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맛 테슬라다. 모델3가 리프레시라고 불리는 부분변경을 통해 돌아왔다. 게다가 이번에는 퍼포먼스 트림이다.
바뀐 듯 바뀌지 않은 듯 소소하지만 핵심적인 변화를 거친 새빨간 전기 로켓을 만났다.
테슬라의 주력인 모델3가 한 단계 발전했다. 부분변경 모델에 리프레시라는 이름이 붙으며 겉보기에 크게 달라진 것은 없어 보이지만, 기존 모델에서 아쉬웠던 점을 개선해서 등장했다.
내게 주어진 모델은 새빨간 퍼포먼스 트림이다. 트렁크에 부착된 듀얼 모터 배지 아래에 한 줄이 그어져 있어 퍼포먼스 트림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퍼포먼스 모델로 장거리 주행에 도전했다. 롱레인지 모델이 아니더라도 장거리 주행에 문제가 없을지 확인해보기로 했다.
부분변경 모델이지만 겉보기에 달라진 점은 소소하다. 디자인 자체는 달라진 것이 없고 자잘한 업데이트를 거쳤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윈도 주변의 크롬 몰딩과 손잡이가 검은색으로 바뀐 것.
이 부분은 취향 차이겠지만 번쩍번쩍한 크롬보다 검은색 몰딩으로 한층 차분해 보여 마음에 든다. 여기에 퍼포먼스 트림은 카본 립 스포일러가 장착된다. 립 스포일러 특성상 기능적인 요소보다는 외형적인 감성이 더 크다.
퍼포먼스 트림에 기본 장착되는 20인치 위버터빈 휠은 생긴 것도 멋스러우면서, 비가 오는 날에도 이물질이 거의 묻지 않아 신기하다. 세차가 취미인 이들의 귀가 쫑긋해질 만큼 말이다.
그리고 휠 안에 자리 잡은 새빨간 브레이크도 달리는 것을 좋아하는 운전자의 가슴을 설레게 만든다. 헤드램프도 작은 변화가 있다. 내부에 원형 램프가 추가됐는데, 이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보기 힘든 변경점이다.
인테리어도 소소하게 변경됐다. 먼저 센터 콘솔의 변화다. 기존에는 블랙 하이그로시 소재를 사용하여 지문이 잘 묻어 관리의 어려움을 겪는 차주들이 많았다.
이번 리프레시 모델에는 그러한 소재들이 무광 재질로 변경되었다. 거기에 스마트폰 무선 충전기가 두 대가 구비되어 있으며 USB C타입 포트 역시 앞뒤 각각 두 개씩 마련되어 있다. 페달 부분은 알루미늄으로 변경되었는데 이 역시 소소하지만 시각적인 효과가 좋은 인테리어 요소다.
또한 기존 수동식이었던 트렁크가 전동식으로 바뀌어 디스플레이 터치 한 번으로 트렁크를 열 수 있다. 수동식 트렁크였던 기존 모델 차주들의 배가 제법 아플 것이다.
여기에 시승차는 눈부신 화이트 인테리어 옵션이 적용되어 있다. 시트 색상이 새하얀 색상으로 바뀌며 기존 우드 소재이던 대시보드가 흰색 페인트가 칠해진 알루미늄 소재로 바뀌어 눈부시다. 비유가 아니라 햇빛이 강한 날에는 눈이 아플 정도로 밝은 흰색이다.
때가 타지 않도록 관리하는데 적잖은 애를 먹을 것이다. 시트는 푹신푹신하여 착좌감이 좋지만 방석의 크기가 약간 작은 느낌이며 2열 공간은 넉넉하지도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은 수준이다.
헤드룸은 조금 낮은 편이고 레그룸은 이 정도 크기의 자동차들이 가지고 있는 평균 수준의 넓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달려볼 시간이다. 센터 콘솔에 카드키를 찍고 전원을 켠다. 배터리는 가득 충전되어 있고 거대한 디스플레이에는 498km를 달릴 수 있다고 알린다. 출발지는 하남 스타필드에 있는 슈퍼차저, 목적지는 대구 엑스코에 있는 슈퍼차저다. 이 녀석과 함께 신나게 여행을 떠나보자.
배터리 용량은 기존과 동일한 75kWh, 최고출력은 353kW(약 480마력)에 최대토크는 63.9kg·m이다. 한국 기준으로 최대 주행가능거리는 480km이지만 유럽 기준인 WLTP에 따르면 무려 566km를 달릴 수 있어 측정방식별로 차이가 큰 편이다.
배터리 열을 관리하여 최적의 효율을 만드는 히트펌프를 새롭게 장착했지만 날씨가 따뜻해서 진가를 알아보기 어렵다. 테슬라의 설명에 따르면 동절기 효율이 히트펌프 미장착 모델 대비 60% 이상 좋다고 한다.
아무튼 목적지까지 예상 주행 거리는 300km 정도기에 마음껏 달려도 배터리의 잔량이 넉넉하리라 판단하고 출발한다.
움직이는 느낌은 전형적인 전기차의 느낌이다. 부드럽게 가속하고 회생제동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배터리와 브레이크 패드를 아낀다. 저속에서 가속하는 부드럽고 말랑한 느낌은 내연기관보다 더 매력적이다.
그러나 이 차는 퍼포먼스 모델이다. 가속 모드를 컴포트에서 스포츠로 바꾸자마자 성격을 확 바꾼다. 가속력은 훨씬 더 강력해지고 페달의 반응이 무척 예민해진다. 가속 페달을 톡톡 건드리기만 해도 뒤통수가 헤드레스트에 부딪히며 달려 나간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3.3초 만에 가속하는 느낌은 내장을 제자리에 두고 출발하고 뒤늦게 내장이 몸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 머릿속 피가 뒤통수로 쏠려 멀미를 느낄 만큼 아찔한 가속력이다. 속도를 올릴수록 이러한 가속감은 약해지는 편이지만 고속에서도 가속 페달에 힘을 쏟으면 고개가 살짝 젖혀질 만큼의 여유로운 힘을 가지고 있다.
브레이크 감각은 낯설다. 브레이크 디스크를 통해 제동하는 느낌보다 회생제동이 걸리는 느낌이 먼저 전해지고 디스크를 통한 제동력이 잘 느껴지지 않아 어색하다. 특히 고속에서 제동할 때 이러한 어색함은 불안함으로 다가온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겠지만 트랙 모드까지 탑재해둔 퍼포먼스 모델에서 이러한 감각은 아쉬운 점이다. 여기서 트랙 모드는 말 그대로 트랙에서 이 차의 퍼포먼스를 마음껏 즐기기 위해 존재하는 모드다.
각종 세팅을 운전자의 입맛대로 설정할 수 있으며 심지어 드리프트 모드까지도 지원한다. 아쉽게도 이 기능을 사용해보진 못했지만 언젠가 트랙에서 꼭 경험해보기를 원한다.
승차감에 관해 얘기해보자. 우선 댐퍼 세팅이 부드러운 편이라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나 요철을 만났을 때 푹신하고 부드럽게 넘어간다. 한가지 문제가 있다면 최근 타본 자동차 중에서 노면을 가장 심하게 탄다.
조금이라도 불안정한 도로를 만나면 차가 울렁대는 느낌이다. 멀미를 쉽게 하는 사람이라면 특히 조심해야 한다. 멀미를 거의 하지 않는데도 운전하는 중에 약한 어지러움을 느낄 정도다.
기존 모델에서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던 실내 소음 부분도 개선했다. 이중 접합 차음 유리를 사용하여 풍절음과 외부소음이 줄었다. 또한 전기차 전용 타이어인 피렐리 P 제로 TO PNCS ELECT를 장착했다.
이 타이어는 내부에 폴리우레탄 스펀지 흡음재를 사용하여 타이어가 구르면서 발생하는 소음과 진동을 최소화한 것이 특징이다. 이게 제법 효과적이다. 타이어가 구르면서 발생하는 소음과 진동이 상당히 억제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고속도로에 진입하면 똘똘한 오토파일럿을 불러보자. 차선 중앙을 유지하는 능력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고, 앞차와의 간격을 유지하는 솜씨도 자연스럽다. 옵션으로 추가할 수 있는 FSD는 장거리 주행에서 더욱 편리하다.
내비게이션의 목적지를 기반으로 고속도로 진출입로까지 주행을 지원하며 경로에 맞춰서 미리 차선변경을 하는 기능도 갖추고 있다. 또한 별도의 조작 없이 방향 지시등을 켜는 것만으로 차선 변경을 스스로 해낸다.
다른 제조사의 차선 변경 지원기능보다 훨씬 재빠르게 움직이며 차선 변경 도중 뒤차와 간격이 급격히 좁아지면 원래 차선으로 자연스럽게 돌아온다. 게다가 차선 합류 지점에서 합류하는 차를 인지해 속도를 줄이는 양보 운전까지 해낸다.
이러한 기능 덕분에 장거리 운전의 피로를 상당히 줄일 수 있다. 물론 오토파일럿은 주행을 보조하는 장비임을 잊지 않고 전방을 주시하며 돌발상황에 대처할 준비를 해야 한다.
지루한 장거리 주행을 달래주는 것은 사운드 시스템이다. 미국차들이 대체로 사운드 시스템을 잘 만드는 편인데, 테슬라 역시 그렇다. 소리가 특정 영역에 치우치지 않아 밸런스가 좋으며 공간을 가득 채우는 느낌이 만족스럽다. 이런저런 장르를 바꿔가며 음악을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느새 북대구IC를 지나 목적지에 도착했다. 남은 주행가능거리를 확인하니 180km를 더 달릴 수 있다고 한다.
오토파일럿을 통한 정속 주행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남은 주행가능거리가 이 정도라면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추가 일정을 넉넉히 소화하고도 남는다. 만약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더라도 충분했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다만 퍼포먼스 트림의 재미를 온전히 즐기려면 장거리 주행은 포기해야 한다. 이는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확인했다. 오토파일럿을 사용하지 않고 속도를 즐기기 시작하니 내비게이션에서 이 속도로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결국 뻥 뚫린 경부고속도로에서 오토파일럿에 이 차를 맡겨야만 했다. 속도를 마음껏 즐기다가 슈퍼차저에 들러 충전하고 다시 달리는 시간보다 항속 주행으로 꾸준히 가는 것이 더 빨리 도착할 것이기 때문이다.
즐거운 시승이 끝났다. 부분변경을 통해 기존 모델의 완성도를 확실히 끌어올렸다. 이 정도의 완성도라면 전기차 시장에 사활을 걸고 있는 많은 자동차 제조사들이 바짝 긴장해야 할 것이다.
물론 여전히 아쉬운 부분은 있지만 이 정도의 빠른 발전 속도라면 테슬라가 가까운 미래에 만들어낼 자동차에 대해 더 큰 기대를 걸어도 될 것 같다. 제조사들의 치열한 완성도 경쟁은 결국 소비자들이 더 좋은 제품을 만나게 되는 일이니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퍼포먼스가 뛰어난 전기차는 오히려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 시내 도로에서 더 즐겁다.
아찔한 가속력을 통한 재미를 느끼기 위해 신호등에서 첫 순서로 대기하길 간절하게 바랄 정도로 말이다.
아무리 기름을 퍼먹는 내연기관이라도 연료를 채우는데 채 5분이 걸리지 않는 것에 비해 아직 전기차는 충전에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언젠가 충전 속도가 훨씬 빨라지고 배터리 효율이 좋아지면 장거리 주행도 신나게 할 수 있겠지만 현재는 이것이 한계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신나게 왕복해도 배터리가 남는 수준까지 도달하는 날이 빨리 다가오길 기대해본다.
<출처 : 모터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