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초등학교 모임이 있었다. 어릴 적 친구들을 만날 때면 온몸을 옥죄는 긴장에서 벗어나 무장해제가 되곤 한다. 그날도 그랬다. 자정을 넘기도록 술잔을 기울이고 있으려니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감정과 기억들이 다 쏟아져 나오는 기분이었다.
새벽 1시에 집에 들어와서는 요가 매트를 깔고 운동을 했다. 어지간해서는 운동을 빼먹지 않는데다가 가슴에서 열기가 가라앉지를 않아서 진정시킬 시간이 필요했다. 말 그대로 달밤에 체조를 1시간 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온몸이 흥분상태였다. 이대로는 잠이 들 것 같지 않아 무작정 집을 나섰다.그 시간에 내가 갈 곳이라고는 딱 한 군데 밖에 없다. 산이다.
새벽 2시, 휴대폰 불빛에 의지해서 깜깜한 산길을 걸어 북한산 형제봉으로 향했다. 간혹 느껴지는 인기척에 화들짝 놀란다. 새벽기도를 하러 온 사람들인 것 같다. 무서운 마음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재촉했다. 1시간 코스를 정주행했다.
시원한 새벽공기가 머릿속을 채워간다. 오랜만의 심야 산행이었다. 돌이켜보면 20대에는 1주일에 2-3번은 산을 찾았다. 열정과 에너지를 감당할 수 없었던 때였다. 또 이상은 높은데, 현실이 뒤따르지 않아서 울분이 쌓였던 때이기도 했다.
당시는 주로 도봉산에 올랐다. 도봉 삼봉 중 하나인 만장봉은 주변에 뽀족한 바위들이 많아서 올라가는 데만 빠른 걸음으로도 3-4시간 걸리기 때문에 체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오를 수 없는 난코스였다. 희미한 후레쉬 불빛도 곧 사그라들었다. 건전지 살 돈도 없어서 오로지 감각에 의존해서 어둠을 뚫고 걸을 뿐이었다.
"보다 깊고 의연하라. 세상의...."
내 마음을 울렸던 선생님의 말씀을 삶의 지표로 삼기 위해 손가락을 깨물어서 백지에 “보다 깊고 의연하라.”고 썼다.
어마어마한 열정이 있음에도 풀어낼 길이 없던 나는 일부는 술과 유흥 같은 걸로 풀고, 일부는 이렇게 산에 오르면서 풀어냈다. 그러면서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되고, 선우를 시작하고, 오로지 나 자신의 전투력과 전술로 장벽을 넘으면서 모든 일을 나 혼자 다 할 수 밖에 없는, 마치 각개전투를 하듯 그렇게 20여년을 살아왔다.
얘기를 풀다 보니 등산 애찬론처럼 되었다. 늘 깨어있으라고 스스로를 다그치며 살다 보니 자면서도 일하는 꿈을 꾸고, 온몸의 긴장이 풀리지 않아 열에 들뜨는 때가 있다. 이런 증상이 언제까지 계속 될지는 모르지만, 난 기꺼이 이런 몸과 마음의 각성을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방법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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