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자-장한가4. 권불십년 화무십일홍

글쓴이: 한마당  |  등록일: 08.04.2022 10:42:01  |  조회수: 820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

어양비고동지래
경차예상우의곡
구중성궐연진생
천승만기서남행
취화요요행부지
서출도문백여리
육군부발무내화
완전아미마전사
화전위지무인수
취교금작옥소두

이때 어양에서 북소리가 땅을 울리며 오니
크게 놀라 놀자판의 노랫가락도 끊기고
구중성궐엔 연기 먼지 솟아 오르고
수천 수만 기의 천자행렬 서남으로 떠나네
화려한 깃발 흔들리며 가다가 서곤 하다가
도성문에서 나와 백여리에 당도하자
육군이 아니 움직이니 어쩔 수 없이
눈썹 긴 미인을 군마 앞에서 죽일 수밖에 없었네
땅에 떨어지 꽃비녀 거두는 사람 없고
취교,금작,옥소두 등 장신구들 나뒹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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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한마당  08.04.2022 12:40:00  

    도성문에서 나와 백여리에 당도하자
    육군이 아니 움직이니 어쩔 수 없이
    눈썹 긴 미인을 군마 앞에서 죽일 수밖에 없었네

    이 대목은 '요물' 양귀비를 죽이지 않으면  한 발도 움직이지 않겠다는 신하와 군사들의 항의를 못 이기고
    항제의 눈앞에서 처형을 하는 광경입니다.

  • 한마당  08.04.2022 12:48:00  

    제국 중엽인 755년부터 763년까지, 즉 당현종부터 당숙종, 당대종에 이르는 약 8년 동안 연속적으로 벌어진 대규모 군사반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안사의 난으로 인해 당나라가 아주 작살이 난다. 중국사에 아예 나라가 사분오열되고, 서로 다투는 군웅할거가 워낙 많다보니 안사의 난은 중국 내부의 단기성 전란이라 크게 다가오지 않지만, 실제로는 당나라 최대의 내전으로 현재까지도 역대 중국의 전란 및 동란으로 인한 사망자 순위에서 4위를 기록하고 있는 거대한 사건이다.[4]

    '안사의 난'이라는 이름은 초기 주동자인 안록산(安祿山)과 후기 지도자 사사명(史思明)의 성을 따온 것이며, 사사명을 배제하고 그냥 안록산의 난, 혹은 당시 연호를 따서 '천보(天寶)의 난'으로 부르기도 한다. 당시까지 중국 역대 통일왕조에서 있었던 반란 중 가장 대규모였고, 그 파급력도 가장 컸던 전란으로, 사실상 당제국을 붕괴로 몰고가기 시작한 전란이었다.

  • 한마당  08.04.2022 13:54:00  

    안사의 난(安史之亂, 영어: An Lushan Rebellion)은 755년 12월 16일부터 763년 2월 17일에 걸쳐 당나라의 절도사인 안록산, 부하인 사사명과 그 자녀들이 일으킨 대규모 반란이다. '안사의 난'이란 안록산과 사사명의 첫글자를 따서 지은 이름으로 안록산의 난 또는 천보의 난(天寶之亂)이라고도 한다. 안록산은 나라 이름을 연(燕)으로 하고 스스로 황제(稱帝)라고 선포하고서 9년간 지속했다. 이 기간동안 당나라의 인구는 3600만명이나 줄었다.[1] 위구르족에 의해 구출되나 위구르에 의해 장안은 황폐해진다.

  • 한마당  08.04.2022 13:57:00  

    원인
    당나라 말기 율령제의 변질, 균전제와 조용조의 변화, 부병제의 붕괴 등이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개원의 치를 이끌었던 현종은 양귀비에 빠졌다. 무혜비를 잃고 왕자들을 억울하게 죽게 해 가슴 아파하던 현종은 전국에 화조사(花鳥使)를 파송하여 미녀를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는 궁중에 무혜비의 소생인 수왕의 비 양옥환에게 반했고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수왕과 양옥환을 이혼시킨다. 그리고 양혹환을 도교 사원에 가 있게 한 후 그녀를 다시 궁중에 불러들여 귀비로 삼았다. 그는 밤낮으로 양귀비와 놀고 먹으며 그녀가 말하는 것은 다 들어주었다. 백거이(白居易)가 〈장한가(長恨歌)〉에서 노래한 바와 같이 정사는 돌보지 않고 밤낮으로 궁정에서 환락의 생활에 빠졌다. 양귀비의 환심을 사기 위해 재물은 말할 것도 없고 권력조차 넘겨주는 일을 서슴없이 행한 현종은 여산(驪山)의 온천에 있는 별궁을 수리하여 화청궁(華淸宮)이라 하고, 사시사철 그곳에서 지냈다.

  • 한마당  08.04.2022 13:58:00  

    현종은 양귀비에게 빠져있었고 그로 인해 현종이 넘겨준 정치권력을 손에 넣은 재상 이임보는 양귀비를 조종하여 독재정치를 하였다. 현종은 명신 장구령의 충언은 무시하고 이임보만 절대적으로 신임하였는데 그로 인해 746년 과거 응시자를 전원 탈락시키는 사건을 내는데 그는 그보다 우수한 관리가 나오면 그의 정치가 흔들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임보가 죽고 난 후에 양귀비의 사촌인 양국충이 재상이 되는데 현종은 양국충뿐 아니라 양귀비의 언니들 세 명에게도 호화 저택을 하사하고, 그 친척들을 고관으로 임명하는 등 환관과 외척들의 전횡과 부패 속에서 제도와 관리들은 타락할 수밖에 없었으며, 권력 다툼은 결국 755년 안녹산에게 난을 일으킬 명분을 주게 된다.[2]

    부패한 관리와 환관정치로 인해, 수탈을 당할 대로 당한 농민의 소외로 자립 소농민층이 해체된 것도 원인이다. 해체된 자립 소농민층은 유민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