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및 심리상담

김소영

LCSW 상담사

  • Licensed Clinical Social Worker
  • LCSW #136971

이민 N년 차, 왜 갑자기 외로워질까

글쓴이: 김소영상담사  |  등록일: 08.27.2026 21:46:39  |  조회수: 68
이민을 오고 처음 몇 년은 정신없이 지나간다. 집과 직장을 구하고, 운전면허를 만들고, 병원을 알아보고, 낯선 행정 시스템을 익힌다. 현실적인 문제들이 삶의 중심에 있고, 당장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우(Maslow)는 인간의 욕구를 다섯 단계로 설명했다.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소속감과 사랑의 욕구, 존중의 욕구, 그리고 자아실현의 욕구이다.

그런데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되고 나면 이상한 허전함이 찾아오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나를 찾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여기서는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요.”

“회사에 다니고는 있지만 어디에도 속해 있다는 느낌이 없어요.”

생활은 안정되었는데 마음은 오히려 더 외롭다. 특히 이민 온 지 3~5년쯤 됐을 때 이런 혼란을 경험하기도 한다. 

생리적 욕구와 안전의 욕구를 해결해야만 했던 시기를 지나, 이제 그다음 단계의 소속감의 욕구가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일 수 있다.

한국에서는 가족, 오래된 친구, 동창, 직장 동료처럼 굳이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민을 하면 나를 찾고, 좋아해주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멀어진다.

사실, 나역시 그랬다. 여러 곳에 속해 있는데도 내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고, 때로는 나란 사람을 설명해야 하는 것이 지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살아 내느라, 원치 않는 곳에 있던 나를 돌보지 못한  순간들도 많았다. 

이민을 나무를 옮겨 심는 과정에 비유해 보자.

한국 땅에서 자라던 나무를 통째로 뽑아 미국의 새로운 땅에 옮겨 심었다면, 처음에는 나무가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 수록 나무는 원하는 방향으로 뿌리를 뻗어 내려가야한다. 

그래서 어느 정도 이민사회에 정착한 시점이 오면, 뿌리를 뻗어나가기 위해 이런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다.

나는 원래 어느 정도의 관계와 활동을 필요로 하는 사람인가.

나는 생존과 안전의 문제들을 해결하느라 어느새 나답지 않은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물론, 친구가 많아야 잘 적응한 것도 아니고, 모임을 많이 다녀야 성공적인 이민 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제 내 성향과 에너지 수준에 맞는 삶의 형태를 다시 찾아가는 것을 아는 것이다. 

이민 후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되었는데도 허전하고 외롭다면, 그런 나를 “내가 미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당신은 적응의 시기를 잘 지나와 이제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속하고 싶은지를 고민할 수 있는 단계에 도착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외로움이 찾아올 때는, “아, 내가 그동안 힘든 시기를 지나 여기까지 왔구나. 이제는 나답게 살아갈 자리, 내가 편안하게 속할 곳을 찾아볼 시간이구나.”라고 알아주길. 천천히 내가 편안하게 뿌리내릴 곳을 찾아보길. 그리고 무엇보다 여기까지 잘 버티고, 살아내고, 적응해 온 자신을 충분히 격려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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