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몇가지
Thelonious Monk
객석의 조명이 어두워지고
사람들의 시선이 무대로 향합니다.
연주자들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제 공연이 시작 될 겁니다.
그런데,
유독 무대 위 한 남자에게 눈길이 가는군요.
차림새 때문입니다.
그는
중국 청나라 때 쓰던 것 같은 모자를 머리에 눌러쓰고 있습니다.
선그라스를 꼈는데, 안경테가 알을 따라 아주 동그랗고, 그 두개의 동그란 안경테의 윗부분을 두꺼운 일자 모양의 테로 연결해 놓은 것이, 엔티크한 느낌을 줍니다.
수염은 턱을 따라 역삼각형 모양으로 자라있는데, 마치 인도에 사는 종교수행자 같습니다.
번득이는 천에 화려한 문양이 박혀있는 슈트를 입고
손에는 크고 번쩍이는 반지와 시계를 차고 있습니다.
그가 이제 막 피아노 앞에 앉았습니다.
연주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또 그입니다.
연주 때문인데요,
그는
서툰 연주자처럼 거칠고 투박하게 피아노를 치고 있습니다.
또한 중간중간 지속적으로 피아노를 연주한다기 보다는 세게 두드린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이, 피아노를 타악기(percussive)처럼 사용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강한 불협화음적 화성(dissonances)과 각이진, 다른 말로 하자면, 갑작으런 방향 전환을 하는 멜로디적 반전(angular melodic twists)을 아무 거리낌없이 연주의 주 내용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던 그가,
돌연 연주를 멈춥니다.
'뭔가 잘못됬나'하고 관객이 당황할 즈음,
그는
피아노에서 벌떡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1940 년대 어느 날의 당신이었다면,
아마도 그를 향해
'독특하다, 특이하다, 이상하다, 기이하다...' 라고 표현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만약
21세기 어느 날의 당신이라면,
아마도 그를 향해
'그답다' 라고 표현할지도 모릅니다.
평생을 순수한 자기자신으로 살다간 이 뮤지션은 셀로니어스 몽크(Thelonious Monk)라 불렸습니다.
셀로니어스 몽크(Thelonious Monk)는 미국의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서,
현대재즈(Modern Jazz)와 비밥(Bebop)의 창시자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으며, 스탠다드 재즈 레파토리에 혁혁한 공헌을 한 재즈계의 신화입니다.
'기인'으로 불리며 온갖 루머와 오해를 받던 시절을 지나,
'천재'로 불리워지며 당대와 후대의 뮤지션들에게 위대한 영감을 주고,
'아직도 넘어설 수 없는 뮤지션'으로 인식되는,
'그 다움'을 간직한 뮤지션.
바로 그가 셀로니어스 몽크(Thelonious Monk)였습니다.
'천재'에 대한 그의 생각은 이러했습니다;
'Genius
is one who is most like himself'
—Thelonious
Monk
천재란 가장 '자기다운 존재'라고 말입니다.
자기답다...
한평생 순수한 자신을 지켜며 자기다운 음악과 삶을 이루어낸 셀로니어스 몽크(Thelonious Monk)가 나를 자극하기 시작했습니다.
자기답다...
마법의 주문처럼
마음 속 깊은 곳을 두드리더니 이렇게 묻기 시작하더군요.
타인의 눈과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까?
셀로니어스 몽크(Thelonious Monk)의 음악은 오랜 시간, 대부분의 대중과 비평가로부터 과소평가되고 무시되기 일쑤였습니다.
그가 타인의 눈과 생각으로부터 백프로(100%) 자유로웠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러한 부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스타일을 완성하고, 고수하며, 밀고 나갔다는 점입니다.
1947년에 이르러 그는 자신만의 완성된 음악적 형태를 갖추게 되는데요,
그 후, 대략 25년 동안, 음악적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계속 유지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정황은 그가 타인의 입김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명백한 반증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의 이러한 주체적 태도는 셀로니어스 몽크(Thelonious Monk)를 다른 재즈 뮤지션과 확연히 구분짓게하는 '셀로니어스 몽크(Thelonious Monk)다움'의 탄생에 중요한 토대가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음악적 스타일은 아주 조금도 변하지 않았지만
그를 무시하고 비난했던 대중과 비평가들의 입맛이 변함으로서,
돌연 '천재'로 추앙받으며
사람들에게 그와 그의 음악은 열광의 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보일 수 있는 진솔함과 당당함이 있습니까?
셀로니어스 몽크(Thelonious Monk)의 작곡과 솔로 스타일 자체가 당시에는 파격이었습니다. 즉, 기존에는 그렇게 작곡하고 연주하는 뮤지션이 거의 없었다는 얘기가 되는데요,
예를 들어, 심한 불협화음(dissonances)적 화성, 각이진 멜로디적 반전(angular melodic twists), 피아노를 타악기처럼 쓰는 주법, 갑작스러운 묵음, 시간을 조금씩 지연하는 망설임(hesitations), 그리고 공연 중 춤을 추는 행위 등이 표준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던 것이죠.
기존에 거의 사용하지 않은 이러한 요소들로 과감하게 자신을 표현했다는 것은,
그가 이미 자신의 감성과 느낌 그리고 자기다운 표현법을 편견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보일 수 있는 마음의 성숙함- 진솔함과 당당함이 있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가 만약, 기존에 존재하고 있는 표준과 비교해서 자신의 음악을 우등하다거나 열등하다고 판단했다면, 혹은 옳거나 그르다는 식의 평가를 했다면, 오늘날 우리가 듣는 '셀로니어스 몽크(Thelonious Monk)의 음악'은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자기답게 표현함으로서,
아주 특별한 것, 하나밖에 없는 것,
그래서 모두에게 감동과 영감을 주는 '그다운 음악'이 탄생 될 수 있었던 것이죠.
결과적으로,
그의 '자기다움'은 모던 재즈(Modern Jazz)의 시작을 알리는 동시에
전위적 재즈의 시작을 여는 역사적 '자기다움'이 됩니다.
자신에 대한 사랑이 있습니까?
“[Thelonious Monk] was my best friend ...
If it hadn't been for him, I'm not so sure I would have been me.
I learned so much playing with him, being with him.”
—Thelonious Monk
그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자기자신은 자기에게 최고의 친구이며, 만약 그가 아니었다면 자신도 존재하지 않았을 거라고 말이죠. 자기자신과 연주하고 함께 있으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합니다.
확언하건데,
셀로니어스 몽크(Thelonious Monk)는 자기자신을 사랑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여전히 타인의 눈과 생각에 휘둘리고
여전히 스스로 비교하여 열등감과 자격지심에 시달리며
여전히 자신을 미워하거나 혐오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자기가 생각했던 머리 속 자기와는 너무도 다른 실제의 자신을 보면서
깜짝 놀라 도망가버리고 싶어질지도 모릅니다.
어느 날 홀연히
의연하고, 거침없고, 밝게 빛나는
너무도 멋진 자기자신과 마추치는 날이 온다면
진심으로 행복하겠지만,
그 전에 우리는,
더 많은 시간을 자기답지 못한 삶을 살고있는 모순된 자기자신과 매일매일 마주대하며 살아가야만 할 것입니다.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낼 수 있습니까?
자기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마지막 한가지는
모순된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마음.
바로 그것이라 생각합니다.
당신은 어디쯤 와 있습니까?
힘들고 험한 세상에서
자기답게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든 이들에게.
포기하지 않는 그 자체로 이미 너무도 인간다운 지구의 모든 친구들에게.
기대하세요.
이제 기적이 일어날 겁니다.
JM
셀로니어스 몽크(Thelonious Monk)를 소개합니다;
//모든 칼럼의 저작권은 칼럼니스트 김재명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