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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 박물관을 더 입체적으로 관람하길 원하는 분들 위한 팁

유럽 자동차 박물관 탐방기 - BMW WELT

메르세데스-벤츠를 만드는 다임러의 창업자는 칼 벤츠와 고트립 다임러입니다. 포르쉐는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에 의해 세워진 회사죠. 또 아우디도 아우구스트 호르히라는 엔지니어이자 기업가에 의해 시작됐습니다. 이렇듯 독일 자동차 회사들은 저마다 유명한 창업자를 두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BMW는 어떨까요?

운전의 즐거움을 철학으로 내세운 BMW는 브랜드 가치, 대중성에 비해 회사가 어떤 이들에 의해 세워졌는지 그 시작이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BMW는 다른 제조사와 달리 처음부터 자동차를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된 회사가 아니었습니다. 또한 자동차 회사가 되기까지 복잡한 과정도 거쳐야 했죠.

창업자 이름이 자동차 브랜드에 들어간 경쟁사들과 달리 BMW에 바이에른이라는 지역명이 들어간 것도 이런 복잡한 과정과 무관하지 않은데요. “박물관 이야기를 한다면서 갑자기 웬 BMW 역사?”냐며 고개를 갸웃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오늘 소개하는 내용을 알면 브랜드에 대한 이해는 물론 박물관을 훨씬 입체적으로 둘러볼 수 있습니다. 시간 여행한다는 생각으로 찬찬히 읽어보면 어떨까 합니다.

◆낯익은 이름 오토

BMW는 두 개의 비행기 관련 회사가 하나로 합쳐지면서 만들어졌습니다. 1909년 구스타프 오토가 만든 플루그마쉬넨베르케(Flugmaschinenwerke)라는 이름의 비행기 제작 회사와 1913년 비행기 엔진 제작을 위해 설립된 라프 모토렌베르케(Rapp Motorenwerke)입니다.

그런데 구스타프 오토라는 이름이 왠지 낯익지 않나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흡입-압축-폭발-배기로 이어지는 4행정 엔진을 만든 독일 출신의 발명가 니콜라우스 오토의 아들이 바로 구스타프 오토입니다. 아버지 회사에 근무하던 고트립 다임러와 빌헬름 마이바흐가 의기투합해 지금의 다임러의 초석을 다졌듯, 아들 구스타프 오토가 만든 비행기 제작 회사는 BMW의 시초가 됐습니다.

아버지를 닮아 발명과 제작에 재능이 있던 구스타프 오토였지만 워낙 아버지 명성이 뛰어났고, 그래서 늘 그 명성에 눌려 지냈다고 전해집니다. 사업도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하면서 정부의 권고에 따라 은행 중심의 컨소시엄에 결국 회사 자산을 넘기게 되죠.

이렇게 해서 구스타프 오토가 세운 회사는 바이에른 비행기제조회사(Bayerische Flugzeugwerke)라는 새 이름으로 다시 출발합니다. 1916년 3월 7일의 일로, BMW의 창립일이기도 하죠. 그렇다면 회사를 떠난 구스타프 오토는 어떻게 됐을까요? 자동차로 재기를 꿈꾼 그였으나 아내와의 이별, 그리고 그녀의 사망으로 우울증이 심해졌고, 결국 1926년 43세라는 젊은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맙니다.

◆ 지금의 BMW가 있게 한 요세프 포프

구스타프 오토가 회사를 키우려고 노력하는 동안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칼 라프는 자신의 비행기 설계 능력을 토대로 항공 산업에 뛰어듭니다. 원래 한 항공기 제작 회사의 뮌헨 지사에서 일하고 있던 그는 회사가 문을 닫게 되자 자본이 있는 동업자와 함께 1913년 자신이 근무하던 자리에 라프 모토렌베르케라는 회사를 세웁니다.

2년 만에 직원 수는 거의 4백 명에 이르는 등, 성장하는 듯 보였죠. 하지만 설계 능력과 품질 문제에 발목이 잡히면서 사업에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런데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군수 사업으로 회사를 키울 기회가 찾아옵니다. 하지만 기술력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고, 그렇게 기회를 놓칠 상황에 처하는데 이때 요세프 포프가 등장합니다.

오스트리아 군대의 항공기 프로젝트를 담당하던 요세프 포프는 라프 회사의 가능성을 보고 아우스트로 다임러(독일 다임러의 오스트리아 자회사)의 엔진을 조립하는 하청 업체로 선정, 관리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요세프 포프는 라프 공장엔 탁월한 설계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죠. 마침 아우스트로 다임러에서 제대로 꿈을 펼치지 못한 채 불만에 차 있던 엔지니어 막스 프리츠를 알고 있던 요세프 포프는 칼 라프를 설득해 그를 회사에 합류시킵니다.

요세프 포프의 선택은 옳았습니다. 막스 프리츠는 우수한 성능의 항공기 엔진 타입 IIIa(직렬 6기통)를 개발하는 데 성공합니다. 막스 프리츠의 기술과 요세프 포프의 영업력 덕에 6백 대 엔진 납품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테스트 직전 칼 라프는 건강과 실적 등의 이유로 회사를 떠나게 되죠. 창업자가 떠난 회사는 1917년 이름을 바이에른 엔진 제작 유한회사(Bayerische Motoren Werke GmbH)로 바꿉니다. 바로 BMW라는 이름이 세상에 나오는 순간이었습니다. 또 바이에른주의 문장에서 영감을 얻은 로고 역시 이때 등장합니다.

BMW는 주식회사로 전환하며 사세를 확장해 나갑니다. 직원 수도 칼 라프 때의 10배 수준까지 늘어났죠. 하지만 전쟁에서 패하자 BMW는 항공기는 물론 엔진 제작을 할 수 없게 되었고, 1920년 열차 브레이크 장치를 주로 만드는 크노르 브렘제에 흡수됩니다. 그런데 이 회사는 항공기나 자동차용 엔진을 만드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BMW의 역사가 마감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죠. 이때 결단을 내린 사람이 카밀로 카스티글리오니였습니다.

요세프 포프와 함께 BMW를 이끈 카밀로 카스티글리오니는 유대계 오스트라이인으로 유명한 투자자였습니다. 그는 1922년 BMW의 항공기 제작 설비, 노하우, 그리고 이름 등의 권리를 사들여 바이에른 비행기제조회사(BFW)와 BMW를 합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바이에른 비행기제조회사(BFW)?’ 이미 눈치챈 분도 있을 텐데요. 앞서 소개한 구스타프 오토가 세운 그 회사입니다.

이렇게 해서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던 두 개의 회사가 카밀로 카스티글리오니의 주도 아래 하나가 되었고, BMW의 역사는 이때부터 본격화 됩니다. 요세프 포프는 1922년부터 1942년까지 회사를 경영하며 BMW의 초석을 다졌습니다. 또 막스 프리츠는 항공기 엔진 제작이 금지당한 후 경영에 어려움을 겪었을 때 대박 난 오토바이 R32를 설계해 회사를 위기에서 벗어나게 했습니다. 자본가 카밀로 카스티글리오니, 엔지니어 출신의 경영인 요세프 포프, 뛰어난 설계자 막스 프리츠, 이 세 사람이 없었다면 지금의 BMW도 없었을 겁니다.

* 추가 : 겨우 위기를 넘긴 BMW는 자동차를 제작하는 것이 회사가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길이라 보고 파초이그파브릭 아이제나흐라는 자동차 회사를 인수합니다. 이곳은 고트립 다임러가 만든 DMG, 칼 벤츠가 만든 벤츠& Cie에 이어 독일에서 설립된 세 번째 자동차 회사였죠. 그리고 1929년 BMW의 첫 번째 자동차 딕시(Dixi)가 등장합니다. 영국 오스틴사가 제작했던 오스틴 7을 라이센스한 복제 모델로, 이때부터 BMW의 자동차 브랜드 역사가 본격화됩니다.

<출처 : Daum 자동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