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9년 7월 25일, 지금의 El Toro[엘또로; 황소라는 뜻의 스페인어] 북쪽 인근의Aliso[알리소; 오리나무라는 뜻]지역 샛강에서 하루밤 야영을 명령한 포르톨라는 (이들이 야영한 지역을 포르톨라 언덕들 [Portola Hills]라는 이름으로 아직까지도 사용되는 이름이다.)
다음날 아침인 7월 26일, 탐험대를 이끌고 지금의 클리브랜드 내셔널 퍼레스트(Cleveland National Forest) 지역의 산티아고 캐넌을 따라 강행군을 하여
다음날 밤에는 지금의 오렌지 시의 북동쪽을 거쳐 산타아나 강(Santa Ana River)의 상류 지점인 올리브 시티에 도착하였다.
샌타아나 강 줄기를 발견한 Crespi[크레스피] 신부는 거리상 그 지역에 겨자씨를 뿌려야 할 위치이가는 했으나 여건이 좋지 않았다.
수자원도 풍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인근에는 인디언 거주 지역도 전무한 상태였다. 그래서 크리스피 신부는 씨뿌리기를 포기하고 좀더 나은 장소를 물색하기로 결정하였다.
7월 29일, 강을 건넌 탐험대는 지금의 Placentia [플라센티아; 살기 좋은 장소라는 뜻의 스페인어] 지역을 대각선으로 지나 마침내 브레아 캐넌 지역에 도착하였다.
브레아란 단어는 오늘날에 아스팔트의 원료인 콜타르를 뜻하는 스페인어인데 당시의 이 골짜기 곳곳에서 발견된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색의 액체 구덩이를 ‘아과 네그라’[Agua negra; 검은 물이라는 스페인어] 혹은 브레아라고 불렀다.
그 후, 자동차 산업이 발달한 1900년대 초반에 와서야 ‘아과 네그라’의 가치를 인정받고 로스 앤젤레스 시는 석유 매장 도시로서 상승 가도를 달리게 되는데,
이는 1848년, 골드러시 이 후, 크게 성장한 도시인 샌프란시스코를 제치고 캘리포니아 제1의 도시이며 미 전체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로 성장하는데 일조를 하게 된다.
탐험대는 지금의 오렌지 카운티와 엘에이 카운티의 경계를 넘어 샌디에고에서 출발한 지 14일째 되는날인 1769년7월 30일, 지금의 605프리웨이와 Azuza Rd.가 만나는 인근의 San Gabriel 강가에 도착하였다.
San Gabriel 강가에 도착한 Crespi[크레스피] 신부 일행은San Gabriel 강 인근을 찾아 겨자 씨를 뿌릴 장소를 물색하던 중 그들이 멈춰 선 곳이 바로 오늘날 LA 카운티에 있는 San Gabriel 시의 San Gabriel Arcangel 성당이 세워져 있는 자리였다.
이 지역의 토박이 인디언들은 통바[Tongva]족이라고 불렀는데 특히 이 지역의 통바족들은 사냥과 공예에 재능을 가진 인디언이었다고 기록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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