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윗감을 찾는 한 어머니와의 전화다.
“나이는 서너살 터울이 좋을 거 같아요.”
“직업은요? 특별히 선호하시는 직업이 있으신가요?”
“공기업도 안정적일 것 같은데…. 직업을 일일이 따지진 않고요. 기왕이면 이공계 출신이 어떨까 싶네요. 기술이 있거나 전공이 확실하면 걱정할 게 없잖아요. 요즘은 그렇지 않나요? 제 생각이 틀린 건가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눈이 번쩍 뜨였다. 요즘 들어 부쩍 이공계 전공 남성의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음을 느끼던 차였다.
“어머님이 잘 보셨어요. 요즘 이공계 남성들 대셉니다. 커리어가 확실하고, 자격증 딴 분들도 많고, 자기 분야에서 좋은 대우를 받으니까요.”
사실이 그랬다. 90년대 중반만 해도 결혼현장에서
이공계 전공자들은 확실하게 차별을 받고 있었다.
내 기억에도 난감한 경험들이 많았다.
“어머니. 이러 이런 남성을 추천하려고 하는데요. 나이는 00살로 따님과 3살 차이고요.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어요. 그래서 지금….”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여성의 어머니가 끼어들었다.
“컴퓨터요? 그거 공부해서 제대로 된 직장이나 다닐 수 있나요? 다른 분 찾아주시면 좋겠는데….”
“어머님. 일단 따님과 상의 한번 해보세요. 지금은 초기 단계지만, 컴퓨터가 대중화되면 제일 주목받을 전공이에요. 앞서나간 거죠.”
“그렇게 능력이 있는 사람이니 우리 딸 말고도 여자들이 줄을 섰겠네요.”
부모님은 전통적인 가치관이 있으니 그렇다고 해도 당사자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00님. 이 남성은 00살이고요, 연봉은 000원 정도라고 합니다. 부모님은 공기업에 근무하시다가 정년퇴직하셨고요. 키는 00cm, 전공은 공학분야입니다.”
“전 공대출신별로 안 좋아해요. 만날 기계만 다루는 일을 하면 너무 무미건조하잖아요. 그냥 법대 출신으로 소개해주세요.”
“법대는 법만 다루는데, 딱딱한 건 마찬가지죠.”
거절할 뜻으로 둘러대는 말인 줄 알면서도 소개한 사람 마음 몰라주는 게 서운해서 한마디 하고야 말았다.
이랬던 것이 15-20년 만에 상전벽해다. 20년 전에는 다른 조건이 월등히 좋은 경우에 10명 중 2명 정도가 겨우 이공계 전공자와의 소개에 응했는데, 지금은 거의 거절을 안 한다. 거부반응이 없는 것은 물론, 아예 이공계를 소개해달라는 경우도 많아졌다. 배우자조건에서 이공계가 많이 부각되는 추세이다. 단순히 특정 직업을 선호한다기보다는 이공계 전체가 다 그렇다.
“00님. 남성분이 시스템 엔지니어인데, 어떠세요?”
“전…. 좋아요. 좋은 직업 갖고 계시네요.“
90년대는 상경대를 비롯한 인문계 출신 배우자들이 강세였다. 당시에는 자연계, 이공계는 비전이 없다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다가 IMF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정년의 개념이 흔들리면서 인문계, 이공계 구분이 모호해지고, 직업의 안정성을 우선하게 되었다.
얼마 전 화공과 박사학위를 받고 연구원으로 있는 남성을 소개받은 여성의 어머니와 통화를 한 적이 있다. 예전 같으면 인기 없는 기초과학이라고 항의를 받았을 만도 한데, 어머니의 목소리는 밝았다.
“남편은 명문대 사회학과를 나왔어요. 명문대 출신이라는 프라이드가 대단히 강했죠. 하지만 그러면 뭐합니까? 결국 자그마한 회사에서 평생을 보내고, 60세도 안 되어 퇴직을 하고 나니 앞으로 살아갈 일이 막막하더라고요. 딸아이는 나처럼 안 살았으면 좋겠어요.”
“따님 세대는 어머님 때와는 다르죠. 자기 능력도 있고, 그 남성분은 자기 분야 전문가이니까 무슨 걱정이 있겠어요.”
“제가 그랬어요. 옛날 같으면 이공계열이라고 하면 실험실에서 비커나 만지고 있을 것 같고, 공장에서 기름때나 묻히고 있을 것 같았으니까요. 이제는 절대 그렇게 생각 안 하죠.”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점점 사라지고, 명퇴가 만연한 시대에 그 어느 때보다도 먹고 사는 문제가 더 절실하고, 이런 인식이 결혼에 반영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이제 남성의 직업에 대한 여성들의 인식은 실용화되고 있다. 이공계 인기가 올라간다고 해서 다른 직업의 위상이 떨어진 것은 아니다. 대기업, 공기업, 금융기관, 교육공무원 등의 배우자 선호도는 여전하고, 배우자조건에서 새로운 가능성에 주목하는 것이다.
보다 실용적인 직업 인식은 긍정적인 변화이다. 분야를 막론하고 안정적인 직업을 선호하는 것은 우리가 기술을 중시하고, 현실적인 가치관으로 전환하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문득 단체미팅 협의차 방문했던 모 기업 본사에서 만난 고졸 엔지니어가 생각난다.
기름 투성이의 작업복을 입은 그의 모습이 당당하다고 느껴졌던 것은 30대 중반에 벌써 15년 가까이 현장에서 근무한 베테랑 엔지니어로 인정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탄탄한 자기 실력이 있는데, 학벌이나 전공계열이 무슨 문제가 될까. 이런 바람직한 변화의 바람이 불면서 진짜 중매할 맛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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