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이상 중매 일을 했는데도 남녀관계는 알쏭달쏭하다는 생각을 하는 때가 있다.
그 남성 역시도 수수께끼 같은 사람이었다.
그는 조건이 좋아서 만남은 잘 이루어지는데, 이상하게 결혼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소개를 여러 번 했지만 늘 비슷한 지점에서 멈췄다.
50대 후반의 그는 젊어 보였고, 외모와 분위기도 준수했다.
50평대 아파트에 거주하며 안정적인 전문직 라이선스를 갖고 있었고,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일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또 자녀들은 유학 중이었고 각자 거주할 집이 마련되어 있어 재혼 후 동거 부담도 없었다.
경제력, 환경, 이미지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재혼 시장의 킹카’였다.
성격도 무난했다. 매너가 있었고, 말투도 부드러웠다.
상담 자리에서 그는 “좋은 사람 만나 빨리 결혼하고 싶다”고 했다.
나 역시 이 정도면 충분히 좋은 상대를 만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내가 직접 알고 있는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의 수준 있는 여성들을 소개했다.
첫 번째 만남은 디자인 계통에 종사하는 세련된 여성이었다.
초반 분위기는 좋았다. 중장년의 만남은 밀고 당기기가 길지 않다.
좋으면 빠르게 진전되고, 아니면 빨리 정리된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여성 쪽에서 거절 의사가 왔다.
두 번째 여성 역시 매력과 자기 관리가 뛰어난 분이었지만 결과는 같았다. 세 번째 만남도 한 달을 넘기지 못했다.
이쯤 되자 ‘인연이 늦게 오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을 넘어, 구조적인 문제가 있지 않나 싶었다.
결국 한 여성에게 조심스럽게 이유를 물었다.
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그는 초반 만남에서 자신의 경제력을 반복적으로 강조했다고 한다.
재산 규모, 수입, 노후 대비 능력 등을 의도적으로 어필했다는 것이다. 재혼 시장에서 경제력은 중요한 요소다.
특히 50대 이후에는 더욱 그렇다. 그 역시 초반에 점수를 확 따고 싶었던 것 같다.
문제는 행동이었다. 데이트는 주로 저렴한 식당, 편의점 음료, 최소 비용 코스였다.
백화점에 함께 가서도 작은 선물 하나 없었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돈을 쓰지 않겠다는 태도가 느껴졌다는 것이다.
여성의 말은 이랬다.
“돈이 많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나와 있을 때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죠.”
“계산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믿음이 생기기 전에 조건을 따지는 사람 같았어요.”
또 다른 여성은 몇 차례 만남 후 관계를 서두르는 태도에서 실망했다고 했다.
충분히 신뢰가 쌓이기 전에 육체적 친밀감을 요구하는 모습이 진지한 재혼 상대라기보다는 ‘확신이 들면 투자하겠다’는 식의 태도로 느껴졌다는 것이다.
남성의 입장은 달랐다. 그는 억울해했다.
“내가 돈을 쓸 만한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면 씁니다.”
“집도 보여줬고, 직업도 솔직히 다 얘기했습니다. 속인 건 없습니다.”
그의 논리는 이랬다. 조건은 충분히 공개했으니, 이제 상대가 자격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관계의 순서는 반대다. 확신이 생긴 뒤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를 쌓기 위해 먼저 태도를 보여야 한다.
특히 그는 초반에 경제력을 크게 강조했다. 기대를 높여놓고 행동이 따라주지 않으면, 상대는 더 크게 실망한다.
만약 애초에 돈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소박한 데이트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기준을 높여놓았기에 그 격차가 더 도드라졌다.
남자는 나이가 들수록 ‘돈=힘’이라는 인식이 강해진다. 늙어도 돈이 있으면 대우받는다고 믿는다. 겉으로는 당당해 보여도, 속으로는 노후와 고립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재산을 내세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한다.
하지만 결혼은 거래가 아니다. 특히 수준 있는 여성일수록 통장 잔고보다 태도와 일관성을 본다. 돈의 크기가 아니라, 그 돈을 대하는 사람의 마음을 본다.
그는 여전히 좋은 조건을 갖춘 남성이다. 그러나 조건은 ‘입장권’일 뿐, 결혼을 보장하지 않는다. 계산이 앞서는 태도, 확신이 생기기 전에는 쓰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은 관계를 시작도 하기 전에 멈추게 만든다.
결국 사람은 자기 그릇만큼의 상대를 만난다. 돈을 강조하면서도 쓰지 않는 태도는 신중함이 아니라 인색함으로 읽힌다. 신뢰를 먼저 주지 않으면서 신뢰를 요구하는 것은 순서가 바뀐 것이다.
그가 미인을 만나지 못한 이유는 조건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조건을 내세우는 방식과 마음의 쓰임이 어긋나 있었기 때문이다. 좋은 만남은 자산의 크기가 아니라, 마음의 크기에서 결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