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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사진관 - 북간도 윤동주 생가

남원희 기자 입력 05.26.2019 11:25 PM 수정 05.26.2019 11:26 PM 조회 2,719
<내 고향 사진관> - 북간도 윤동주 생가

청년 윤동주가 꿈꿨던 고향, 북간도의 명동촌 고향 생각이 날 때면 밤하늘의 별을 보며 새로운 길을 찾고자 했던 디아스포라 시인, 그는 참회록을 통해 나라를 잃은 국민으로서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라며 부끄러움에 몸들 바를 몰라 고통스러워했다.

윤동주(1917년 ~ 1945년)는 중국 연변 용정에서 명동소학교와 은진중학교를 다니다 서울 연희전문학교로 유학을 가며 고향과 이별을 고했다.

그 후 일본에서 유학을 하다 28세의 젊은 나이에 “죽은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중략)” 괴로워하며 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는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했고 새로운 길을 떠났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내일도....(중략)”

시인 윤동주는 평생 고향을 그리워했다. 생전에 그는 유명 시인도 아니었고 독립투쟁의 목소리를 높이던 열혈청년도 아니었다. 하지만, 일제의 가혹한 시대 상황 속에서도 반드시 여명은 오리라 믿었다.  

그가 남긴 100여 편의 시는 진실한 자기성찰을 바탕으로 참다운 인간의 본성을 되새기는 시로 오늘날까지 해맑은 영혼의 징표로 감동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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