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궁창에 던져진 기분입니다. 이럴 수는 없어요.
난 정말 그 사람 사랑했고 다 바쳤어요.
그래서 더 용서가 안 돼요. 이대로 헤어질 수 없고 갈 데까지 갈 겁니다.
주변에 우리 관계 다 알릴 거고요.
나를 기만하고 내 감정을 욕보인 거 톡톡히 대가를 치르게 할 거예요..”
“선생님. 그렇게 하시겠다는 결론이 뭔가요? 말씀대로 사랑했던 분인데….”
“그 사람 내가 아니면 안 돼요. 너무 마음이 여리고 착해서..”
남자의 과격한 언사와는 달리 그녀와 끝까지 함께 하고 싶은 게 그의 진심이었던 것이다. 내게는 이 일을 오래하면서 체득한 감각이 있다. 그에게서 진정성이 느껴졌다.
사실 1시간 전쯤 그 남자가 만나고 있던 여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한 달 정도 만난 건데, 자기가 남편이나 되는 줄 아나 봐요. 연락 안 되면 수십 번 전화하고, 매일 전화에, 문자에, 거의 협박성이에요. 당황이 되고, 무섭기까지 해요.”
“그럼, 싫다는데도 그분이 그러는 건가요?”
“그건 아니에요. 처음에는 잘 만났죠.”
여자는 그 남자의 감정에 대해 자신도 일부분 책임은 있다고 했다. 하지만 겨우 한 달 만난 거고 감정이 변할 수도 있지 않으냐는 것이다.
여자의 얘기만 들으면 남자가 성격 안 좋은 스토커 같았고, 그래서 확인도 하고 따끔하게 경고를 하려고 남자에게 전화한 것인데, 실상은 여자의 얘기와는 좀 달랐다.
나이와 관계없이 연애기간이 긴 커플과 짧은 커플의 특징이 있다.
오래 만난 커플들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롱런하고, 결혼해서도 불륜, 도박 같은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면
무난하게 잘 산다. 반면, 만난 지 얼마 안 되는 커플들은 관계에 대한 내성이 길러지지 않아
말 한마디, 사소한 오해가 시한폭탄이 된다.
이 커플이 바로 그렇다. 연애에 서툰 이 커플을 중재해 보려고 나서면서 두 사람 사이의 짧지만 깊은 스토리를 알게 되었다.
남자는 50대 후반, 여자는 50대 초반이었다. 남자는 경제력이 있고 중후함이 느껴지는 멋쟁이였고, 여자 역시 자기 관리를 잘해서 나이에 비해 젊어 보였다. 남자는 수년 전 사별하고 재혼상대를 찾다가 이상형을 만난 것이고, 여자도 첫 만남에서 남자에게 호감을 느꼈다.
이후 두 사람은 영화 같은 한 달을 보냈다고 한다.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재혼 얘기도 오가고 가족까지 소개할 정도가 되었다.
“우리 집 데려가서 나 사는 것도 보여주고 심지어 통장까지 공개했어요. 내 모든 걸 보여준 거죠. 그것만큼 확실한 고백이 어딨습니까? 좋아합디다.”
남자는 전형적인 한국 남자였다. 여자와 깊은 관계를 맺었으니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 연령대 남자들이 그러하듯 권위적인 면도 좀 있었다. 서로 좋을 때야 ‘내 사람 책임진다’는 확실한 태도로 보이지만 좀 힘들어지면 집착과 고집으로 받아들여진다.
두 사람에게 그런 위기가 닥쳤다. 하루가 멀다고 만나 사랑을 불태우던 중 여자가 몸이 아픈 때가 있었다.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만나는 것도 싫다고 하고, 전화도 대충대충 받았다고 한다.
그런 경우 연애경험이 있는 노련한 남자였다면 꽃다발을 보낸다거나 좀 세련된 방법으로 위로해서 점수를 땄을 텐데, 이 남자에게는 여자 마음이 변한 걸로 보여서 당황하고 조급해진 모양이었다.
남자는 자꾸 보채고, 여자는 자신의 건강을 배려해주지 않는 남자에게 실망하고, 이렇게 티격태격하다가 급기야 남자는 “말한 거 전부 녹음해뒀다. 안 만나주면 우리 관계 다 폭로한다”는 식으로 협박하고야 말았다. 여자를 겁줘서 다시 돌아오게 할 심산이었는데, 여자는 그 일로 인해 완전히 마음을 접게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 전화를 해서 하소연을 한 것이다.
상황이 안 좋을 때는 무엇보다 서로 간에 해서는 안 될 말을 조심해야 하는데, 연애 경험 없는 초로의 남자가 절박한 심정에서 자기 할 말만 해버린 것이다. 이럴 때는 더는 말이 오가는 것은 무의미하고, 한 템포 흥분을 가라앉히고 감정을 조절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게 그분 순정이에요. 표현은 거칠었지만, 자기감정 속이지 않고 순수한 거죠.”
“대표님은 남자 편이에요?”
“선생님.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해요? 까딱하다간 돌이킬 수 없습니다.”
“여자 편만 드는 거요?”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감정을 나한테 쏟아부었다. 듣기 거북한 말도 있었지만, 상황을 진정시키려면 별도리가 없었다.
“자. 지금부터 1주일간은 절대 통화하시지 않아야 합니다. 1주일 후에 셋이 만나는 겁니다.”
두 사람에게 일종의 평화중재안을 제시했다. 1주일 동안 감정을 가라앉히고 나면 마음이 좀 수그러들 수도 있고, 그때 가서 화해를 시키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1주일 후.
여성이 나오긴 했는데, 겁이 났는지 덩치가 좋은 집안 동생을 동행했는데 그것이 남자를 자극했다. 본인은 그동안 반성문도 쓰고 나름대로 노력했는데도 여자가 여전히 마음을 안 준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당신에게는 내가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조울증이 어떻고, 하는 식으로 여자를 자극하고 말았다.
결국 동행한 남자와 싸우는 상황이 벌어지고, 분위기가 정말 살벌했다. 개개인으로는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고, 서로 잘 어울릴 수도 있었음에도 연애과정에서 안 좋은 일이 있을 수도 있는데 그것을 노련하게 넘기지 못한 것이다.
남자와 여자를 떼어놓고 각자에게 말했다.
“저분 얘기는 결국 사랑한다는 역설적인 표현인데, 그 감정이 너무 절실하다 보니 평정심을 잃은 것 같습니다. 더 이상 아무 말씀 하지 마세요.”
“선생님. 남자로서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은 지켰어야죠. 남자가 여자가 마음에 들어서 집앞에 가서 만나달라고 하면 그때까지는 멋있게 봐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욕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말을 너무 잘못하셨어요. 잘못하다가는 스토커로 몰려 경찰서 갑니다. 상황이 너무 안 좋습니다. 명예롭게 물러나는 걸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는 2차 중재안을 내놨다. 2주 후에 다시 한번 만나기로 한 것이다. 두 사람 사이는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지금으로서 최선은 이들이 더는 상처받지 않고, 잘 헤어지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인생 경험과 연애 경험은 별개다.
나이가 많건, 적건 고수는 고수고, 하수는 하수다.
나는 많은 생각을 하며 2주 후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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