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야기

이웅진

결혼정보회사 선우 대표

  • 현) 웨딩TV 대표이사
  • 전) 우송 정보 대학 웨딩이벤트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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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조남'의 시대가 왔다

글쓴이: sunwoo  |  등록일: 01.08.2020 07:28:03  |  조회수: 3815

28년동안 10만여명을 만났고, 3만명 넘게 결혼시키면서 특히나 기억에 남는 건 혼자 돌아서던 쓸쓸한 뒷모습, 실망하던 표정, 아쉬움의 목소리들이다.

결혼하고 싶어서 나를 찾아오는데, 원하는 상대를 만나지 못했을 때 그 심정이 어떨지 잘 알기 때문이다.

때로는 인식과 관습의 벽에 막혀 정말 유능하고 좋은 사람이 결혼은커녕 만남조차 이뤄지지 않는 경우에는 문제의식을 절실하게 느끼기도 한다.

10년이 넘었는데도 기억에 생생할 만큼 가장 미안한 만남 중 하나가 있다.

30대 초반의 여성 외교관의 소개를 진행한 적이 있다. 당시 국내 근무가 얼마 남지 않았고, 몇달 뒤 해외 공관으로 발령이 날 것이라고 했다.

“이번에는 어디서 근무를 하게 되나요?”
“아직 미정인데요, 험지가 될 수도 있어요.”
“험지라면?”
“아프리카나 중앙아시아, 그런 곳이죠.”
“아프리카요?”
“외교관들은 순환근무제라서 2~3년 단위로 옮겨다녀야 해요.”

말문이 막혔다. ‘결혼은커녕 만남도 힘들겠구나’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머릿속으로는 이 여성을 누구와 만나게 할지 복잡하게 거미줄이 얽히고 있었지만, 얼마 후 어디가 될지 모르는 해외로 부임하는 여성 외교관에게 소개할 만한 남성은 거의 없었다.

국내 최고 명문대를 졸업하고, 누구나 선망하는 분야에서 활동하는 이 유능하고 멋진 여성에게는 전문직종 남성이 어울리는데, 그런 남성들이 자기 일을 두고 여성을 따라 해외로 가기는 어렵다. 한국의 결혼문화 특성상 대부분 남편의 직업을 중심으로 거주지가 결정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겨우 몇 번의 만남을 성사시켰지만, 예상대로 여성을 따라 해외로 이주하거나 굳이 장거리로 떨어져 만나겠다고 하는 남성은 없었다. 결국 그 여성의 소개는 그렇게 마무리됐다.

2000년대만 해도 이런 케이스는 희소했다. 하지만 지금은 각계각층으로 진출한 여성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결혼적령기가 늦어지고, 출산율이 낮아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상이 변했는데도 배우자 선택의 사회적 관습과 인식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 남성들이 하던 롤을 여성들이 하는 경우가 많아지는데도 여전히 남성 중심으로 부부 역할이 정해지고, 주거지가 결정된다. 이로 인해 사회활동이 활발한 여성들은 배우자를 만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제 배우자 만남의 패러다임도 바뀌어야 한다. 일하는 여성이 점점 늘고 있는데, ‘살림은 여성이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좋은 만남에 장애물이 된다. 여성의 활동을 지원하는 외조남이 필요한 시대다.

나는 20여년 전에 ‘남성신부를 맞이하라’는 칼럼을 통해 외조남의 출현을 말한 바 있다. 그때는 너무 시대를 앞서갔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제 그 시대가 온 것이다.

물론 ‘외조남’에는 조건이 있다. 직업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살림을 한다는 개념이 아니다. 맞벌이 개념은 아니더라도 프리랜서와 같이 시간이 날 때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어느 정도의 경제력이 있는 것이 좋다.

나는 전업 주부로서 자기 삶을 포기한 채 가족 뒷바라지만 하다가 공허함을 느끼는 케이스를 많이 봤다. 외조남도 마찬가지다. 여성의 활동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거나 생활 안정에 더 큰 기여를 한다면 여성 중심으로 가정을 재편하는 편이 낫다. 그렇더라도 자기 자신을 잃어서는 안 된다.

그 여성 외교관을 지금 소개하게 됐다면 외조남과의 만남을 적극 밀어붙였을 것이다. 그런 생각에 공감하는 남성들도 예전보다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결혼을 했는지, 결혼을 했다면 어떤 남성을 만났는지 안부가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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