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신 손님을 떠나 보내며

글쓴이: 한마당  |  등록일: 07.25.2022 12:33:01  |  조회수: 1186
김훈의 소설 '저만치 혼자서' 읽기를 마치고.

작가는 그만의 독특한 문체로  자신의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고 그저 담담히
펜을 꾹꾹 눌러 쓴 소설이다.

읽는 내내 뭔가 모를 답답함과 분노로 인해 기분이 개운치 않았다. 뭔가
내가 살아오는 동안 잊은 것이 있는 것처럼 멍한 상태로 힘들게 읽었다.

하지만,읽어보기를 강력하게 추천하는 소설이다.

작가의 섬세한  표현에 감탄하며 노고에 감사를 전한다.

**

군대나 경찰 그리고 검찰과 법원에 의해 자행된 '국가범죄'는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기소와 재판과 선고의 사법절차를 모두 거친 합법적 학살, 이미 사형이 집행된 사건에 대하여

그 사건의 기소와 재판을 담당했던 수사관과 검사, 법관들은  그 때 왜 그렇게 되었는지,

무슨 사정이 있었는 지를 말하지 않았다.

"죽은 자는 죽었기 때문에 죽음을 모르고, 산 자는 죽지 않았기 때문에 죽음을 모른다.

그렇다면 죽음을 아는 자는 세상에 아무도 없다. 누가 천국을 말하고, 누가 지옥을 말할 수 없다."

                                                  -김훈의 소설 '저만치 혼자서'  중에서 -

*사족(蛇足)

너무 혼탁(混濁)해서 혼돈(混沌)의 시대(時代)가 된 세상(世上)을 바라보는 무기력감(無氣力感)을  피력(披力)한 소설(小說)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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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한마당  2달 전  

    김훈(金薰, 1948년 5월 5일 - )은 대한민국의 소설가이자 수필가, 문학평론가, 언론인이다.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생애
    1948년 5월 5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서 김광주(金光洲)와 정무순(鄭戊順) 사이에서 2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아버지 김광주는 상해 임시 정부 시절 김구 밑에 일한 독립운동가이며, 광복 후 경향신문 문화부장과 편집부국장을 지낸 언론인이자 소설가이다.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암에 걸려 투병 생활을 할 때 아버지가 연재하던 무협지 원고를 대필하기도 했다.

    돈암초등학교, 휘문중학교, 휘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6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으나, 2학년 때 바이런과 메리 셸리를 읽고 영문학에 심취하여 1학기까지 다니고 학업을 중단했다가, 2년 뒤 고려대학교 영문과 2학년으로 전과했다. 이때 국문과를 다니던 현재의 부인 이연화(李燕和)와 만났다.

  • 한마당  2달 전  

    2학년을 마치고 1970년 육군에 입대했다가 1973년 전역했다. 병장 무렵, 아버지 김광주가 사망하며 경제적 곤란을 겪었다. 당시 여동생 김용(金蓉)도 고려대학교 영문학과에 다니고 있었는데, 한 사람 등록금밖에 낼 수 없는 형편이 되자, 김훈은 여동생에게 “내가 보니 넌 대학을 안 다니면 인간이 못 될 것 같으니, 이 돈을 가지고 대학에 다녀라”라고 말하고 자신은 중퇴했다.

    1973년, 대학을 중퇴한 뒤, 영어 교사 자격증을 따고 임용고사에 전국 2등으로 합격했다. 같은 해, 한국일보에 입사, 사회부 기자로 언론인 생활을 시작했다. 1974년 교제하던 이연화와 결혼했다.

    한국일보 기자 시절, 1986년 5월부터 1989년 5월까지 박래부 기자와 함께 〈문학기행-명작의 무대〉를 연재했다. 작가와 함께 여행하며 작품의 시대적, 지리적 배경과 역사적 의미를 기록하는 기획으로, 문단과 독자들의 큰 반향을 불러왔다.이 기사들은 나중에 《김훈-박래부의 문학기행》으로 발간되었다.

  • 한마당  2달 전  

    한국일보를 다니는 동안 몇 차례 퇴사와 재입사를 반복하다가, 1989년 12월 31일 마흔둘의 나이로 퇴사하고 2년간 고정된 직장과 수입 없이 지냈다. 이 기간에 《월간미술》등에 수필을 연재하기도 했는데, 이때 쓴 글들은 나중에 수필집《선택과 옹호》(1991)와 《풍경과 상처》(1994)로 출간되었다.

    1994년 겨울, 문예지《문학동네》 창간호와 1995년 봄호에 장편소설《빗살무늬토기의 추억》을 발표(2회 분재)하며, 47세의 나이로 문단에 데뷔했다.

    소설가로 데뷔한 뒤에도 언론인 활동을 병행했다. 1991년 새로 창간한《TV저널》의 편집국장이 되었고, 1994년에는 계열사인 주간지 《시사저널》에 입사하여 사회부장, 편집국장, 심의위원 이사를 역임했으며, 1998년에는 국민일보로 이직하여 편집국 부국장, 출판국장, 편집위원으로 1년 남짓 일했다.

  • 한마당  2달 전  

    . 1999년 한국일보에 편집위원으로 재입사했고, 이때 한국일보에 연재한〈김훈의 우리 땅 자전거 답사〉는 나중에 내용을 더하여 수필집 《자전거 여행》으로 발간되었다. 2000년 《시사저널》 이사 겸 편집국장으로 복직했지만, 《한겨레21》에 실린 인터뷰가 논란을 일으키자 3개월 만인 10월 7일 퇴사했다.

    2001년 초, 두 번째 장편소설《칼의 노래》의 집필을 시작하여 두 달 만에 탈고하고 5월 11일에 출간했다. 《칼의 노래》는 출간 직후 평단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으며, 같은 해 10월 제32회 동인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고, 2007년 12월 기준, 100만 부 이상 팔리며 밀리언셀러가 되었다.

    2002년 2월 20일 한겨레신문에 부국장 대우 사회부 취재기자로 입사했고, 철도노조의 파업을 다른 기사로 서울언론인클럽 기획취재상을 수상했다.[5][6] 2003년 1월 20일에 퇴사했다.

    2004년 이후, 전업 작가로 활동하며 소설과 수필을 꾸준히 발표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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