 더욱 풍부해졌으며,
이는 발레를 가르치는 일과 창작 활동에도 영감을 주었다. 또한,
지난18년 동안 1,140회의 진최의 무용 이야기 칼럼을 쓸 수 있는 동기가 되었다.
낭만 독서 모임은 단순히 책을 읽는 시간을 넘어, 문학을 통해 삶을 나누고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는 따뜻한 공간이 되었다.
2월의 선정 도서는 윌리엄 포크너의 『성역(Sanctuary)』이었다.
낭만 독서 모임에서 이미 포크너의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As I Lay Dying)』와 『압살롬, 압살롬!(Absalom,
Absalom!)』을 읽었기에, 이번 작품도 쉽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성역』은 결코 쉽게 읽히지 않았으며, 작가는 독자에게 설명을 제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앞뒤 연결이 모호한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하여 불친절한 포스트모더니즘적 특성을 드러냈다.
『성역』은 인간의 본능과 욕망, 폭력과 구원의 경계를 날카롭게 탐구하는 작품이다.
나는 책을 읽을 때마다 소설 속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 들며,
머릿속에서 이미 영감을 얻어 무대 위에서 펼쳐질 또 하나의 이야기를 무용으로 상상하며 탄생시킨다.
무용은언어를 뛰어넘는 예술로,
몸짓 하나하나에 내면의 이야기가 담긴다.
『성역』이 던지는 인간의 본질적 질문 또한 춤으로 충분히 표현될 수 있다.
주인공 템플 드레이크의 혼란과 두려움은 격렬한 움직임과 절제된 정지를 통해 형상화되며,
발레의 아다지오에서는 불안과 갈망이, 빠른 알레그로에서는 절망과 혼란이 드러난다.
포크너가 묘사한 인간의 복잡한 내면은 무용수의 몸짓을 통해 새로운 해석을 얻는다.
또한,
포크너의 세계에서 구원과 절망의 경계는 모호하다. 이 점에서 현대무용의 자유로운 형식은 『성역』의 세계관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데 적합하다.
군무를 통해 인간 군상의 혼란과 욕망을, 솔로 춤을 통해 개인의 고독과 내면적 갈등을 표현할 수 있다. 어둠과 빛의 대비, 정지와 폭발적인 동작을 활용해 감정의 진폭을 극대화할 수도 있다.
나는무용이야말로 『성역』을 새롭게 해석하는 강력한 매개체라고 생각한다.
언어로 담 아내기 어려운 감정의 깊이를 몸짓으로 표현하고,
음악과 조명, 무대 연출을 더하면 한 편의 살아 있는 시가 탄생할 것이다.
『성역』이 보여준 인간의 욕망과 구원,
파멸과 희망의 이야기는 무용을 통해 더욱 강렬하고 아름답게 펼쳐질 수 있다.
한편,
포크너가 창조한 가상의 지역인 요크나파토파 군(County)은 그의 여러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미국 남부의 역사,
문화,
사회적 갈등, 그리고 인간 본성을 깊이 탐구하는 중요한 배경이 된다.
이는 단순한 지리적 설정을 넘어,
보편적 인간성을 탐구하는 문학적 장치로 활용된다. 이와 비슷하게,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 년의 고독』에서는 마콘도(Macondo),
조지 오웰의 『1984』에서는 오세아니아(Oceania),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Lord
of the Flies)에서는 외딴섬이 등장하며,
이는 각각 문명의 붕괴와 인간 본성의 어두운 측면을 상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독서 모임에서 읽은 책들 속에서 공통된 흐름과 주제를 발견할 때의 기쁨은, 마치 혼돈 속에서 숨겨진 질서를 발견하거나 무수한 퍼즐 조각들이 하나로 맞춰질 때 느끼는 깨달음과도 같다.
이처럼문학 속 가상의 공간들은 특정 시대와 사회를 반영하는 동시에,
인간 본성과 보편적 감정을 탐구하는 무대가 된다.
독서는 단순한 정보의 습득을 넘어,
이러한 공간을 발견하고 해석하는 지적 탐험의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가 문학을 통해 가상의 세계를 탐색하는 순간,
그 공간은 더 이상 허구가 아니라 우리의 사고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철학적 개념이 된다.
『성역』을 읽으며 이러한 문학적 기법을 다시금 되새길 수 있었고,
무용이라는 예술을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할 가능성을 고민해 볼 수 있었다. 나의 시점의 성역은 어디인가? 나의 유토피아는 어디인가? 나는 누구인가?
독서는 단순한 이해를 넘어 나 자신을 탐구하는 과정이고, 춤은 그 탐구의 결과를 몸으로 표현하는 또 다른 언어다.
그러기에 나에게 책을 읽는 행위는 곧 춤을 위한 영감이며,
춤은 문학을 다시 해석하는 나만의 철학적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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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무용연합회. 진발레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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