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자(習字)4. 새장에 갇힌 새

글쓴이: 한마당  |  등록일: 06.22.2022 11:17:29  |  조회수: 343
습자4.
새는 갇혀 있어도 날 것을 잊지 않고
말은 매여 있어도 항상 뛸 것을 생각한다.
첩첩 산과 울렁이는 물결 속에 길이 없을 듯 했지만
버드나무 우거지고 꽃이 핀 곳에 또 하나의 마을이 있다.
새는 갇혀 있어도 날 것을 잊지 않고
말은 매여 있어도 항상 뛸 것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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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한마당  3달 전  

    조수불망비 마계상념치 -소동파-

    산궁수진 의무로
    유암화명 우일촌          -육유-

  • 한마당  3달 전  

    소식(蘇軾, 1037년 1월 8일 ~ 1101년 8월 24일(음력 7월 28일))은 중국 북송 시대의 시인이자 문장가, 학자, 정치가이다.
    그의 자(字)는 자첨(子瞻)이고 호는 동파거사(東坡居士)였다. 흔히 소동파(蘇東坡)라고 부른다. 현 쓰촨성 미산(眉山)현에서 태어났다. 시(詩),사(詞),부(賦),산문(散文) 등 모두에 능해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손꼽혔다.

    소동파는 송시의 성격을 확립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대시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대문장가였고 중국문학사상 처음으로 호방사(豪放詞)를 개척한 호방파의 대표 사인(詞人)이었다. 그는 또 북송사대가로 손꼽히는 유명 서예가이기도 했고 문호주죽파(文湖州竹派)의 주요 구성원으로서 중국 문인화풍을 확립한 뛰어난 화가이기도 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 천재 예술가요 못 하는 것이 없었던 팔방미인으로서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천 년이 다 돼 가는 지금까지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중국문예사상 가장 걸출한 시인이다.

  • 한마당  3달 전  

    육유(중국어: 陸游, 1125년 11월 13일 ~ 1210년 1월 26일)는 중국 남송의 시인이다. 자(字)는 무관(務觀)이고 호(號)는 방옹(放翁)이며, 지금의 절강성(浙江省) 소흥시(紹興市)인 월주(越州) 산음현(山陰縣) 사람이다.

    북송(北宋)과 남송(南宋)의 교체기에 태어났으며, 남송 조정이 중원(中原) 지역을 금(金)에 내어주고 굴욕적인 화친책을 통해 겨우 명맥을 유지해 가던 시기에 일생토록 금에 대한 항전과 실지(失地)의 회복을 주장하며 살았던 시인이다. 그의 불굴의 기상과 강인한 투쟁의식은 그의 수많은 우국시를 통해 끊임없이 표출되었으며, 그 헌신성과 진정성으로 인해 오늘날까지 중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우국시인(憂國詩人)으로 추앙받고 있다. 아울러 전후로 도합 일만 수에 달하는 시를 남기고 있어 중국 최다작가(最多作家)로서의 명성 또한 지니고 있다.

    38세에 진사가 되어 기주 통판을 지냈다. 만년에는 효종·광종의 실록 및 《삼조사》를 완성하였다. 저서로 《검남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