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시대가 성큼 다가오면서 자동차 업체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문제는 배터리다. 전기차 중 배터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40%가 넘을 정도. 가격이 비싸거니와 무게도 많이 나가고 충전시간도 오래 걸린다.
자동차 기업에서 무한대로 배터리 충전소를 만들어줄 수도 업는 상황. 배터리 관련 신기술을 꾸준히 개발 중이지만 당장 상용화도 힘들다.
계속해서 배터리 용량과 주행거리는 늘어나고 있는 반면 이미 만들어 놓은 전기차용 배터리는 어떻게든 사용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이중 소비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부분은 바로 충전이다. 내연기관 자동차는 주유소에서 오래 걸려도 5분 이상 주유를 하지 않지만 전기차는 100% 충전은 고사하고 80%까지 아무리 빨라도 30분 정도는 필요로 한다.
당장은 전기차가 많지 않기 때문에 여유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전기차가 급증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내 앞에 2대만 대기하고 있어도 1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오기 때문이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집 앞에 주차를 하고 밤새 완속 충전을 하는 것이다.
심야전기를 사용하면 충전비용도 아낄 수 있고 완속 충전을 통해 배터리 상태를 더욱 잘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상 불가능하다.
당장 내 집 앞 충전은 고사하고 주차할 공간조차 마땅치 않은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전기차 배터리 자체를 교체하는 배터리 스왑(Battery Swap)이 각광받고 있다.
과거 스마트폰이 배터리를 다 사용하면 다른 것으로 교체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배터리 스왑이 최근 주목받고 있지만 이면에는 이미 10년 전부터 국내 업체가 시도한 바 있다.
주인공은 르노삼성으로, 2013년 SM3 Z.E. 차량의 배터리를 교체하는 ‘퀵드롭’ 시설을 제주도에서 운영했다.
사용한 배터리를 탈거하고 충전이 완료된 배터리로 교체하는 방식으로, 4시간 이상이 필요했던 충전시간을 3분 이내에 배터리 교체로 끝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퀵드롭 시스템은 2년 만에 폐지되고 말았다. 시설 운영 비용이 수익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다른 전기차와 호환도 되지 않아 범용성도 부족했다. 미국의 스타트업 배터리 프레이스(Battery Place)는 르노삼성보다 앞선 2008년 배터리 스왑 스테이션을 운영했지만 아무도 전기차에 관심을 갖지 않은 시기여서 실패했다.
이후 배터리 스왑 시장은 중국과 대만 등 동남아시아 시장을 중심으로 확대됐다. 전기차가 아닌 전기 바이크를 중심으로 발전한 것이 특징.
전용 시설이 필요치 않고 일반인이 손쉽게 교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자판기를 연상시키는 바이크 배터리 스왑은 일정 요금을 지불하면 다 쓴 배터리를 충전기에 꽂아 넣고 완충된 배터리를 꺼내 바이크에 장착하는 방식이다.
중국을 포함한 동남아시아 시장은 자동차보다 바이크를 주요 이동 수단으로 활용하고 여기에서 내뿜는 배출가스도 상당한 수준이다.
이 때문에 전기차보다 전기 바이크가 빠르게 보급되기 시작했으며, 여기에 맞춰 배터리 스왑 인프라가 구축된 것이다.
전기 바이크에 이어 다시 전기차의 배터리 스왑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번에도 중국이 배터리 스왑 시장에서 선두를 차지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중국 기업이 아닌 국가에서 주도적으로 배터리 스왑 인프라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전기차 시장에서 확실한 우위를 다지겠다는 것이다.
이 기술을 선점적으로 도입한 업체는 니오(NIO, 蔚来)다. 니오는 중국 전역에 750개 배터리 스왑 스테이션을 보유하고 있다.
2020년 140여 개에 불과했으니 단기간에 배터리 스왑 스테이션을 확충시킨 것. 배터리 교체 횟수도 400만 번을 넘는다.
니오는 배터리 스왑 관련 기술 선두주자다. 이미 배터리 스왑 관련 특허만 1200개가 넘을 정도로 기술 확보에 집중했다.
니오는 배터리 스왑을 통한 새로운 자동차 판매 서비스도 실시했다. BaaS(Battery as a Service)라는 이름이 그것이다.
통상 전기차를 구매하면 차값에서 보조금을 뺀 가격이 소비자가 지출해야 할 금액으로 정해진다. 여기서 값비싼 전기차는 보조금을 제한적으로 받거나 아예 못 받는 경우도 있다.
니오의 Baas는 전기차를 구입하되 배터리는 빼고 자동차만 구입하는 개념이다. 이 때문에 전체 차량 가격에서 7만 위안(약 1315만 원)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여기에 중국 정부에서 30만 위안(약 5640만 원) 이상의 전기차는 배터리 스왑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야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니오와 같은 프리미엄 전기차를 구입하면서 정부 보조금도 받고 1300만 원가량 할인도 받는 셈인 것이다.
배터리는 구독 형태로 임대한다. 70kWh 용량 기준 월 980위안(약 18만 원)을 지불하면 된다.
배터리가 떨어지면 충전할 필요 없이 니오의 배터리 스왑 스테이션을 방문에 새 배터리로 교체하면 그만이다.
새로운 배터리 기술이 추가되면 그대로 장착할 수 있어 주행거리 향상 효과도 누릴 수 있다. 배터리는 계속 바뀌기 때문에 노후화에 대한 걱정도 덜 수 있다. 혹시 모를 화재 사고에 대비한 보험 상품도 발표했다.
중국 최대 배터리 제조사 CATL도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EVOGO라는 이름의 배터리 스왑 스테이션을 런칭한 것.
CATL은 중국 10개 도시에 우선적으로 스왑 스테이션 네트워크를 구축할 예정이다.
CATL의 배터리 스왑은 조금 독특하다. 1개의 큰 배터리를 3개로 나눈 것인데, 근거리 정도만 주행한다면 1개만, 장거리 이동이 필요하면 3개 모두 교환하도록 만들었다.
그만큼 요금도 세분화시켜 소비자들에게 지출 부담을 줄이도록 했다. 배터리 교체 시간도 1분 남짓으로 니오의 배터리 스왑보다 훨씬 빠르다.
단, 이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CATL의 배터리 스왑 규격에 맞춘 전기차를 구입해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이치자동차(一汽汽车)만 해당 규격에 대응한다.
지리자동차(Geely, 吉利汽车)도 적극적이다. 중국 배터리 기술 개발업체인 리판크어지(力帆科技)와 6억 위안(약 1128억 원)을 투자해 교체식 배터리 개발업체를 설립했다.
여기서 개발된 기술은 향후 지리의 전기차에 탑재돼 배터리 스왑 시장을 크게 확대시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지리는 2025년까지 중국 전역에 5천여 개의 배터리 스왑 스테이션을 구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오둥신에너지(奥动新能源)라는 배터리 교환 전문 서비스 업체도 2021년 말 기준 중국 26개 도시에 547개 배터리 스왑 스테이션을 운영하고 있다.
이 업체는 일반 전기차가 아닌 택시와 같은 공공 전기차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 특징.
택시의 경우 일 주행거리가 많아 배터리 소모량이 많은데 최소한의 시간으로 효율적인 전기차 운영이 가능해 만족감이 높다고 자평했다.
이외에 장안자동차(长安汽车), 동펑자동차(东风汽车)와 같은 대형 자동차 기업들도 배터리 스왑 시장 진출을 위한 준비 중이다.
중국 정부는 2020년 5월 배터리 스왑 스테이션을 ‘신 인프라’로 규정하고 베이징을 포함한 11개 도시를 배터리 스왑 사업 시범지역으로 규정한 바 있다. 단순히 필요에 의한 시장 형성이 아닌 국가 주도 사업으로 밀고 있는 것.
이어 지난해 8월 교체형 배터리 기술 표준과 규격 표준 제정에 나서고 있다. 반면 한국은 전기차 배터리 스왑에 대한 이렇다 할 정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출처 : 오토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