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
우선,578돌을 맞이하는 한글날과 그 한글로 쓴 한 강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로 부커상에 이어 노벨 문학상의 수상을 축하합니다.
세종대왕과 주시경 선생과,
작가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고 그 의미를 번역하여 전달한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 씨에게도 감사함을 전합니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함으로서 한국의 위상을 한 층 더 올려 놓으신 두 분의 노고에 다시 감사를 드립니다.
역사는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습니다.
어떤 방식이 되었든,
누군가가,
우리의 역사를 다시 쓸 때마다, 우연이 아닌 필연의 선택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만일, 그 때,누군가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그 때의 현재에서 미래였던 ‘우리의 과거’를, 오늘 우리의 현재에서 바라보면서 무릎을 치면서 감탄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려말선초(麗末鮮初)
즉,고려가 끝나가고 조선이 시작되려는 때에 고려의 충신들과 신흥사대부들의 갈등을 통해 무언가를 얻었고, 무언가를 잃었는가?
알아보겠습니다.
우선, 고려에는 삼은(三隱)이라는 충신들이 있었습니다.
목은(牧隱) 이 색, 포은(包隱) 정몽주, 야은(冶隱) 길 재 입니다.
목은 이색은 저물어 가는 고려를 바라보며 자신의 무력함을 한탄하는 시를 남겼습니다.
백설(白雪)이 잣아진 골에 구름이 머흐레라
반가온 매화(梅花)는 어느 곳에 피였는 고
석양(夕陽)에 홀로 서서 갈 곳 몰라 하노라 -목은, 이색-
그렇게 자신의 갈 길을 정하지 못하고,우왕좌왕하는 것을 보고
이방원은 ‘하여가’를 부르면서 회유를 하기도 하고, 겁박을 주기도 하면서 자신들과 함께 ‘역성혁명(易姓革命)’으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자고 합니다.
*하여가(何如歌)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此亦何如 彼亦何如)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城隍當後苑 頹落亦何如)
우리도 이같이 얽혀 백년까지 누려보세 (我輩若此爲 不死亦何如)
그러자, 포은 정몽주는 단심가로 바로 맞받아 칩니다.
*단심가(丹心歌)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此身 死了死了 一百番更死了)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없고 (白骨爲塵土 魂魄有也無)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向主 一片丹心 寧有改理也歟)
그리고,선죽교에서 죽임(음력 1392년 4월 4일,54세)을 당합니다.
‘고려의 멸망(공양왕 4년 1392년 7월16일)’
그렇게 걸림돌을 제거하고 조선을 건국(1392년7월17일 음력))하고 난 후에 한양천도(1394년 10월25일~10월28도착)를 단행하였습니다.
훗날,
야은 길 재는 고려의 개성(開城)을 돌아보며 자신의 심경(心境)을 읊습니다.
오백년(五百年) 도읍지(都邑地)를 필마(匹馬)로 돌아드니
산천(山川)은 의구(依舊)하되 인걸(人傑)은 간 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太平烟月)이 꿈이런가 하노라
하지만, 이렇게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태정태(종)세(종)문단세-예성연중인명선 -광인효연숙경영 -정순한철고순,27명의 조선 왕들.
조선3번 째 왕, 태종,이방원의 아들, 그리고,4 번째 ‘이 도-충령대군’ 이 세종입니다. 장자인 양녕대군의 괴행으로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3남인 충령대군이 왕위(1418년9월9일~1450년3월30일)를 계승합니다. 세종이 조선을 건국하고 태어난 첫 임금입니다.
태종, 이방원을 단순 무식하고 폭력적인 왕으로 알고 있지만, 이방원은 조선의 왕 중에서 유일하게 과거급제,문과급제를 한 수재입니다. 16세인 1382년(우왕8년)에 진사시에 2등으로 합격하였으며, 이듬해인 1383년(우왕9년)에 병과7위로 문과에 급제를 하였습니다.
‘역사의 아이러니’
태종 이방원의 순간의 선택, 정몽주 살해 지시와 세종을 선택한 것은 ‘신의 한 수’로 여겨집니다. 이와 같은 흐름을 보면 , 중국고사에 나오는 ‘만절필동(萬折必東)’, “황하가 아무리 굽이가 많아도 반드시 동쪽으로 들어간다.”는 4자성어에서와 같이 역사에서 거역할 수 없는 불변의 진리같은 느낌을 역사의 결과에서 확연히 알 수 있습니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든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을 피려고
간 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네 겐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 서정주-
노오란 국화가 세종25년 1443년12월28일에 피어서, 세종28년 1446년 9월29일 반포가 되어 세상 밖으로 나왔고, 드디어 한강이라는 작가에 의해 완숙한 노란 국화가 피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훈민정음 본문
訓民正音
國之語音異乎中國, 與文字不相流通。故愚民有所欲言, 而終不得伸其情者多矣。 予爲此憫然, 新制二十八字, 欲使人人易習, 便於日用耳
*언해본
世솅〮宗조ᇰ御ᅌᅥᆼ〮製졩〮訓훈〮民민正져ᇰ〮音ᅙᅳᆷ
나랏〮말〯ᄊᆞ미〮
中듀ᇰ國귁〮에〮달아〮
文문字ᄍᆞᆼ〮와〮로〮서르ᄉᆞᄆᆞᆺ디〮아니〮ᄒᆞᆯᄊᆡ〮
이〮런젼ᄎᆞ〮로〮어린〮百ᄇᆡᆨ〮姓셔ᇰ〮이〮니르고〮져〮호ᇙ〮배〮이셔〮도〮
ᄆᆞᄎᆞᆷ〮내〯제ᄠᅳ〮들〮시러〮펴디〮몯〯ᄒᆞᇙ노〮미〮하니〮라〮
내〮이〮ᄅᆞᆯ〮為윙〮ᄒᆞ〮야〮어〯엿비〮너겨〮
새〮로〮스〮믈〮여듧〮字ᄍᆞᆼ〮ᄅᆞᆯ〮ᄆᆡᇰᄀᆞ〮노니〮
사〯ᄅᆞᆷ마〯다〮ᄒᆡ〯ᅇᅧ〮수〯ᄫᅵ〮니겨〮날〮로〮ᄡᅮ〮메〮便뼌安ᅙᅡᆫ킈〮ᄒᆞ고〮져〮ᄒᆞᇙᄯᆞᄅᆞ미〮니라〮
*현대문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니,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5] 백성이 이르고자 할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할 사람이 많으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가엾이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노니
사람마다 하여금 쉬이 익혀 날로 씀에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이렇게 말 한 마디가 사람을 죽이기도 하지만, 그런 행동엔 받드시 나비효과처럼 미래에 무슨 일이 어떠한 형태로든 결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한 행동엔 반드시 이유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매사에 말과 행동을 조심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삼사일언(三思一言). 세 번 생각하고 한 마디의 말을 하는 신중함을 몸에 배도록 하면 큰 위험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 일례를 들어 보겠습니다.
이태백의 산중문답입니다.
*山中問答(산중문답)-李白(이백;701-762)
問余何意栖碧山(문여하의서벽산)
笑而不答心自閑(소이불답심자한)
桃花流水杳然去(도화유수묘연거)
別有天地非人間(별유천지비인간)
묻노니, 왜 푸른 산에 사나
웃고서 대답은 없지만 마음은 한가로워 보이는구나
복사꽃이 떨어져 아득히 흘러 가는구나
사람사는 세상이 따로 있지 않구나
이태백의 이 시를 보고 많은 해석이 분분(紛紛)합니다.
보통 하는 해석에 따르면,
푸른 산에 산에 사는 이유가 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悠悠自適)하는 삶이라고 해석을 합니다. 물론, 겉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면 그렇게 해석이 될 수 있지만,이 시는 종장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을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이 됩니다.
別有天地非人間(별유천지비인간)
“별천지 따로 없네 여기가 그 곳일세”라고, 해석을 하면 일반적인 자연친화적인 삶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사람사는 세상이 따로 있지 않구나”라고, 해석을 하는 편이 더 이 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이 시를 쓸 당시,
산 속에 사는 이태백을 찾아서 밀사가 옵니다.
조선의 이방원의 ‘하여가’의 뜻을 전하러 온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이 선생(先生)!
우리 함께 정치를 합시다.”란 권유에 “나는 정치에 뜻이 없네”라는 뜻으로 쓴 글귀가 종장입니다. “여기 이렇게 복사꽃이 떨어져 아득히 흘러가는 곳에서 나도 자연인 것처럼 살면 됐지, 뭐 사람사는 세상(부귀영화,권력)이 따로 있습니까?”라고, 은유로서 정중히 거절 한 것입니다.
정몽주는 단심가로 죽임을 당했고, 이태백은 산중문답으로 명(命)을 부지(扶持)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목숨이라는 것이 자기 것이라고 함부로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분명히 생명체로 이 우주에 왔다는 것은 신의 뜻이 있었을 텐데.. 함부로 하면 안된다는 생각을 해본다. 포은 정몽주도 목숨을 아껴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에 일조를 했더라면, 세상은 더 나은 방향으로 전개가 되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듭니다. 하지만, 이태백은 목숨을 부지하여 당송 8대가의 문장가로서 후대에 좋은 시를 남겨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었습니다.
지부장무명지초(地不長無名之草) 땅은 이름없는 꽃을 키우지 않고
천불생무록지인(天不生無祿之人) 하늘은 의미없는 사람을 내지 않는다.
하늘과 땅에 셍명체로 오는 것들은 다 그 의미와 역활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말입니다.
말이 밖으로 나올 때, 가장 위험한 순간입니다.
삼사일언(三思一言), 세 번은 생각하고 신중하게 한 마디를 하는 것을 명심하시고 일상을 살아가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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