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몸으로 쫓겨나기도 몇 번이나 했어요. 맞기도 했고요.”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그녀는 자신이 이혼한 이유를 털어놓았다. 차마 하기 힘든 얘기였을 텐데도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그만큼 재혼이 절실하다는 것이고, 나를 믿고 있다는 것이리라.
그녀는 내가 결혼시킨 여성이었는데, 몇 년 만에 다시 찾아온 것이다. 이 업종에서는 말 그대로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결혼해서 잘 살면 소식이 없기 때문이다.
“애는 남편이 데려갔어요. 제가 잘못을 좀 하기는 했지만, 너무했죠.”
남편은 공무원이었다. 기억하기로는 성실하고 성격도 좋은 사람인데, 왜 그녀에게 그렇게 모질게 굴었을까?
그녀의 눈물에 마음이 약해졌지만, 중매를 하면서 몸에 체험적으로 밴 것이 있다. 가정사는 부부 양쪽의 얘기를 다 들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남자에게 전화를 했더니 한숨을 쉬면서 만나서 차 한잔 하자고 했다. 몇 년 만에 만난 그는 예전보다 주름이 많이 늘고 초췌한 모습이었다.
“그래도 그 여자랑 이혼하고 좋아진 거예요. 같이 사는 동안은 지옥이었죠.”
알몸으로 쫓아냈다는 건 그녀의 과장이라고 했다. 속옷 차림으로 밤에 잠시 문 밖으로 밀어낸 것이라고 한다.
“처음 만났을 때 내 눈을 의심했죠. 예쁘고 착하고··· 헛된 꿈인 줄만 알았는데, 그게 이뤄진 거에요.”
그렇게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겼는데, 결국은 정신까지 빼앗겼다는 것이다. 결혼을 앞두고 그녀는 친구가 자기 신용카드로 수백만 원을 쓰고는 소식을 끊었다면서 그 돈을 못 갚아 카드회사에서 회사까지 찾아온다고 도와달라고 했다. 그 말을 믿고 이자와 연체료까지 천만 원 가까운 돈을 갚아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씀씀이가 컸지만, 남자가 쩨쩨하다는 말 듣기 싫어서 웬만한 것은 그냥 넘어갔다고 한다. 옷장을 열 때마다 못 보던 옷들이 있었지만, 매번 결혼 전에 입던 거다, 친구가 안 맞는다고 준 거라고 했다.
결혼 3년째 되던 어느 날, 월차를 내고 쉬고 있는데, 카드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카드 연체 대금을 빨리 내라는 것이었다. 자세히 알아 보니 카드 서너 개가 모두 비용이 수백만 원씩이었다. 청천벽력 같았다. 집에 들어온 아내를 추궁했더니 거의 병적인 수준으로 쇼핑에 집착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동안 카드 비용을 어떻게 갚았냐고 하니까 카드 돌려 막기도 하고, 약간의 사채도 있다고 했다.
처가로 달려갔다.
“자네 볼 낯이 없네. 우리도 당할 만큼 당했어. 내 카드, 지 동생 카드까지 갖다 쓰는 바람에 걔 결혼하고 나서 카드 빚 갚느라 애 먹었다네.”
장모님은 울면서 딸을 용서해달라고 애원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흠칫 했다. 그녀가 몇 년 전 와서는 1000만원을 빌려달라고 한 것이다. 고객과 돈 거래는 금기사항이라 안 받을 생각으로 300만원을 주었고, 실제로도 아직 못 받은 상태였다.
그녀에 대한 연민 못지않게 나도 인지하지 못한 그녀의 쇼핑중독으로 고통을 겪은 그 남자에 대한 미안함도 컸다. 다행인 것은 그 남자는 전처 소생 아들을 아껴주는 착하고 알뜰한 여자를 만나 재혼했다는 것이다.
그녀의 사례는 내가 배우자를 만날 때 쇼핑중독을 확인해야 한다는 것을 최초로 언급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내 생각에 현대인들은 어느 정도 쇼핑에 중독되어 있다. 쇼핑할 수 있는 채널이 너무도 많고, 무엇보다 신용카드가 일반화해 있기 때문이다. 쇼핑중독은 90년대 이전에는 없었다. 신용카드가 드물었던 당시는 갖고 있는 현금 한도 안에서 소비를 했던 것이다.
문제는 그녀가 쇼핑중독을 극복할 의지가 있느냐였다. 평범한 사람은 자기 혼자만의 피해로 끝나지만, 인상이 좋은 여성들은 외모를 앞세워 자금 조달을 하기 때문에 주변의 피해도 크다. 나도 그녀에게 300만원을 빌려줬지 않았던가.
“이런 사람 만나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쳐라”는 대상이 바로 쇼핑중독자이다. 얼마를 손해 받건, 어떤 사람이건, 거기서 멈추고 그 즉시 도망쳐야 한다. 그래야 남은 행복을 지킬 수 있다.
내가 신중하게 찾은 그녀의 재혼상대는 아주 꼼꼼하고 치밀한 성격의 사업가였다. 그 정도 남자면 그녀를 잘 파악하고 습관을 고쳐주면서 결혼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교제 과정에서 나는 그 남자에게 여러 차례 암시를 했다.
“그 분 다 좋은데요, 돈을 많이 벌어본 경험이 없어서 돈 관리 잘 못하고 경제관념이 없는 편입니다. 그러니까 돈 관리는 사장님이 직접 하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두 사람의 결혼 소식을 들었고, 몇 년이 흘렀다. 그런데 그녀가 이혼을 하고 다시 나를 찾아온 것이다. 안 봐도 상황이 뻔해서 2번째 남편에게는 아예 확인 전화도 안 했다. 그녀는 신세 한탄을 하면서 나한테 또 돈을 빌려 달라고 했다.
그녀에 대해 냉정하게 생각해봤다. 본인 외모에 자신이 있으니까 거듭되는 이혼에도 자꾸 나를 찾아오는 것이다. 그 환상을 깨고 자신의 결함과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그녀는 또 실패할 것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녀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솔직하고, 분명하게 얘기했다.
“00님은 이제 마흔이 목전입니다. 아직은 피부도 좋고, 인상도 유지하고 있지만, 여자가 마흔이 넘으면 남자를 만날 수 있는 생물학적 한계에 부딪힙니다. 특히 00님처럼 가진 게 아무 것도 없으면 한계 수명이 고작해야 2~3년입니다. 이제 정신 안 차리면 정말 큰일 납니다. 00님이 노력 안 하면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저축 안 하면 인생 비참해지는 건 순식간입니다. 여동생 같아서 정말 큰 맘 먹고 하는 말입니다.”
한 남자가 있었다. 사별한 후 아이들을 본가에 맡기고, 지리산 길목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있었다. 먹고 사는 것은 여유로웠다. 단, 사회와 격리되어 있었다. 그런데 난 오히려 그 이유 때문에 그녀의 재혼상대로 그 남자를 추천했다.
“답답해서 어떻게 그런 데서 살아요? 귀향 살이 같아서.”
“도회지 생활 다 잊고 거기 가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남은 인생이 편안할 수 있습니다.”
내 어조가 확고하게 들렸는지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이 없었다. 내게 300만원 빌려간 것은 과수원 수확 물로 보내달라는 농담과 함께 그녀와 작별했다. 생각해보고 연락하겠다던 그녀는 그 후로 더 이상 연락이 없었다. 아마 어디선가 소개를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신 못 차리고 어떤 비참한 모습이 될 지, 그런 그녀와 만나는 상상을 가끔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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