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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주지 못한 어른들 절대 용서마라”

주형석 기자 입력 04.23.2014 05:41 AM 조회 3,345
세월호 참사 8일째인 오늘(4월23일), 경기 안산올림픽기념관 실내체육관 임시 합동분향소에는 추모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몰려들었다.

특히 합동분향소 추모게시판은 어른들이 학생들에게 띄우는 '사죄'의 메시지로 가득 찼다.

이번 사고가 철저한 인재(人災)로 드러난데다 사고 후 정부의 구조작업이 원활히 이뤄지지 못하면서 죄 없는 어린 학생들이 어른들의 잘못으로 희생된 데 대한 죄책감과 안타까움이 온 나라를 깊은 슬픔에 빠뜨리고 있다.

“애기들아 미안하다 우리 어른들 잘못이다”, “너희들을 지켜주지 못한 이 나라 어른들을 절대 용서하지 마라”, “우리 어른들이 너무 부끄럽구나”, “꽃 같은 우리 아이들 엄마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합동분향소 추모게시판에 남겨진 글들은 하나같이 죄책감에 가득찬 어른들의 반성문이었다.

이 같은 국민적 죄책감은 조문열기로 이어졌다.

안산 단원고 학생들과 교사들 47명의 영정과 위패가 안치된 임시 합동분향소는 거대한 울음바다로 변했다.

오전 9시부터 시작된 조문행렬은 곧바로 체육관 앞 인도까지 길게 늘어졌다.

4열 행렬은 저녁 퇴근시간 이후 몰려드는 조문객들로 어느새 두 배로 크게 늘어났다.

한국 시간 오늘(4월23일) 저녁 8시 현재 8,140명의 시민들이 전국에서 모여 내 일처럼 목 놓아 울며 희생자들 넋을 기렸다.

당고개에서 왔다는 한 50대 아주머니는 밥이 맛있는 것조차도 미안하고 눈뜨면 눈물이 계속 나서 울다 자다 울다 자다 병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수원에서 온 23살 남자 대학생은 어른들의 이기심 때문에 어린 학생들이 희생된 것이라 생각한다며 내 잘못 아닌가, 내 무관심 때문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왔다고 말했다.

특히 이웃 학생들 수백 명을 차디 찬 바다에 떠나보낸 안산시는 집단적 트라우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모습이다.

지역 사찰과 교회 등 종교단체, 동호회, 그리고 학생들의 단체 조문이 줄을 이었다.

안산시 보문선원 연합합창단 소속 65살 한 단원은 자식 키우는 사람들 마음이 똑같지 않겠느냐며 안산시 전부가 집안에서 웃음이 사라졌다고 전했다.

안산 단원구 초지동에 사는 55살 주부 정모씨는 분향소 건물 앞에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정씨의 조카 친구가 이번 사고로 실종됐고, 남편 직장 동료 2명도 자녀를 잃었다.

정씨는 몇날 며칠 밥도 못 먹고 멍하니 뉴스만 보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나왔는데 막상 마음이 더 안 좋다고 말했다.

정씨는 내 동네에서 이러니 내가 사고를 당한 것 같고 우리 애들이 저러면 어떨까 마음이 아프다며 피해를 당한 애들 부모들이 시화·반월공단에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인데 지금 다 일손 놓고 진도에 내려가 있어 일터도 쑥대밭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일부 조문객들은 긴 시간을 통곡하다 탈진으로 쓰러지거나 주저앉아 고통을 호소했다.

분향소에는 적십자사와 경기도 자원봉사단 등이 상주하며 탈진하는 조문객들의 건강을 체크하는 등 돕고 있다.

또 안산 올림픽기념관 실내체육관 앞에는 안산·경기지역 의사·약사 봉사단으로 구성된 경기도·안산시 의료지원센터가 꾸려져 조문객과 유가족들에게 심리치료와 의약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의료지원센터에서 봉사 중인 50대 약사는 도시 전체가 초상집이라며 안산 분위기를 전했다.

특히 이번 사고로 친구를 잃은 어린 학생들은 잠을 못 자거나 밥을 못 먹는 등 심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지원센터 측은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이 부모이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이번 참사를 내 일처럼 느끼면서 쉽게 공감하고 아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슬픔이 사회적 신드롬, 우울증으로 발전하지 않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함께 아픔을 나누고 위로하고 있다는 공감대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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