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야기

이웅진

결혼정보회사 선우 대표

  • 현) 웨딩TV 대표이사
  • 전) 우송 정보 대학 웨딩이벤트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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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지나친 관심이 자녀의 앞길을 막는다 ]

글쓴이: 선우  |  등록일: 05.28.2009 15:44:22  |  조회수: 7863
인륜지대사인 결혼은 단순히 남녀의 결합이 아닌 가족과 가족간의 만남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결혼할 때 비슷한 환경을 찾으라는 결혼환경론을 늘상 주창한다. 하지만 결혼을 전제로 한 만남에 부모가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몇해전에 한 재혼담당 팀장이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내방에 들어왔다. 자초지종을 듣고 나니 나 역시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의 얘기를 요약하면 이러하다.

    포항공대 출신, 대기업 연구원, 40세, 이혼남. 그는 외모도 빠지지 않고 집안도 괜찮아 재혼 파트에서 일등 신랑감이었다. 그래서 37살의 대학 전임강사를 소개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란 말인가. 미팅 장소에 두 남자가 등장한 것이다. 한 사람은 분명 그날 미팅 상대였지만 또 한사람은 바로 그 남자의 아버지였던 것이다.

    맞선을 볼 때 부모들이 멀찌감치 앉아서 지켜보는 일 정도는 애교로 봐줄 수 있다. 또 첫 인사를 나눌 때 부모가 잠깐 동석했다가 자리를 뜨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남자의 아버지는 아예 아들 옆에 앉아서 함께 질문을 하더라는 것이다. 여자는 마치 면접시험을 보듯 이런 저런 질문에 대답해야 했다. 남자의 아버지는 정부 모 부처의 국장을 지낸 고급 공무원 출신이다. 미팅남은 아버지가 자리를 함께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를 취해 여자를 더욱 놀라게 했다.

    여성은 양식있는 분이니 곧 일어나겠지 기대했지만 끝까지 자리를 함께 했던 두 부자는 사이좋게 일어나서 집으로 돌아갔다. 여성은 담당 커플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털어놓으며 한숨을 쉬었다. 여성은 미팅 상대는 마음에 들었으나 아버지 때문에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담당 팀장이 남자에게 전화를 걸려고 할 때 벨이 울렸다. 바로 남자의 아버지였다. 그 남자의 아버지는 다짜고짜 "그 여자는 얘기를 해보니 안 되겠더라, 다른 여자를 소개해 달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담당자가 "미팅 자리에 처음부터 끝까지 동석하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 초혼도 아닌 재혼을 준비하는 성인의 일에 일일이 참견하는 것은 오히려 일을 그르치게 된다, 다음부터는 그런 일이 없어야 아드님이 결혼할 수 있다"는 요지의 얘기를 했다.

    그러자 남자의 아버지는 "그게 왜 안 되느냐, 내 며느리를 내가 직접 고르는 게 뭐가 잘못됐느냐"며 오히려 화를 내는 것이었다.

    담당자가 "그러면 옆에 앉지 말고 뒤쪽이나 옆쪽에 미팅녀가 눈치 못 채게 앉아서 얘기를 들어라"고 하자 오히려 남자의 아버지는 "이상한 사람들이네. 내 아들 결혼을 위해 부모가 나서는 게 뭐가 이상해, 다음에도 함께 나가겠다"고 했다. 담당자가 "앞으로도 그렇게 하겠다면 여성에게 실례가 되기 때문에 미팅을 주선할 수 없다"고 말씀드리자 그는 "너희들이 이상하다"며 끝까지 자신의 행동이 옳다고 주장했다.

    아들을 여전히 어린이로 생각하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파파보이. 이혼한 아들이 결혼하려면 자신이 함께 발벗고 뛰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아버지. 그 부자는 과연 원하는 대로 아내와 며느리를 맞을 수 있을는지…

    그로부터 며칠후 외부에 나갔다가 사무실에 들어오니 커플매니저와 회원 어머니인 듯한 분이 서로 얼굴을 붉힌 채 마주보고 앉아 언쟁을 벌이고 있었다. 다가가서 무슨 일인지 물었을 때 어머니는 "딸에게 신원이 정확하지 않은 사람을 소개해 너무 화가 나서 찾아왔다"고 말하는 것이다. 커플매니저의 설명을 요약하면 이러하다.

  그 어머니의 딸은 이화여대 출신 교사인데 첫번째 미팅상대자는 서울대 출신의 모 증권회사 직원이었다. 두번째는 고려대 농화학과를 졸업하고 모 대기업에 다니는 남성이었다. 첫번째는 한 번의 만남으로 끝났지만 두번째는 두세 번의 미팅이 이어졌다. 하지만 여자 쪽에서는 마음이 있는데 남자가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았다.

    맞선을 본 후 두세 번 만났다 하더라도 상대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으면 그 만남은 끝났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미련이 남는다면 커플매니저를 통해 상대방 마음을 알아보거나 한번쯤 먼저 연락을 해도 되겠지만 한쪽이 마음을 닫아 버리면 다시 시작하기 힘들다.

    이 여성 회원의 경우도 남성의 반응이 신통치 않았으니 다음 상대를 소개받는 것이 순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딸이 마음에 들어 하는 남자가 연락을 하지 않자 어머니가 나선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딸의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남자 회원의 아버지는 강남에 있는 대형예식홀의 대표이다. 주인은 따로 있고 전문경영인으로 영입되어 예식홀의 경영을 맡고 있었다. 두 사람이 데이트를 하던 중 예식홀 앞으로 지나가게 되었을 때 남자 회원 "아버지가 대표로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남자 쪽에서 더 이상 만나자는 약속이 없자 무슨 생각에서인지 여자의 어머니는 그 예식홀로 전화를 해서 사장을 찾았다. 그런데 직원이 남자의 아버지가 아닌 예식홀 소유자의 이름을 대면서 자리에 없다고 말했다. 그 순간 여성의 어머니는 문제의 본질은 생각지도 않고 "속았다"는 생각에 분기탱천하여 회사로 찾아온 것이다.

    그 예식홀의 지배 구조에 관한 상황을 설명하고 남자 회원의 아버지는 분명 직함이 사장이라고 말했지만 어머니는 우리가 속였다며 화를 내는 것이었다. 남자 회원과 전화를 연결해 주겠다고 했지만 그것도 거절했다. 무려 3시간 동안이나 소리를 지르며 소란을 피우는 그녀를 가까스로 돌려보냈다.

    그녀는 화를 내기 전에 우선 신중하게 생각했어야 했다. 사람이 잘 되어 결혼을 하려는 마당에 예식홀 문제가 걸림돌이 되었다면 모르겠으나 이미 끝난 만남인데 도대체 그 문제가 그들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 사실이 확인되면 딸의 기분이 좋아지거나 두 사람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건가?

    두 사람의 태도는 과연 자녀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되었을까? 그것은 애정도 관심도 아닌 집착일 뿐이다. 그들은 아직도 자녀를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소유, 혹은 자신이 끝까지 돌봐야 할 아이로 취급하는 중이다. 그 자녀들도 어쩌면 몸은 성장했으나 정신적 이유기를 거치지 않아 여전히 부모에게 기대고 있는지도 모른다.

    두 회원의 부모를 보면서 결혼을 할 때 반드시 상대 부모를 만나 그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고 가정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이 필수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또 하나 강조하고 싶은 것은 결혼 당사자가 자신의 결혼을 위해 필요한 목소리는 내는 것도 중요하다는 점이다. 부모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관여할 때는 자녀 측에서 제동을 걸어야 한다. 서양처럼 자녀가 자신의 결혼을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자신의 결혼을 부모의 손에 완전히 의탁하는 것도 지양해야 할 문제이다.

    부모의 지나친 관심이 자녀의 앞길을 오히려 막는다는 사실!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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