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봇을 죽게 했는가?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 3주기에 읽는 나봇의 포도원 이야기
2012년 05월 20일 (일) 13:59:42
김범수 ( 메일보내기 )(yesom )
많은 교회가 교회 기념일뿐 아니라 국가의 정치적 기념일을 기념하고 교회에서 기념 주일로 지킨다. 미국의 독립기념일이나 한국의 삼일절, 광복절 기념 예배가 그렇다. 기독인에게 신앙과 삶이 분리되지 않으므로 특정한 날이 되면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움직이신 일을 기억하고 성경의 가르침을 기억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90년 전의 삼일절이나 60년 전의 광복절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고 하나님의 뜻에 감격하는 의미가 살아 있는 간증이 되었지만, 요즘 우리나 자녀에게 별다른 의미를 주지 못한다. 오히려 더욱 가까운 시점에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고 거기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이 죽은 지 3년을 바라보는 오늘 2012년 5월 세 번째 주일은 노무현 대통령 삶과 죽음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려 한다. 정치적인 견해를 가지고 한 사람을 추모하려는 것이 아니고 성경에서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경고하는 메시지를 들으려는 것이다.
이 사람을 보라 - 그는 섬기는 지도자였다
불신자에게 구원은 없다고 성경은 분명히 가리키지만, 불신자도 성경 가르침을 실행할 수는 있고, 심지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시기도 한다. 그는 지도자가 되어 국민의 눈높이에서 대화하고 섬기려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노무현 대통령도 사람이라서 실수도 있었을 것이지만 대체로 한국 사회에 과분하게 정직하고, 겸손했으며 민주주의의 원칙을 지키려 노력했다. 자신이 아닌 국민의 유익을 위해서 열심히 일한 보기 드문 대통령이었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정통성 있는 민주 정부를 세웠고 역대 대통령 가운데 임기 동안 친인척 비리가 가장 적었다. 이것은 그동안 어느 기독교 정치가도 보여 주지 못한 참신한 자세였고 예수님이 가르치신 섬기는 지도자의 표본이 될 수 있다. 정치가가 되고 특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독교 정치가가 되려면 예수님처럼 섬기는 종이 되어 섬기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불신자였던 노무현 대통령이 보여 준 민주적인 자세만큼이라도 따라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천주교에서 영세를 받은 적이 있다는 그의 신앙관은 불분명하고 기독교 신자는 분명히 아니었다. 그러나 성경이 믿는 사람만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고레스 왕은 이방 바벨론 왕이었지만 포로 된 이스라엘의 귀향 명령을 내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를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는 도구로 사용하셨다고 성경은 칭송한다. 성경은 그가 구원을 받고 천국에 갔는지는 언급하지 않는다.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얻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영혼도 구원은 받지 못했지 모른다. 설령 구원을 받지 못했어도, 앞으로 오는 세대에 좋은 모범을 보여 준 하나님의 도구가 되었다는 것으로 그의 삶은 의미가 있다.
이 사람을 보라 - 그는 선한 농부 나봇이었다
구약의 엘리야 선지자가 갈멜 산에서 바알 제사장 850명과 싸워서 이긴 일은 유명하다(왕상 18). 그때 그 많은 바알 제사장이 활개 치도록 놔둔 왕이 역사상 가장 악한 왕으로 평가받은 아합 왕이고 그의 아내 이세벨 왕비다. 가뭄이 든 이유도 왕 때문이다. 왕의 악행을 보고 이스라엘 전역에 3년의 가뭄이 들었다(왕상 17). 엘리야는 까마귀가 물어온 음식을 먹었고, 후에 그를 섬긴 사렙다 과부의 집에 밀가루와 기름이 끊이지 않았고 아들도 죽었다 살아나는 이야기가 가뭄 동안 일어났다. 바알 제사장을 이기고 다시 비를 내리게 한 엘리야는 유명하지만 그를 핍박했던 왕에게는 주의를 잘 돌리지 않는다. 이런 놀라운 엘리야의 기적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고 도리어 끈질기게 핍박해서 엘리야마저 차라리 죽고 싶다고 울게 만든 강퍅한 자가 있었다. 엘리야 대 선지자를 우울증에 걸리게 하고 40주야간 사막에서 울부짖게 만든 이가 바로 아합과 이세벨이다(왕상19).
이 악한 왕은 정치적 종교적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악했을 뿐 아니라 자기 소유 즉 부동산에 대한 욕심도 대단했다. 그가 돌이키기는커녕 궁전 옆 나봇의 포도원을 자기 정원으로 삼고 싶은 욕심이 생겨서 고민한다. 돈을 주고 땅을 사겠다고 해도 믿음이 좋은 농부 나봇은 하나님이 정해 준 땅을 파는 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는 것이라며 왕의 제안을 거부한다. 최소한의 양심이 남아있던 왕은 구구절절 옳은 소리를 하는 나봇을 어떻게 할 수는 없지만, 속으로는 끓어오르는 탐심을 억제하지 못하고 끙끙 않는다(왕상21). 힘들어하는 그를 본 이세벨이 남편을 위해 모종의 수를 써서 땅을 빼앗아 남편에게 선물한다. 부창부수, 악행에 다정한 부부다. 사람들 앞에 그를 세우고 하나님과 왕을 모독했다는 누명을 씌워 그를 돌로 쳐 죽인다. 후에 예수님이 성전을 모독했다는 증인의 말에 판결을 받고 무고히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을 연상시킨다. 이 악행을 보고 엘리야가 다시 와서 악한 부부는 비참이 죽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얼마 뒤 그 예언이 응해서 아합과 이세벨 부부는 비참히 죽고, 곧 엘리야는 사역이 끝난다. 대선지자 엘리야의 사역은 이렇게 악한 아합 부부와 같이 펼쳐진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서 나봇을 보았다. 그의 뒤를 기독교인 대통령이 이었는데, 후임 대통령과 그를 추종하는 세력의 핍박으로 죽음에 몰리게 된다. 사람들은 자살하는 것이 옳으냐에 관심을 갖는데 이는 부수적인 문제다. 오히려 믿음을 가진 대통령이 악을 행해서 무고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과연 신자가 악을 행할 수 있는가? 어떤 기독교인들은 인정하기 싫어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가 악을 행하는 것은 세계 역사는 물론 성경 역사를 통해서도 수도 없이 입증되어 왔다. 나봇의 포도원을 탐내서 나봇을 죽이고 자기 정원으로 만들어 버린 아합과 이세벨 왕의 악행이 그렇다. 나는 무고히 죽은 노무현의 모습에서 "하나님이 정해 주신 땅은 팔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에 왕이 원한다 해도 율법을 지켜 땅을 팔지 않겠다"고 저항했던 원칙주의자 농부 나봇을 보았다.
이 사람을 보라 - 기독교인 이명박 대통령이 아합 왕이다
또 나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불법과 악행을 마다하지 않았던 악한 왕 아합과 그의 부인 사악한 이세벨의 모습에서 소위 교회 다닌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모습을 본다. 아합과 이세벨은 결국 비참히 죽고 그들의 피는 개들이 핥는다. 성경의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 그래서 아무리 큰 죄인이라도 진실로 회개하면 구원하시는 은혜를 베푸신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신다.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서도 회개하지 않고 끊임없이 악을 도모하는 악인들은 이것을 명심해야 한다.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안다. 교묘하게 사람을 속일 수는 있어도 하나님의 눈까지 속일 수는 없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정의로우시다. 무고한 사람을 죽인 악인은 그 피값을 갚아야 할 것이다. 설사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은혜 아래 숨는다 해도 하나님의 공의의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믿음이 없이 교회에 이름만 걸쳐 놓은 악인의 경우는 하나님이 그의 중심을 정확히 보시고 적절하게 심판하실 것이다. 만약 그가 악을 행하면서도 아주 신실한 기독교인이면 어떻게 되는가? 있을 수 없는 가정이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소금이 아니고, 빛을 잃으면 더는 빛이 아닌 거다. 모순되는 상황이지만 어떤 죄도 용서하시는 은혜의 하나님은 동시에 어떤 죄도 빠뜨리지 않고 정의롭게 심판하실 공의의 하나님이다.
이것이 서로 모순되는 것 같고 어려운 문제가 되는가? 먼저 생각할 것은 이런 어려운 문제를 던진 것은 바로 인간들이다. 원래 상식대로 예수 잘 믿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어두운 세상의 존경을 받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었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우리가 그러지 못하고 세상보다 더 악한 모습을 보이니까 우리도 하나님의 구원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된다. 세상 사람들도 저런 사람까지도 단지 예수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천국에 간다고 한다면 나는 차라리 기독교인이 말하는 그 천국에 가지 않겠다고 화를 내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니라 예수를 믿으면서도 행동이 변하지 않고,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는 우리 기독교인들이 문제를 만들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교회를 다니면서도 지속적으로 악을 행했기 때문에 이런 딜레마가 생기는 것이다. 착한 하나님이 아니라 악인이 이런 혼란을 만든 것이다.
과연 그와 그의 형과 비리로 점철되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든 부정선거를 자행하는 그의 기독교인 친구들을 우리도 천국에서 만나야 할까? 같은 기독교인이지만 나도 싫다. 아무리 경고해도 4년 내내 조금도 회개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죄를 쌓아서 하나님과 교회를 부끄럽게 한 그들을 나도 거기서까지 만나고 싶지 않다. 확실히 이 문제는 하나님이 바르게 해결하실 것이라 믿는다. 어떻게 해결하실지 자세히는 모르겠다. 무한한 사랑과 용서, 그리고 엄정한 공의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게 하실지 문제다. 그러나 우리에겐 어려운 문제이지만 하나님은 능히 은혜로우면서도 지극히 정의로운 방법으로 심판하실 줄 나는 믿는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3주년이 되었다.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선인과 악인을 보여 주셨다. 한국 역사 속에서 이처럼 선과 악이 분명하게 대비되는 경우도 많지 않다. 기독교인들에게는 바로 그 악인이 강남의 대표적인 교회에서 선출된 장로여서 더 안타깝다. 그만큼 하나님의 메시지가 시급하고 분명하게 드러났다. "한국교회여, 기독교 신자들이여.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약 2장). 이제라도 돌이켜서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라. 내가 지켜보겠다."
이것이 노무현 대통령 서거 3주년을 맞는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시급하게 경고하시고 권면하시는 주님의 사랑의 말씀이다.
김범수 목사 / 시애틀 드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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