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전쟁의 결말>
한 편, 1846년, 3월 텍사스의 리오 그란데 전선에서 참담한 패배를 맞이했던 멕시코군은 삼삼오오 분산되어 후퇴하기에 이르렀다. 승승장구하며 멕시코를 남하하는 미군을 상대하기에는 멕시코의 전력은 너무나도 미약했었다.
리오 그란데 전투 이후, 멕시코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몬테레이 전투와 부에나 비스타 전투에서 치열한 교전은 있었지만 이 교전에서도 승리한 미군은 멕시코 시티로 향하게 되었고,
이듬해인 1847년, 3월에는 미 해군 병력이 베라쿠루스 항구에 상륙하여 멕시코 시티로 행군해 나가자 멕시코는 패색이 짙어졌다.
결국, 미 해군 병력이 파죽지세로 멕시코 시티까지 쳐 들어가 수도를 점령하자 멕시코는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미국과 멕시코의 전쟁도 결말이 나서 1848년 2월 2일 과달루페 이달고 (Guadalupe Hidalgo) 조약이 체결되었다.
미국과 멕시코 전쟁이 끝났음에도 주 멕시코 미군이 계속 멕시코 시티의 주둔을 꾀하자 점차적으로 멕시코 국민들의 반발이 일며 미군의 철수라는 요구가 들끓기 시작했다.
당시의 미군복 색깔이 초록색 이었는데 green go home!이라는 뜻으로 그링고(Gringo)라는 단어가 생성되어 오늘날에도 미국인을 얕잡아 부를 때 멕시코 국민들은 ‘그링고’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텍사스, 뉴멕시코, 아리조나, 유타, 네바다 그리고 콜로라도의 일부지역이 미국의 영토가 되었고 멕시코는 자기 영토의 반을 잃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러나 전쟁에 승리한 미 행정부의 최초의 요구사항은 지금의 국경선이 아닌 바하 캘리포니아 전체와 치와와 주가 속한 지역으로 국경선을 만들고 그 아래 부분은 동강내어 멕시코 지역과 유카탄 지역으로 두 개의 위성 국가로 만들자는 것이었는데 뜻하지 않게도 미 의회 야당의 심한 반발에 부딪치게 되어 결국 불발이 되고 말았다.
이로서, 포크 대통령은 숙원 사업의 하나이며 선거 공약의 완성품으로 태평양까지의 대륙을 석권하는 캘리포니아까지로 만족해야 했다.
이 번 전쟁을 통하여 멕시코는 5만명의 생명을 잃었으며 미국은 전체 참전 용사 중 40%만이 집으로 돌아 갈 수가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