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봉투엔 20불짜리 한장이 들어있었다.
한국에서 온 어릴 적 친구가 약 3주 동안 우리 집에 머물었었다. 친구가 떠난 며칠 후 우연히 화장대 서랍을 열어보니 하얀 봉투 위에 짧막한 편지가 적혀 있었다. “그 동안 고마웠어…아주 작지만 그냥 웃어줘. 우리 나이가 되니 주는 것에 익숙해졌지만 누군가 그러더라 우리도 가끔씩 적은 것이라도 받고 싶다고. 그래서...” 또박 또박 써 내려간 그친구의 글을 읽으며 가슴이 뭉클해 찔끔거리며 울려다가 그 봉투 속에 들어있는 20불을 보며 난 배시시 웃고 있었다.
그 친구는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단짝이던 이었으니 거의 반세기를 함께 한 셈이다. 어쨋든 우리는 몇 십년동안 쌓인 추억과 한을 풀기에 여념이 없었다.“ 속이 다 시원하다. 아마 네게 이런 얘길 다 안 했더라면 난 계속 아픔의 덩어리를 짊어지고 살았을거야.” 녹록치 않은 세월을 지나다 보니 철부지들이 겁날 것 없는 용감한 아줌마가 되어가는 이야기 속에 우리는 몇 년 후 맞게 될 환갑 여행 얼개를 짜 보는 소득도 창출해 냈다. 그녀는 들뜬 목소리로 우리 둘만의 여행을 만들어 보자면서 그 애 친척이 있는 헝가리행으로 정했다. 그 애는 문학 소녀답게 기행기를 쓰겠노라 선언했고 이런 저런 재주없는 나는 셀폰 하나 들고 그 애 따라다니며 사진 몇개 찍어 그 애 기행문 토막 토막에 양념노릇이나 할 계획이다. 둘이 만나면 아직도 정신연령 10살짜리들이 갑자기 환갑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니 또 배시시 웃음이 나온다. 반세기 동안 숙성된 친구에게 받은 우정의 20불은 기념 주화를 보관하듯 내 책상 서랍 한 모퉁이에 얌전히 모셔놓고 있다.
누군가에게 돈을 받는다는 것이 즐거운 일이라는 걸 오랫만에 느껴본다. 사실 20불이라는 많지 않은 돈을 받으니 마음에 부담도 없고 물건을 선물을 받는 다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얼마 전 중국에서 선교사로 계시는 분이 들려주신 얘기가 10불이면 그 곳에서 많은 것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맞다. 필리핀에 선교 갔다 온 우리 딸이 20불의 값어치를 높이 평가하며 그 20불이 없어 애들이 학교를 못 다닌다며 100불도 별 생각없이 써대던 그 애가 갑자기 돈쓰기를 주저했던 기억이 난다. 10불 20불 지폐 한장도 얼마나 의미있게 쓰이고 소중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가? 그 친구가 주고 간 20불은 200 불보다 거한 감동을 주고 2000불어치의 엔돌핀주사를 맞은 듯 기분이 좋았다. 아니 떠올릴 때 마다 기분 좋으니 2만불어치도 넘겠다. 나도 오늘은 그 책상서랍에 20불로 누군가를 기쁘게 해줄까? 호두 과자 몇 봉지 사서 누구를 갖다 줄까? 폭신 폭신한 크리스피 도너츠두 박스? 아님 봄의 전령인 수선화 화분 몇 개를 살까? 근데 누구에게 준담? 이왕이면 외롭고 쓸쓸했던 마음 잠시라도 웃으며 행복해 질 수 있는 누군가에게 줄 수 있으면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