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컴퓨터도 말솜씨도 글솜씨도없는 영화 “국제시장” 시대를 살아온 경상도 사람입니다.
1970년대초 영어를 좀 더 배우겠다고 펜팔을 한건데 1979년에 서울서 결혼을 했습니다.
Northwest를 타고 시카고, 알라스카, 도쿄를 거쳐 저를 만나러온 이국 여자..
김포공항에 왔는데 조금은 두렵고 흥분되었습니다.
제가 좀 모험을 좋아하는 편이지요, 처음 손을 잡으니 백인 숙녀는 한 손목을 조금 떨며서
We must love each other하더군요.
서울 미국 대사관에 결혼신고를 하러갔더니 약10명 이상의 미국인 대부분 GI와 한국여성들이 창구앞에서 아주 쉽게 도장 Sign 받는데..
아! 한국남자와 미국여자 ? 영사관 친구가 빤히 저를 보더니 Come in my office. 하드라구요.
And then, He asked me a question Why are you marrying an American girl 하길래
“If so many men, so many minds, certainly so many hearts, So many kinds of love.”
as the saying goes 했드니 얼굴을 붉히며 나가라 했답니다.
처음 제가Upstate New York에 도착해서 목욕탕에 점원자리는 모조리 내 것이니 스트레스 받았습니다. 네거리 신호등에 파란 불이 꼭지 제일 위에 있어 Why is that?했드니This is Irish Town.
36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 그쪽 사람들 처가 식구와 주변 사람들Korean 다시 봅니다.
세상에서 저를 가장 아껴주고 편안하게 해 주는 여자.
My wife, My Valentine, Cindy Lynn Choi 입니다.
읽어주셔서 갑사합니다. 이제 한글 쓰기가 영어 쓰기보다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