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3년 파리조약에서 영국 정부는 미국의 독립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게 됨으로 미국이 탄생되고 워싱턴이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아직도 대통령이란 자리가 무엇인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세상 어디를 둘러봐도 왕이 지배하는 세상일뿐 대통령이 지배한다는 소리는 들어보지도 못한 시대였기 때문이다.
아무튼, 대부분의 국민들은 대통령이란 단지 선출된 ‘4년짜리 국왕’이라고 생각했고, 초대 대통령을 유럽의 왕과 똑같이 ‘전하’라는 명칭으로 불렀으며 심지어 대통령인 워싱턴 자신도 국민들에 의해 선출된 국왕이라고 생각하여 유럽의 왕들처럼 위엄을 갖춘 언행을 하려고 노력하였으며 특히 자신에 대한 칭호로 국왕들이 스스로 말하는 자신을 3인칭으로 표현하기를 좋아했고, 다른 국가의 국왕들처럼 위엄 있는 몸가짐을 가지고 국왕처럼 대접받기를 원했다.
유럽 대륙의 왕실을 본받아 한없이 많은 접견 회와 파티를 열었고, 영국과 프랑스의 국왕들처럼 그는 미국 전역을 호화롭게 여행하였고, 미국의 대국민들은 국왕을 맞이하듯 화려한 축하행사로 그를 환영했다.
이러한 그의 제왕과 같은 언행으로 새로 태어난 나라 미국의 새로운 직책인 대통령 지위는 처음부터 국왕과 같이 강력해졌다.
워싱턴이 대통령에 취임한 해인1789년 이후, 신생 국가인 미국은 분열과 정치 싸움이 가장 심한 시대이기도 했다.
더욱 강력한 연방정부를 만들려는 연방주의자들과 자치 주의 독립을 지키려는 반 연방주의자들간의 대립으로 심각한 사태에 이르기까지 하였으나 워싱턴 대통령은 내각에 두 파의 인물들을 고르게 등용하여 균형을 잡는데 노력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연방정부는 허울뿐인 정부로, 권력도 돈도 없는 가난한 정부였다. 공무원의 급료를 주기 위해서 주정부로부터 눈치를 보며 돈을 얻어와야 할 지경이었다.
그 때, 파산 직전의 연방정부를 살린 인물이 바로 초대 재무부 장관을 지낸 ‘알렉산더 해밀턴’ 이었다.
워싱턴의 독립전쟁 시절부터 참모장을 지냈던 ‘알렉산더 해밀턴’은 워싱턴이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행정부의 경제정책 초안을 비롯하여 각종 연설문 등을 작성하였던 인물로 워싱턴이 대통령이 되자 초대 재무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초대 재무부 장관이 된 해밀턴은 과감한 그리고 강력한 경제 정책을 시행하여 미 연방의 조세, 무역, 조폐, 은행 등의 전반적인 경제 구조를 개편하여 워싱턴 연방정부의 권위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더욱이 그가 창시한 연방 은행(Federal Bank)의 설립은 오늘날까지 미국의 재정을 튼튼하게 한 초석이 되었다고 역사 학자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미국의 초대 재무부 장관을 지낸 알랙산더 헤밀턴은 오늘날에도 미국의 가장 위대한 재무장관으로 평가 받고 있으며 10달러 지폐 속의 인물로 남아 미국인들의 끝없는 추앙을 받고 있다.
유별난 정치 신념과 자존심이 강했던 헤밀턴은 정치적 적이었던 ‘애론 버’ 와 권총 결투 끝에 아까운 목숨을 잃고 말았다.
한 편, 두 차례에 걸쳐서 대통령을 지낸 조지 워싱턴은 8년의 임기를 마친 후, 미련 없이 자신의 집이 있는 마운트 버넌으로 돌아갔고 2년 뒤인 1799년에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