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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장교 존 셔터

글쓴이: Artchocolate  |  등록일: 01.18.2024 10:56:14  |  조회수: 1350
<스위스 장교  존 셔터 >

스위스 출신의 John Shutter[존 셔터]는 1839년, 7월 5일 캘리포니아의 수도 몬테레이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블린(Blinn) 선장을 대동하고 캘리포니아 주지사 사무실을 방문했다.

셔터는 주지사 알바라도를 만나자, 자신은 스위스의  장교라고 소개한 뒤, 영국 정부와 러시아 정부 그리고 미국 정부의 추천장을 내보이며 

인디안 거주 지역인 지금의 새크라멘토(가톨릭 교회용 "성수 혹은 성물"이라는 뜻의 스페인어)  강 상류 지역의 땅을 불하 받기를 요청하였다.

당시, 캘리포니아의 멕시코 정부는 캘리포니아 땅을 캘리포니아 거주민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어 주던 시대였으므로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주지사 알바라도는 말쑥하게 스위스 대령 장교복을 차려입은 이 신사가 내놓은 각국의 추천서를 검토하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당시 샌프란시스코의 북동쪽 지역은 국토 분쟁 지역이다. 

과거, 1542년 스페인의 왕명으로 Juan Rodriguez Cabrillo [후안 로드리게스 카브리요]가 최초로 캘리포니아와 오레곤 국경까지의 해상 지역을 탐험하여 스페인 영토가 되었지만, 

그 후, 영국은 1579년에 영국인 해적 드레이크가 지금의 샌프란시스코 북동쪽 내륙 지역에  정박한 후, 그 지역을 뉴 알비온이라고 이름짓고 그 지역을 엘리자 베스 1세의 소유로 정하였다고 주장했으며, 

그 후, 1602년 스페인의 깃발 아래 Sebastian Viscaino[세바스챤 비스카이노]가 두번 째로  캘리포니아를 탐험했으나 스페인 국왕으로부터 크게 관심받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1759년에  알라스카에 발을 붙인 러시안들이 캘리포니아 해안까지 출몰하기 시작하는가 하면, 

영국인들도 덩달아 캘리포니아 해안을 넘나들며 바다표범과 물개 밀렵을 하기 시작했다. 

이에  불안을 느낀 스페인 국왕은 그제서야 캘리포니아를 주목 하고 거주민들의 필요성을 느꼈다. 

1769년 2월에 최초로 육지와 해상을 통한 Junipero Serra [주니페로] 신부를 미션팀의 주임 신부로 그리고 바하 캘리포니아 집정관이었던 Gaspar de portola [가스파르 데 포르톨라]를 알타 캘리포니아의 주지사로 임명하고 캘리포니아로 파견하였던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1799년 <Rusian American Fur Company> 라는 러시아 회사가 북 캘리포니아 해안가 Bodega 만 가까이에 Fort Ross 요새를 만들고 1812년부터 러시안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이처럼 16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까지 바다표범의 모피 가죽 무역의 활성화로 모여든 유럽국가, 러시아 그리고 영국과 미국이 지금의 캘리포니아 소노마 지역을 분쟁지역으로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셔터가 원하는 지역은 개발도 안된 동쪽의 인디언 거주 지역이며 영토분쟁 지역의 일부였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인디언은 물론 러시아인들과 미국인들과의 잦은 마찰로 골치가 아프던 알바라도는 셔터를 중재 역할자로 내세우면 사태가 원만해지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갖고, 마침내, 셔터에게 멕시코 시민권과 함께 그에게 4만 9천 에이커(198㎢)의 땅을 불하해 주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인디언의 땅......최근에 발생했던 말라리아 전염병으로 수 많은 인디언들이 사망했지만 아직까지 상당수의 크고 작은 인디언 부족들이 거주하는 공간.....

알바라도는 셔터와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그가 이들 인디언들과도 잘 어울릴 줄 아는 성격의 소유자라는 확신이 들기까지했다. 

그의 일행 중에는 하와이언 원주민들과 인디언 통역자까지 있었다.

당시, 알바라도는 여러 멕시코 정치인과 마찬가지로 프랑스와 미국 그리고 영국이나 러시아 인들이 캘리포니아 땅에 불어나는 것도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특히, 요즘들어 미국인의 증가와 함께 크고 작은 마찰로 골치가 아프던 그는 

어쩜 이 스위스인 신사가 그들과의 마찰도 원만하게 해결하는 역할도 해 주지 않을까? 라는 기대감마저 들었던 것이다. 

잘 하면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알바라도 주지사는 그에게 토지의 소유를 승인하였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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