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만난 여성은 30대 중반이라는 나이에 비해 앳되고 귀여운 인상이었다. ‘인상은 이렇게 밝은데, 왜 그런 어두운 얘기를 했을까?’ 싶어 의아했지만, 여성의 외모가 마음에 들었던 A씨는 기분 좋게 그녀를 대했다.
가벼운 대화를 몇마디 주고 받은 후였다. 갑자기 여성의 얘기가 우울모드로 급변했다.
(부모님이 보태주지 않아서 힘들게 공부했다.)
(아버지와 오빠랑은 사이가 별로 안좋다.)
(지금 다니는 회사가 망했으면 좋겠다. 그럼 일 그만두고 여행 다닐텐데.)
(요즘은 하루 종일 한마디도 안하는 날이 많다. 사람들 만나기가 싫다.)
(난 생명을 소중하기 생각한다. 횟집 운영하는 남자를 소개받아 기분이 나빴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상처가 많다. 더 이상은 상처받기 싫다.)
(잘생긴 남자도 많이 만나봤는데, 다들 상처만 주고 떠났다.)
이건 대화가 아니라 거의 넋두리 수준이었다. 여성은 A씨의 말은 들을 생각도 안하고 신세한탄 하듯이, 얘기를 하고 싶어 못견디는 사람처럼 계속 말을 했다. 이렇게 2시간 30분을 보내고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성과 헤어지면서 A씨는 정중하게 “오늘 만나서 즐거웠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그의 속마음은 전혀 달랐다. 여성에게 애프터를 하지 않을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 여성은 A씨에게 문자를 자주 보냈다. 안부도 묻고, 가볍게 지나가는 말투로 점심 메뉴를 묻는다거나 혼자 영화를 보러 갔다는 등의 일상적인 얘기도 했다. A씨는 간단하게 답장을 보냈지만, 전화를 걸지는 않았다. 그녀를 다시 만날 생각이 없는 그로서는 그 정도가 최선이었다.
그러다가 여성에게 전화가 왔다.
“그날 제가 너무 쓸데없는 얘기를 많이 한 것 같아서요.”
그러다가 다시 넋두리 비슷한 얘기가 계속되었다. 그녀가 했던 많은 얘기의 결론은 지금은 심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남자를 만날 자신이 없다, 염치가 없어서 만나자는 말도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얘기를 듣던 A씨는 이 정도에서 정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좋은 분 만나세요.”라는 말로 얘기를 끝냈다. 좋은 분 만나라고는 했지만, A씨가 보기에 어떤 남자도 그녀처럼 불안한 심리상태를 가진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은 안쓰러운 마음에 그녀의 얘기를 들어줬지만, ‘왜 맞선을 보러 나왔을까?’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