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년 전, 나는 여행사를 통해북유럽을 돌다 폴란드의 아우슈비츠수용소를 방문했다. 그때만 해도여행의 즐거움에 아무 생각없이 들떠 있었다.
버스 창밖으로 스치는 유럽의풍경과 초콜릿 향기,
웃음소리 속에서 “이게 바로낭만이지!” 하며 신나게 다녔다. 그런데 일정표에 있던한 줄, ‘아우슈비츠 수용소방문’이 내인생의 방향을 바꿔놓을 줄은몰랐다.
철문 위에는 “노동이 너희를자유케 하리라(ARBEIT MACHT FREI)”라는 문구가 걸려있었고, 그 안에는 가스실의차가운 벽과 빈틈없이 긁힌손톱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사람들이 마지막숨을 몰아쉬며 벽을 향해남긴 절규의 흔적이었다.
그곳엔 사람의 흔적이 아니라사라진 생명의 냄새가 남아있었다. 나는 그 앞에서한동안 숨을 쉴 수없었다. 여행의 들뜬 마음은순식간에 사라지고, 인간의 잔인함이내 가슴을 쳤다.
그날 이후로 나는 고통을예술로 기억해야 한다는 생각을품었다.
몇 년 전,
가족과 함께 베트남을 찾았을때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평화로운 해변과 휴양지로유명한 그곳 한편에는 베트남전당시의 코코넛 감옥 포로수용소가 남아 있었다. 녹슨 철창과 고문도구, 벽에 남은자국들을 마주하며 나는 또다시인간의 잔혹함과 마주했다.
예술은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그것을 기억으로 바꾸는일이라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 를 읽으며 그 감정은 다시 되살아났다. “죽은 자들이 산 자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가.” 그 문장은 내 발레 인생의 주제와 닮아 있었다. 한강 작가는 동호라는 어린 중학생 인물을 통해 광주 항쟁의 비극을 담담히 그려내며, 우리가 잊고 싶어 했던 고통을 다시 마주하게 한다. 그는 세상을 떠난 이들의 목소리를 빌려, 우리가 어떤 삶의 진실을 잊지 말아야 하는지를 묻는다.
나 또한 매년 열일곱 살의 유관순을 발레로 무대 위에 불러낸다.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향해 외쳤던 그녀의 목소리를, 발끝과 몸짓으로 되살려내기 위해서다. 내게 그 무대는 단순히 슬픔을 재현하는 자리가 아니다. 죽음이 다시 생명으로,
고통이 다시 예술로 변하는 순간이다.
한강의 “흰” 속흰색은 단순한 밝음이 아니다. 그것은 상실과 비어있음, 그리고 죽음의잔향을 품은 색이다.
나는 그 색을 발레의흰 튀튀와 겹쳐 보았다. 지젤의 윌리,
백조의 호수의 백조들,
라 바야데르의 섀도우.
죽은 여인들의 영혼이 흰의상을 입고 군무를 이루는장면들이다. 이것이 바로 흰색의발레 블랑, 죽음과 슬픔, 그리고 초월의 아름다움을품은 무대다. 그 흰색은순수의 상징이 아니라 슬픔을통과해 얻은 빛이었다.
한강의 작품을 읽다 보면문장은 숨 막히고 어둡다. 읽다 보면 나역시 그 무게를 함께짊어지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벼가 익으며 고개를 숙이는무게와 같다. 깊이 생각한다는건 세상을 조금 더낮은 자세로 바라본다는 뜻이니까. 발레에서 “어깨를 눌러라, 몸을 짓눌러라”라고 하듯,
삶도 바닥을 눌러야 진짜부드러움이 나온다. 힘을 주되부드럽게, 고통을 안고 아름답게. 예술은 바로 그긴장 속에서 태어난다.
책을 읽는 일은 내게또 다른 발레의 연습이다. 움직임이 아니라 생각으로춤추는 시간이다. 예술이란 상처를기억으로, 기억을 춤으로 바꾸는행위다. 그 작업을 하는사람들이 바로 예술가이며,
그들의 손끝에서 죽은 자들의이야기는 다시 살아난다.
예술은 오늘도 우리 마음을비추는 또 하나의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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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발레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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