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10여년을 혼자 지내던 K씨는 어렵사리 재혼을 결정하였다. 겨우 5년 만에 첫 결혼에 실패한 그녀는 정말 열심히 일에 매달렸고, 외국계 은행의 중견간부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녀의 재혼 상대는 의사, 아이가 셋이나 딸린 이혼남이어서 그녀의 부모는 처음에 재혼을 반대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이가 없는 자신에게 하늘이 내려준 귀한 선물이라 생각하며 좋은 엄마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부모의 반대도, 아이들과의 관계도 잘 극복하였는데, 결혼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화려하지는 않아도 어엿한 결혼식을 치르고 싶어하는 그녀와는 달리 남자는 무엇이든 대강 하자는 주의였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결혼식 대신 조촐하게 식사나 하자는 말에 그녀의 믿음은 완전히 깨지고 말았다. 재혼하는 게 무슨 자랑이라고 결혼식을 하느냐, 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결혼식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당사자들에게 결혼식은 축의금이나 받자고 하는 행사가 아니다. 지인들 앞에서 자신들의 결합을 축하받고, 열심히 살겠다고 약속하는 엄숙한 자리이다. 재혼의 경우 경제적인 이유, 주변 사람들에게 두 번씩이나 신세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서 결혼식을 생략하기도 한다. 그것이 최선이라고 두 사람이 합의한 것이라면 문제될 게 없다. 하지만 K씨처럼 결혼식을 하고 싶어하는 여자의 마음을 무시하고, 도둑 결혼하듯이 절차를 생략한다는 것은 배려의 차원을 떠나 과연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하는지, 그 마음이 의심스럽다. 비록 재혼이라고 해도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고, 떳떳하게 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상대방이나 주변으로부터 생략해라, 대강 해라, 이런 말을 듣는다면 당사자는 큰 상처를 받을 게 분명하다. 또한 여태껏 따로 살던 두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같이 살자”며 살림을 합치는 것도 어색하다. 소박하게라도 절차를 다 밟아 부부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K씨의 경우에도 해결책이 없지는 않다. 난 상대 남성에게 결혼식은 가족모임으로 대신하되, 청첩장을 만들어 주변에 재혼사실을 분명하게 알리라고 권하고 싶다. ‘같이 사는 여자’가 아닌 ‘아내’라는 이름표를 붙여주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재혼, 하다못해 삼혼이라도 함께 살기까지 정성을 다해 준비하고, 상대로 하여금 자신이 배우자로 인정받고,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꼭 알게 해줘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