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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시승] 늦었지만 괜찮아, 포르쉐 카이엔 쿠페

포르쉐 카이엔 쿠페를 시승했다. 10년 전이었다면 눈이 휘둥그레질 소식이었겠지만, 왠지 덤덤하다. 같은 유럽 출신 SUV뿐 아니라 1천만 원대 합리적인 가격을 갖춘 르노삼성 XM3까지 ‘쿠페형 SUV’를 표방하고 있으니까. 나의 영원한 로망, 911을 계속 만들게 해줄 ‘효자’이기에 고마운 마음이 크지만 포르쉐 배지에 걸맞은 화끈함은 찾을 수 없었다.

1990년대는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가 SUV에 눈을 뜨던 시기다. 시작은 1997년 메르세데스-벤츠가 M-클래스로 끊었다. 철저히 미국을 위해 개발한 차로, 벤츠 최초의 ‘메이드 인 앨라배마’ SUV다. 이듬해 렉서스는 RX를 앞세워 북미 SUV 1번 자리를 꿰찼고, 1999년엔 BMW가 X5로 맞불을 놨다. 세단만 줄기차게 빚던 콧대 높은 이들이 SUV 장르에 뛰어들었다.

이때만 해도 포르쉐까지 SUV를 만들 거란 생각은 아무도 못 했다. RR구조의 스포츠카를 고집스레 고수해온 포르쉐니까. 2002년 카이엔이 나오자 “자본주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비판도 받았고, ‘이중교배의 산물(폭스바겐 투아렉과 플랫폼 공유)’이라며 등 돌린 팬도 많았다. 지금처럼 SUV와 플랫폼 공유가 흔한 시절이 아니었으니, 팬들의 마음도 이해가 됐다.

최초의 카이엔은 폭스바겐과 포르쉐, 아우디의 합작 프로젝트로 싹을 틔웠다. 목표는 ‘스포츠카의 핸들링을 지닌 오프로더’. 약 300여 명의 팀원은 리더 클라우스 게르하르트 볼페르트의 지휘 아래 ‘PL71’이라는 플랫폼을 빚어냈다. 이 뼈대를 3개 회사가 나눠 쓰며 각각 투아렉, 카이엔, Q7을 선보였다. 모두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공장 태생의 배다른 형제다.

쿠페형 SUV로 번진 인기

위에 언급한 차종 모두, 시작은 비주류였지만 회사 전체 판매를 이끄는 주역으로 거듭났다. 이런 활약에 힙 입어 각 제조사는 ‘가지치기’ 모델 제작에 들어간다. 이번엔 BMW X6가 스타트를 끊었다. X5를 바탕 삼아 매끈한 루프 라인을 갖춰 2008년 등장했다. 정통 SUV 비율을 벗은 괴상한 모습에 혼란스러웠지만, BMW다운 호쾌한 운동성능으로 논란을 잠재웠다.

그러나 다른 브랜드까지 이 시장에 섣불리 뛰어들진 않았다. X6는 오랜 시간 틈새시장을 공략하며 독보적인 모델로 자리 잡았다. 7년이 지난 2015년, 결국 ‘라이벌’ 벤츠가 GLE 쿠페를 선보였다. 특유의 곡선 디자인과 맞물려 조약돌처럼 매끈한 모습으로 단숨에 벤츠 ‘4번 타자’가 됐다. 벤츠의 참전으로 간만 봐온 경쟁 업체가 하나둘씩 SUV 쿠페 제작에 들어갔다.

마세라티 르반떼, 람보르기니 우루스, 아우디 Q8, 애스턴마틴 DBX 모두 전형적인 SUV 디자인과 거리를 뒀다. 모두 늘씬한 지붕을 품고 등장했다. 오늘 소개할 카이엔 쿠페도 대표적인 ‘후발주자’다. 지난해 3월 글로벌 공개 이후, 약 1년 3개월 만에 한국 땅을 밟았으니까. 따라서 2002년 카이엔이 나올 때처럼 자동차 팬들의 뜨거운(?) 관심은 느껴지지 않는다.

꽤 다른 카이엔과 카이엔 쿠페의 외모 차이

카이엔 쿠페를 이미지로 먼저 접했을 때, 사실 실망했다. 파나메라가 그랬듯, 이 차도 ‘911과 닮은 점’을 똑같이 어필하고 나섰다. 그래서 뻔해 보였다. 그러나 차는 역시 실물로 봐야한다. 카이엔과 비슷하면서도 느낌이 사뭇 다르다. 가령, 앞 유리와 A필러가 뒤로 더 누웠고, 지붕은 20㎜ 낮췄다. 두툼한 뒷바퀴 펜더 덕분에 어깨 너비는 18㎜ 더 넉넉하다.

㎜ 단위가 작게 느껴질 수 있겠으나, 자동차 디자인에 있어 10㎜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게 다가온다. 카이엔 쿠페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골반이다. 실눈 뜨고 바라보면 911의 잔상이 희미하게 아른거린다. 지붕과 펜더가 만나는 지점이 대표적이다. 완만하게 꺾이는 트렁크 패널 끝마디는 쫑긋 세우고, 속에 어댑티브 스포일러도 심었다. SUV 최초의 장비다.

속살은 일반 카이엔과 같다. 센터페시아 중앙에 자리한 12.3인치 풀HD 모니터가 시선을 잡아끈다. 파나메라처럼 물리 버튼을 최대한 없애고 터치 방식으로 바꿨다. 대신 손으로 누를 때마다 소리와 진동으로 피드백하기 때문에 직관성이 떨어지진 않는다. 기어레버 양쪽 손잡이는 별 기능은 없지만 카이엔의 정통성을 계승하는 요소로 활용했다. GT 스티어링 휠도 포인트.

앞좌석엔 새로운 스포츠 시트를 얹었다. 전동식 8방향 조절 기능을 품었다. 뒷좌석엔 2개의 개별 시트가 기본으로 들어가며, 추가비용 없이 컴포트 리어 시트(벤치형)를 넣을 수 있다. 특히 뒷좌석 엉덩이 높이는 일반 카이엔보다 30㎜ 더 낮다. 지붕 때문에 부족해진 머리공간을 확보했다. 트렁크 용량은 VDA 기준 625L이며, 일반 카이엔(770L)보다 145L 작다.

카이엔 쿠페의 루프 역시 2가지로 나누는데, 총 면적 2.16㎡의 고정식 파노라믹 글래스 루프를 기본 사양으로 제공한다. 일반 카이엔보다 지붕이 날렵하지만 탁 트인 개방감을 전하는 비결이다. 또한, 통합형 롤러 블라인드를 심어 자외선과 냉기를 차단한다. 이외에 옵션으로 카본 루프를 고를 수 있다. 911 GT3 RS처럼 고성능 분위기가 안팎으로 물씬하다.

부드럽고 조용한 주행성능, 짜릿함보단 안락함에 초점

안팎 디자인 감상을 끝내고 운전대를 잡았다. 카이엔보다 앞 유리가 누워 시야가 답답할 듯했으나 기우였다. 평평하고 낮은 대시보드가 한몫 보탠다. 또한, A필러와 사이드 미러 사이로 쪽창문을 시원스레 마련해 기대 이상 쾌적하다. 스티어링 휠 위 아래로 감싼 카본섬유 소재도 신경을 자극한다. 우선 포르쉐의 전통인 운전대 왼쪽 키박스를 돌려 시동을 걸었다.

“갸르릉….” 우렁찬 포효를 기대했지만, 귓가에 정적만 맴돈다. 우리가 6기통 이상 대배기량 엔진 품은 고급차를 탈 때 느끼는 그 감각이다. V6 3.0L 가솔린 터보 340마력 엔진의 잔잔한 숨결은 저 멀리 아득하게 들린다. 모양에 걸맞은 ‘자극’을 기대했다면, 카이엔 쿠페의 아늑하고 조용한 첫인사에 조금 실망할 수 있다. 옆에 911이 있어 차이가 더 크기도 했고.

속도를 높여도, 주행모드를 바꿔도 성격이 달라지진 않는다. 안락하고, 조용하고, 고급스러운 전형적인 프리미엄 SUV다. 포르쉐 타며 방음 얘기하는 게 웃기지만, N.V.H(소음. 진동. 불쾌감) 대책이 대단히 뛰어나다. 심지어 이중접합 차음유리가 없음에도 독서실처럼 정숙하다. 당연히 노면 소음도 꼼꼼히 틀어막았다. ‘조용함’만큼은 동급 SUV 최고 수준이다.

반대로 말하면 뛰어난 안정감 덕분에, 계기판을 확인하지 않으면 속도감을 느끼기 힘들다. 타코미터 바늘이 절정을 향해 치솟아도, 동승자와 속삭이듯 대화할 수 있을 정도니까. 물리력을 무시하는 듯한 코너 움직임, 언제든 원하는 속도로 끌어내릴 수 있는 제동 성능, 페달 밟는 양에 따라 정확히 단수 찾아 들어가는 8단 기어박스 등 종합 완성도는 나무랄 데 없다.

그러나 여느 쿠페형 SUV보다 웃돈 주고 카이엔 쿠페를 사고 싶다면,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포르쉐 배지에 걸맞은 감성적 희열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 있다. 호쾌한 운전재미보단 나긋나긋 풍요롭게 도로를 장악하는 SUV다. 하지만 포르쉐의 오랜 팬의 입장이 아닌, 브랜드의 진입장벽을 낮출 수 있는 모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카이엔 쿠페. 참 좋은데, 포르쉐라서 아쉽다.

물론 느린 차는 아니다. 0→시속 100㎞ 가속은 6.0초에 끊는다. 45.9㎏‧m에 달하는 최대토크는 1,340rpm부터 5,300rpm까지 줄기차게 뿜어낸다. 그 결과 가속 페달을 살짝만 짓이겨도 2,095㎏의 육중한 덩치를 사뿐하게 이끈다. 압권은 고속주행 안정감. 시속 90㎞ 이상에서 가변 리어 스포일러가 135㎜까지 솟아, 바람의 힘으로 차체를 무겁게 짓누르기 때문이다.


<출처 : Daum자동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