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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노동절(Labor Day)의 유래

글쓴이: 허정1  |  등록일: 09.03.2016 14:13:02  |  조회수: 1931
미국의 노동절은 매년 9월 첫번 째 월요일로 지정되어 있어 해마다
날자는 일정치 않지만 토, 일, 월을 쉴 수 있는 연휴가 되어 한국의 현충일에 해당하는
메모리얼 데이(Memorial Day)와 함께 매년 두 번의 3일간 연휴 중 하나다.

메모리얼 데이는 매년 5월의 마지막 월요일이다.

물론 독립기념일이나 크리스마스의 경우 금요일, 혹은 월요일이 될 경우 3일 연휴가 되지만
매년 그런 것은 아니기에 완전한 3일 연휴가 되려면 몇 년을 거쳐야 돌아오게 된다.

어느 국가나 연휴에는 여행객이 많기 마련이고 미국 역시 노동절 연휴에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원래 공휴일의 지정 목적은 그런 것이 아니기에 오늘은 미국의 노동절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겠다.

* 1882년 뉴욕 노동자들의 행진

노동절을 최초로 주창한 것은 미국 정부가 아니고 매튜 맥과이어(Matthew Maguire)라는
기계공이었다.

한국의 근로자의 날, 과거의 노동절은 근로자들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해 정부가 제정했지만
미국의 노동절은 개인의 생각이었다는 다른 점이 있다.

멕과이어는 뉴욕 중앙 노동조합(Central Labor Union in New York))의 서기였는데 뉴욕 중앙 노동조합은 뉴욕, 브루클린, 뉴저지 지역의 초기 노동조합중 하나였다.

맥과이어가 최초로 주창했다는 주장과 달리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리는 노동자 연례행사를
보고 노조 지도자 피터 제이 멕과이어(Peter J. McGuire)가 주창했는 설도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노동절을 최초로 주창했다는 두 사람 모두 스펠링은 차이가 있지만 같은
맥과이어라는 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맥과이어라는 성은 아일랜드인들의 것인데 두 사람이 스펠링은 다르지만 모두 아일랜드
이민 후손이었다.

단지 매튜는 Mc를 잉글랜드식의 Mag로 전환한 성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당시 아일랜드, 이태리, 폴란드 이민들은 대부분 노동자나 하층일을 하는 위치에 있었기
노동절을 주창했다고 인정되는 두 사람이 모두 아일랜드계 였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 피터 제이 맥과이어

이렇게 미국의 동부지역 노동자들이 주창한 노동절을 최초로 채택한 주는 동부가 아닌
서부의 오레곤이었다.

1887년 2월 21일, 미국의 연방중 오레곤 주는 최초로 노동절을 인정하고 공휴일로 지정했고
연방 정부는 오레곤 주가 시행한지 7년후인 1894년, 노동절을 인정했다.

연방정부가 노동절을 인정하고 휴일로 지정한 것은 오레곤이나 다른 주들이 시행을 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따라간 것이 아니라 풀먼 스트라익(Pullman Strike)이라는 충돌때문이었다.

풀먼 스트라익은 1894년 여름, 전 미국을 강타했던 철도 노조원들의 파업이었다.

1894년 5얼 11일, 시카고의 풀먼에 위치한 풀먼 컴패니의 4천명 노동자들은 임금 삭감과
부당 해고에 대한 반대로 파업을 시작했는데 그들의 대부분은 풀먼 기업이 조성한 지역에서
커뮤니티를 이루고 살고 있었다.

하지만 풀먼 컴패니의 노동자들은 노조를 구성하거나 전국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 풀먼 스트라익 현장

이런 상황을 알게된 미국 철도 노조 지도자인 유진 뎁스(Eugene V. Debs)는 풀먼 사태에
개입을 하고 노사간의 조정에 나서게 된다.

하지만 철도 노조와 풀먼간의 협상은 순조롭지 않았고 뎁스는 열차 제조회사인 풀먼 컴패니와 그로버 클리블랜드 대통령하의 연방정부에 파업을 선포하고 중부지역인 미시건 디트로이트
서쪽으로의 모든 승객과 화물에 대한 운송을 거부했다.

뎁스의 이런 노력은 미 서부지역 25개주에서 27만명의 철도노조원들이 참여하는 전국적
파업으로 번지게 되었고 클리블랜드 대통령은 파업을 저지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했다.

결국 풀먼 스트라익으로 인해 당시 금액으로 8천만달러라는 천문학적 손실과 30명이
사망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뎁스는 기소되어 유죄 판결을 받고 징역을 살게 되었다.


*유진 뎁스

군인들과 법 집행기관에 의해 파업 노동자들이 30명이나 사망하게 되자 의회는 당황했고
어떻게든 사태를 무마해야 했기에 즉시 노동절 제정을 승인했고 사태를 악화시킨
클리블랜드 대통령에게 서명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대통령은 즉시 서명을 했고 노동절 제정의 의회 통과부터 대통령 서명까지 걸린 시간은
풀먼 스트라익 진압후 불과 5일만의 일이었다.

이렇게 미국도 과거에는 노조에 대한 무력탄압이 있었지만 현재의 노조들은 이런식으로
파업을 하지도 않고 정부 역시 그런 물리적 대응은 하지 않는다.

1세기의 세월이 지나며 충돌보다는 협상의 방식이 지속적으로 발전되었기 때문이다.

-모셔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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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연휴를 안전하게 놀고 오세요.

가실곳이 없으신분은 저와 같이 이곳에서 놀다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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