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멘타인(Oh My Darling, Clementine)'은 1800년대 중반에서 후반, 특히 1849년 캘리포니아 골드러시 시기에 미국 서부로 몰려든 광부들, 즉 '포티나이너(Forty-niner)'들에 의해 만들어진 미국의 민요라고 전해진다.
이 노래는 특히, 골드러시 시대의 혹독하고 비극적인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1848년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사금이 발견되면서 미국 전역은 물론 유럽, 남미, 중국 등 전 세계에서 수십만 명이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캘리포니아로 몰려들었다. 이 시기가 바로 '골드러시'로 불리는 시기이다.
1849년부터 본격적으로 금 채굴에 뛰어든 사람들을 '포티나이너'라고 불렀는데, 이들은 대부분 금을 찾아 온 개척민들이었으며, 이들 중에는 농민, 노동자, 상인, 심지어 거지와 목사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금을 캐는 일은 매우 고되고 위험한 노동이었는데, 광부들은 동굴과 협곡에서 금을 찾아 땅을 파헤치며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영양실조, 질병, 인디언(원주민)의 습격 등으로 인해 많은 광부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하루 종일 뼈가 부서지게 일하고도 쉴 곳이 마땅치 않았으며, 허술한 그들의 천막에는 독사가 출몰하기도 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포티나이너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가혹한 노동에 시달렸지만, 실제로 큰돈을 번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고, 광부들의 피땀으로 얻은 황금은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의 자본가들의 배를 불리는 경우가 많아, '캘리포니아 드리밍'은 허망한 꿈일 뿐이었다.
급격한 인구 증가는 캘리포니아를 1850년 정식 주로 승격시키는 데 기여했지만, 동시에 법과 질서가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혼란스러운 상황을 초래했으며, 금 매장지를 차지하기 위한 원주민 학살과 심지어 식인까지 일어났던 암울한 역사도 존재한다.
많은 광부들이 가족을 떠나 서부로 향했기 때문에, 가족과의 단절과 그리움은 이 시대 사람들의 보편적인 정서였다.
'클레멘타인' 노래는 이러한 골드러시 시대의 비극적이고 현실적인 모습을 담고 있는데, 우리나라에 알려진 가사는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 있네"로 시작하여 클레멘타인의 비극적인 죽음과 아버지의 슬픔을 이야기하지만, 이는 1919년경 음악가 박태원이 번안한 한국어 가사로 전해진다.
원곡 가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골드러시 시대의 현실을 더욱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In a cavern, in a canyon, excavating for a mine, Dwelt a miner, forty-niner, and his daughter Clementine."
(어느 깊은 골짜기 동굴에서, 광물을 캐던 포티나이너 광부와 그의 딸 클레멘타인이 살았다네.)
이는 광부들이 살았던 열악한 환경과 그들의 신분을 명확히 보여준다.
클레멘타인이 물에 빠져 죽는 상황이 묘사되는데, 이는 당시 위험했던 생활 환경과 예기치 못한 사고에 대한 두려움을 반영한다. 특히, 노래의 주인공이 수영을 하지 못해 클레멘타인을 구하지 못했다는 구절은 당시 열악한 상황 속에서 무력했던 개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클레멘타인의 죽음 이후, "Then the miner, forty-niner, soon began to peak and pine. Thought he oughter 'jine' his daughter, Now he's with his Clementine1." (그러자 포티나이너 광부는 곧 여위고 수척해지기 시작했고, 그도 자기 딸과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지, 이제 그는 그의 클레멘타인 곁에 있다네.)라는 가사를 통해 딸을 잃은 아버지의 절망과 죽음을 암시하며, 골드러시 시대의 비극적인 가족사를 표현한'다.
즉, '클레멘타인은 단순히 슬픈 이야기뿐만 아니라, 골드러시라는 거대한 사회적 현상 속에서 개인이 겪어야 했던 어려움, 생존의 투쟁, 그리고 삶의 허무함을 담고 있는 민요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럼, 이제 클레멘타인의 원곡을 함께 들어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