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에 도착하기까지>
모피 사냥꾼과 모피 상인들은 태평양 해안까지 가지 않는 관계로 셔터는 영어와 스페인어를 말하는 인디언 하나를 고용하여.
가이드로 삼아 1838년 8월 중순에
콜럼비아 강을 따라 내려가서 지금의 워싱턴 주에 도달할 수가 있었다.
셔터는 컬럼비아 강의 뱅쿠버 요새에 도착하자마자 모피회사 지부장인 제임스 더글라스(James Douglas)에게 캘리포니아로 가겠다는 자신의 심정을 밝혔다.
그러자, 더글라스는 지금은 계절적으로도 산맥을 넘기에는 무리가 있음을
시사하고는
그 지역에는 캘리포니아로 향하는 길도 없거니와 이제 곧 겨울이 오면 얼어죽거나 굶어죽기 십상이라고 만류하였다.
그래서 셔터는 제임스 더글라스 집에서 당분간 숙식을 하며 겨울을 나기로 하였다.
셔터는 더글라스를 마치 군대의 사령관 대하듯이 깎듯이 대하는 바람에 서터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훗날, 더글라스는 당시의 심정을 토로하였다.
더글라스는 마침 회사에서 운영하는 하와이 상선의 출항 날짜가 결정되자, 셔터에게 하와이를 거쳐서 캘리포니아로 들어가는 것이 어떠냐고 넌지시 물었다.
마다할 이유가 없자 셔터는 1838년11월 11일, 상선 콜럼비아 호에 탑승하여
하와이로 출항하였다.
그리고 12월 9일에 하와이에
당도하게 되었다.
하와이에 있는 동안 셔터는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이 프랑스 관할 스위스 장교 출신이라며 전쟁에 얽힌 수많은 무용담을 열거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는 거기에서 수개월을 묵으면서 영국과 미국의 외교관들과 친분을 쌓았을 뿐만 아니라
당시 하와이 국왕으로부터 군사 교관의 지위까지 얻어내서 하와이 군사 훈련을 책임맡기도 했다.
셔터가 하와이를 떠나 캘리포니아로 가려하자 국왕은 그에게 열 명의 하와이언들을 부하로 동행시키기까지 하였다.
이 같은 자신에 대한 선전이 효과를 내어서, 하와이에 주둔중인 유럽의 무역 회사들로부터 그의 캘리포니아 정착에 필요한 자금으로 3000달러의
크레딧을 따낼 수 있게 되었을뿐만 아니라, 회사들은 셔터를 위해서 죤 블린(John
Blinn)이라는 선장을 고용하여
크레멘타인이라는 배에 무역 상품을 싣고 러시아 소유의 알라스카를 경유한 캘리포니아 행을 주선해 주기까지했다.
1839년 4월 하와이를 출발한 클레멘타인 호는 러시아 소유의
알라스카의 수도이며 러시안 아메리칸 모피 회사의 본사가 있는 시트카(Sitka)에 도착하였다.
러시안 아메리칸 모피 회사는 바다 표범이나 물개의 가죽을 중국에 수출하는 회사로,
그들은 또한 캘리포니아의 샌프란시스코 북쪽 지역에 그들의 전진 기지인 로스 요새(Fort Ross)를 소유하고 있었다.
시트카에서 셔터를 반긴 사람은 아메리칸 모피 회사의 최고 지위에 있는 이반 쿠프레이아노브(Ivan Kupreianov)였다.
그는 셔터를 위해 궁중 스타일로 환영 파티를 열었으며 그의 가족을 일일히 소개까지 하였다.
여기서도 셔터는 자기의 군대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으며 더군다나 프랑스 군복으로 말쑥히 갈아입은 그의 모습은 정말 누가 봐도
늠름하고 멋져 보였다고 한다.
이반 쿠프레이아노브는 셔터에게 캘리포니아의 정착지로서 새크라멘토 골짜기를 추천했으며
이들은 또한 이들이 소유한 로스 요새[Fort Ross]에 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셔터는 알라스카에 머무는 동안 캘리포니아에 관한 많은 정보를 얻음과 동시에 현재의 멕시코 정치 상황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시트카에 머문지 한 두달 정도가 지나자 셔터는 마침내 목적지인 캘리포니아로 향하게 되었던 것이다.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