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좁은 길을 걷고 싶으신 분들의 모임을 시작하면서 작은 글을 올림니다.

글쓴이: 아이사야  |  등록일: 12.11.2021 11:29:50  |  조회수: 3520
이사야 전 목사입니다.
해 마다 한국에 나가 전국을 한 달, 두 달을 순회하며 목회자 세미나를 인도했던 목사입니다.
특별히 마지막 때를 위해 훈련을 받고 어떤 신앙의 길을 가야하며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전했습니다.
창세기 선악과를 두신 하나님의 창세전 설계도를 통해 보면 하나님께서는 계시록에 끝까지 인내한 성도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놀라운 영광을 발견하게 됩니다. 집을 짓기 전에 설계도를 먼저 작성하는 것 같이 하물며 전능하신 하나님도 인간을 창조하시기 전에 창세 전에 인간회복에 대한 설계도를 갖고 계셨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첫번째 문제가 선악과를 두신 하나님의 분명한 의도가 풀려야 성경이 풀려갑니다. 첫 단추를 잘 맞추어야 하는 것 같이 성경의 첫 문제를 온전히 못 풀고 다음을 온전히 이해 할 수가 없습니다. 창세기의 선악과와 계시록이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또한 모든 교회는 앞으로 초대 교회와 같이 다 가정 교회로 바뀔 것입니다.
아래의 "아들의 형상을 회복 시키시는 주" 를 읽어보시고 관심이 있으시면 연락주시고 함께 모여 깨어 주님  오심을 알고 기름 준비한 다섯 처녀와 같은 길을 가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참석하신 모든 분들에게 10년 넘게 모아 온 모든 자료를 다 나누어 드림니다.
Young Jeon 목사 818-606-6418

(계 12:17) 용이 여자에게 진노하여 그녀의 씨 중에 남은 자들 곧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키고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을 가진 자들과 전쟁을 하려고 나아가니라.
(계 17:14) 이들이 어린양과 전쟁을 하려니와 어린양께서 그들을 이기시리니 그분은 주들의 주시요 왕들의 왕이시며 또 그분과 함께 있는 자들은 부르심을 받고 선정된 신실한 자들이니라, 하더라.


    신앙간증
    아들의 형상을 회복시키는 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29)



    1. 회개와 만남
 84년 4월14일 새벽 4시경 휴스턴에서 LA에 사는 저에게 걸려온 전화가 저의 인생을 근본부터 송두리째 변화시키는 계기가 될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형의 교통사고로 인한 갑작스런 사망 소식은 죽음이란 것은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 같이 살던 저에게 친형의 사망이란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당일로 휴스턴에 내려가며
“죽고 나면 참으로 끝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생각하며 휴스턴에 내려간 저에게 들려주는 형수님의 말은 더욱 큰 충격이었습니다. 마치 저를 위해 준비했던 것처럼 저를 보니 생각난다며 사고 나기 약 한달 전 형은 TV를 보는 형수에게
“나 어제 예수님 만났어!”
하는 말을 듣고 무심코 지나쳤다는 것이었습니다.
두달 전 LA에 오셨을 때 식당에서 나에게
“집안 식구가 모두 열심은 없어도 불교의 가정에서 어떻게 너만 교회를 나가냐 내 생각에는 네가 교회를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권면하시더니 마침 주일이 되어 LA에 살고 계신 친구의 권유로 셋이 함께 교회에 출석해 말씀을 듣고 나서는 “교회 다니는 것도 괜찮구나!” 하던 분이셨는데 관속에 누워있는 형의 모습에서 이 인생의 숙제를 꼭 풀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되었습니다.
형의 장모님께서 나가시던 교회에서 모든 장례일정을 인도 하시면서 저에게 성경 한 권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큰 의문을 안고 LA로 돌아온 저는 받은 성경에 손을 올려놓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 모릅니다. 그러나 진정 형을 만나주신 예수님이 살아 계신 하나님이라면 저를 한번만 만나 주세요. 그 대신 저는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겠습니다. 만일 저를 한번만 만나 주시면 저의 남은  생을 당신의 뜻대로 살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 성경을 다 읽을 때까지 저를 만나주시지 않으면 저는 이제부터 내 인생을 내 마음껏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겠습니다.” 그것이 서원기도인지도 모르고 무작정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참으로 열심히 읽었습니다. 열왕기 상,하를 읽으면서 얼마나 가슴을 치며 안타까워하며 읽었는지 모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면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건만 왜? 이스라엘과 유대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떠날까. 하나님을 떠나는 불 신앙의 이스라엘 백성을 보며 안타까워하는 미련한 자를 주님께서는 만나주시는 계기를 만드셨습니다.
그것은 84년 LA에서 조용기 목사님의 부흥성회가 2일간 있을 때 평소에 알고 지내던 강현수집사님께서 저를 참석하라 권하여 갔을 때 첫날은 매일 듣던 그 설교가 그 설교였습니다.
“예수 믿으면 천국이요, 안 믿으면 지옥”
다음날은 어머니께서 중간에 위치한 의자에서 일어나 맨 앞에서 무릎꿇고 앉는 어머님을 보며 “하나님 만나는데 바지가 구겨지면 어떠냐”며 저도 무릎꿇고 어머니 옆에 앉았더니 강집사님께서 목사님 바로 앞에 어머니와 저의 의자를 준비시켜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날의 말씀은 전혀 다른 생명의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로마병정이 아니라 내가 못 박은 것이라는 회개가 나오기 시작하는데 얼마나 가슴을 치는 회개를 했는지요.
평소에 나 같이만 살라는 자만과 오만한 마음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지를 알게되었습니다.
미련한 자를 인도하는 하나님의 손길은 출애굽한 광야 1세의 이스라엘 백성을 이끄신 것 같이  그치지 않고 계속되었습니다.
제 영혼의 홍해(회개)를 가르신 하나님께서는 미련한 자의 서원기도를 들어주시려고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한국에서 82년 결혼한 아내가 첫 아들을 낳고 한국에 계신 친정 부모님에게 인사차 고국을 방문하던 중에 찾아오셨습니다. 그날은 혼자 저녁식사를 끝내고 식기를 닦으며 “내 주를 가까이 하게함은 십자가 짐 같은 ....” 흥얼대며 찬송하는데 하늘에서 큰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너와 함께 하리라!”
깜짝 놀라 씻던 그릇을 던져두고 부엌에서 튀어 나왔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야!”
평생에 처음 들어 본 많은 물소리와 같고 천지를 울리는 그런 음성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복이라는 개념이 장수, 부귀, 명예 같은 것이 복이라 생각했음) 그후 하나님 음성을 듣고는 벼락부자가 될 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때 읽던 구약성경에 보니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니 내가 원하는 것을 다 주실 줄 알았으니까요 (당시 신앙으로 볼 때 성경에 등장했던 구약의 모든 인물들이 하나님이 함께 한 사람 치고 가난했던 사람이 없었고 잘못 되어 망한 사람이 없었으니) 얼마나 어리석고 어린아이 같은 내 중심적인 신앙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아니하여 세 번을 꿈에 예수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긴 옷을 입은 분이 길 건너편에서 저를 손짓하며 “이리오라” 부르시는데 그 당시의 저로서는 전혀 생면부지의 느낌이었습니다.
계속해서 두 번을 불렀으나 뒷머리를 긁적이며 고집부리면서 가지 않았습니다.
“알지 못하는 분이 왜? 나를 부르는가.”
세 번째 부르실 때는 그 분의 위엄과 권위에 왠지 가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 마지못해 가까이 갔더니
“이것을 봐라”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대나무 살로 만든 약 45cm 길이의 발을 보이시더니 손잡이를 돌리자 저쪽에 말려 있던 발이 손잡이를 돌리는 쪽으로 이동을 하는데 양쪽의 중앙에서 딱 뒤집어 졌습니다. 한참을 돌리니 촘촘하게 박혀 있던 대나무 살이 빠진 빈자리가 나타나자 돌리던 손을 멈추셨습니다. 그러자 한 쪽으로 이동하던 모든 것도 멈추어 섰습니다. 그 때 빈자리를 가르치며
“여기가 네 자리다.”
말씀하시더니 밑에 떨어져있는 많은 대나무 살 중에 하나를 집어 내 눈앞에 보이시며
“이것이 네 것이다.”
하시며 그 빈자리에 갖다 대자 전체 길이의 오른쪽 절반이 부족한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것을 설명하시던 그 분은 말없이 떠나 가셨습니다.
그때 분명히 깨달아 지는 것이 모자라는 절반이 채워지지 않으면 결코 기계를 돌리시지 않을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 모자라는 부분을 채우는 것이 저의 사명인 것을 알았습니다.
약 한달 후 두 번째 찾아오신 예수님은 다짜고짜 저의 온 몸에 침만 놓으시고는 말없이 떠나 가셨습니다.
꿈을 깬 다음날 약 10년이 넘도록 디스크로 고생하던 허리의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졌습니다. 3일 동안 아내에게도 말하지 않고 있다가 허리가 완전히 치유된 것을 확인 후에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그 당시는 병을 고치는 분 인줄도 몰랐으니 당연하겠지요.
허리 고친 것을 확인 후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 줄 이제는 압니다. 제가 앞으로 교회를 나가야 되겠는데 어느 교회를 다니는 것이 가장 좋겠습니까?”
하며 앞으로 제가 나갈 교회를 놓고 기도를 했습니다. 매일 그런 기도를 하는 저에게 세 번째 찾아오신 예수님은 길 건너편에 서 계셨습니다. 얼른 알아본 저는 그분에게 머리를 흩날리며 뛰어갔습니다. 평소에 기도하던 내용을 그대로 묻자 주님이 웃으셨습니다.
“이제야 나를 따라오는구나”
그런 표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대답은 달랐습니다. 교회에 대한 저의 질문에
“순복음이 최고니라.”
간단하게 대답하셨습니다.
후에 그 뜻이 성경을 더하지도 말고 빼지도 말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그대로의 믿음을 말씀하신 것을 알고 성경대로의 믿음을 갖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 훈련과 연단
 불 신앙의 가정에서 태어나 세상을 내 마음대로 살던 사람을 부르셔서 목사로 만들어 가신 하나님의 손길은 계속되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수많은 악한 영들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악한 영들과의 싸움은 “예수 이름으로 싸우라.” 가르쳐 주신대로 항상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니 사탄아 물러가라!.”며 싸웠으나 너무도 많은 흑암의 세력과의 싸움에서 자연스레 터득된 것이 음절이 많고 길어서 나름대로 “예수의 피!”하고 짧게 줄여 명하면 모든 흑암의 세력이 깨져나갔습니다.
회개하고 약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침대에서 성경을 보고 있는데 침대 옆의 벽을 타고 천장 꼭대기에 이르는 검은 물체가 저를 덮치려고 순식간에 다가왔습니다.
그 동안 훈련받은 대로 “예수의 피!”하며 입을 열어 대적하려는데 그 악한 영은 무엇보다도 말을 하지 못하게 저의 입을 먼저 막았습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아무리 애를 써도 도저히 말이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꿈도 아닌 생시에 눈을 뜨고 당한 일이라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순간이었지만 이 악한 영이 대체 얼마나 힘이 있는지 궁금해 손가락을 한번 움직여 보려고 시도했더니 손가락하나 꼼짝 달삭을 못하게 저를 완전하게 압도했습니다. 어찌해 볼 다른 방법은 없었습니다.
그냥 눌려있는 상태에서 말은 못하고 단지 마음속으로 되풀이해서 생각만 했습니다.
“예수의 피” “예수의 피” “예수의 피”
계속되는 마음의 고백이 커지더니 겨우 입술이 신음하듯 조그마하게 열렸습니다.
“예수의 피!” 
입술이 겨우 신음하듯 조그마한 소리가 나더니
“예수의 피!”
입술의 고백이 조금 더 커졌습니다.
“예수의 피!”
서너번 더 고백하자 입술이 완전히 풀렸습니다. 있는 힘을 다하여
“예수의 피!”
하며 외치자 저를 그렇게 짓누르던 악한 영이 “캑”
 외마디의 소리를 지르고는 제 몸의 왼쪽으로 빠져나가면서 생후 약 1년 된 저의 첫아들 James가 누워있는 침대 쪽으로 튕겨 나갔습니다.
바로 그 순간에 잠자던 아기가 누가 때린 것같이 침대에서
“으앙”
하며 경기를 일으키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생시에 말씀의 세계가 미련한 저의 삶 속에서 실질적으로 체험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에게 대함이라.” (엡6:12)
이 같은 부인할 수 없는 체험을 갖고 나서도 수많은 악한 영들과의 싸움은 계속되었으며 84년도에 시작된 연단이  3년이 지난 87년에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용까지도 ”예수의 피“ 하고 혼신을 다하여 세 번씩 선포하면 사라지는 놀라운 주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을 체험시키며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능력의 종보다 주 예수님의 심장과 하나님의 마음을 갖는 저로 만들어 가셨습니다.
후에도 은혜의 생활은 하나님께서 출애굽 시킨 이스라엘 백성의 노예근성, 애굽 우상숭배 같은 과거를 청산시키기 위해 하시던 작업이 저에게도 시작되었습니다.
85년 2월에 LA소재 베데스다 순복음 신학교를 입학하고 주님의 강한 손은 바로 저의 죄악 된 옛 성품을 잘라 내는 일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은혜 받고 약 1년이 지난 85년 5월부터는 그 당시 제가 출석하던 교회의 모든 예배행사에 참석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는 금식 기도하면 좋다하여 한 달에 몇 번씩 금식기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금식의 진정한 의미도 모르면서 했던 저에게 큰 연단의 기회가 왔습니다. 그것은 바로 금식하던 날 옆집 사람과 전화로 언성을 높이며 언쟁했던 날 밤에 일어났습니다.
평소와 같이 금식하던 날 자정이 지나면 간단한 식사나 음료를 마시던 습관대로 아내의 권유로 과일 몇 조각만 들고 잠이 들었으나 그것이 과식의 이유도 아니었으나 약 한 시간이 지나자 신기하게도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굵은 식은땀이 나며 배를 찢는 것과 같은 극한 고통과 함께 숨을 쉴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앉아 있던 저는 앞으로 꼬꾸라져 맨 바닥에 엎어지며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죽습니다.”
평생에 그런 고통은 당해본 적이 없는 경험이었습니다. 얼마 동안을 그런 상태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저에게 아내가 권했습니다.
“여보 회개해” 
“무엇을 회개해?”
“당신 오늘 금식하면서 혈기 부렸지 않았어?”
“사람 죽겠는데 그런 뚱딴지같은 소리 말고 가만있어”하며 면박을 주었습니다만 웬일인지 마음 한 구석에는 낮에 있었던 언쟁사건이 걸렸습니다. 그 일이 이해된 것은 3일 후 였습니다.
새벽 1시에 갑자기 눈이 떠지며 평소와는 달리 기도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겨 평소에 기도하던 곳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데 잠시 후 마음속에서 성령님께서 제게 물으셨습니다.
“얼마 전 왜 혼이 난 줄 아느냐?”
“모르겠습니다.”
“그날 무엇했느냐?”
“금식했습니다.”
“금식하는 날 무엇했느냐”
“옆집 사람과 다투었습니다.”
“왜 금식하며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린 날 다투었느냐”
그날 새벽에 있었던 성령님과 대화는 너무도 큰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비록 평생에 잊지 못할 고통은 당했지만 성령님과의 교통은 너무도 큰 위로와 은혜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평소에 어떤 일에도 혈기부리는 일이 그 고통만 생각하면 “차라리 내가 죽지” 하며 마음이 다스려졌습니다. 훈련은 계속되었습니다.
약 한 달이 지난 후 거의 똑 같은 시간에 고통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때 오늘 내가 무슨 죄진 일이 있었는가를 생각해 보았으나 특별한 일이나 죄가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똑같은 일에 내가 어떻게 대처해야 살아 계신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겠는가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지난번 비록 큰 고통은 있었지만 성령님과의 교통으로 사랑하므로 연단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체험했기 때문에 이번 일을 통해서는 어떠한 연단과 은혜를 예비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마음에 다음과 같은 결심을 했습니다.
“그래 전보다 더한 고통이 올지라도 감사하자”
그리하여 온 몸은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숨이 넘어갈 것 같은 극한 고통으로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데 이를 깨물며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 이 고통이 왜? 무슨 연유인지 지금은 모르지만 지난번과 같이 은혜와 감사할 것으로 바꿔주실 줄 믿고 감사합니다!“
기도를 마친 후 고통은 잠시 후 지나갔습니다.
아마 그 당시의 저를 보면 모두 미쳤다 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생각해도 정상인은 그런 모습을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음날 새벽 1시경에 지난번과 같이 눈이 떠지며 기도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기도하던 곳에서 무릎을 꿇고 엎드려 기도하는데 다시 마음속에서 성령님께서 제게 물으셨습니다.
“어제 왜 혼이 난 줄 아느냐?”
“모르겠습니다.”
“이제 네가 앞으로 교만해 지는데 그 아픔을 생각하고 겸손해 져라. 그날 네가 극한 고통가운데서 내게 감사했지 내가 너의 감사를 받았다. 그래서 너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겠다.”
바로 그 순간에 저의 머리 위에서 하늘이 갈라졌습니다. 그러자 갈라진 그 곳에서 빛이 비추더니 저의 몸을 둥그런 빛이 저를 둘렀습니다.
그리고는 제 마음에 들려주신 음성은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 순간 가슴이 터질 것 같은 환희와 기쁨은 가히 사람의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 그런 상태였습니다. 사람의 표현으로 굳이 한다면 평소에 가장 아끼던 저의 생명이 그 사랑에 비교하면 발뒤꿈치의 때와 같이 무가치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때 깨달은 것이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이 누구든지 붙들어만 주신다면 순교하면서도 기쁨으로 할 수 있겠고 진정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이 은혜를 주셔서 스테반 집사와 같이 순교자의 반열에 세우시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최근 의학이 발견한 호르몬 중에서 '다이돌핀'이라는 것이 있다. 엔돌핀이 암을 치료하고 통증을 해소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이야기지만 이 다이돌핀의 효과는 엔돌핀의 4,000배라는 사실이 발표되었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mjpiglet&logNo=220158392341 )
두 번의 고통 속에서 또 한가지 배운 것은 무섭도록 완전하신 하나님의 교육 방법이었습니다.
그것은 미리 때려서라도 주님이 원하시는 겸손한 모습으로 만드시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를 알고는 감사하면서도 두려웠습니다.
주님의 손길과 섭리를 배우고 저의 믿음은 그날 새벽에 있었던 하늘이 열리는 역사로 말미암아 다시 한번 저의 생활에 너무도 큰 변화를 주었습니다.
그것은 “범사에 감사”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하늘이 갈라지던 날 성령님 말씀대로 교만해 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약 6개월 후 저의 둘째 아들 데이빗이 출생했습니다. 그러자 제가 일하던 곳의 직장에서 받는 생활비로는 당장에 적자가 누적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유는 은혜 받고 신학교를 85년 2월 입학하고 얼마 후 신학교에서 예배를 마치고 일어서는 저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일용할 양식이면 족하니라.”
그 음성을 듣고 바로 그날 저녁에 집에 와서는 아내에게
“오늘 일용할 양식이면 족하니라는 음성을 들려주시는데 이제까지 저축할 여유 있는 살림은 아니였지만 말씀에 순종하여 일용할 양식으로 살아봅시다.”
제 말에 저의 아내가 협조하여 둘째아들 David 낳을 때까지 일용할 양식으로 하루하루를 살아왔었기 때문에 둘째 아기 출생과 함께 환경의 어려움은 즉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신학을 공부하는 제 자신이 지금의 어려운 환경에 큰 도전을 느끼게 되어 다음과 같이 기도했습니다.
“주님 제가 이제 신학을 졸업하면 목회자가 되어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주님만 의지하는 종이 되고자 하오니 이번 어려움에서 주님이 주인의 마음을 감동하셔서 저의 모자라는 생활비를 올려 주도록 역사하시고 또한 토요일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쉬게 해주시면 제 평생에 사람에게 손 벌리지 아니하고 주님께만 손 벌리겠으니 전능하신 주께서 이루어 주십시요.”
 그 기도 후 저는 엄청난 자신과의 영적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공장은 저 혼자서 메니저일, 견적, 수리, 페인트 등 모든 것을 다 했기 때문에 사람이 보기에는 제가 없으면 도저히 운영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한달, 두달, 기도 응답은 전혀 실현 가능이 없어 보였습니다.
석달이 접어들어도 주인의 마음이 변화될 것 같은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고 물질적 어려움은 누적되어 갔습니다. 사탄의 교만한 마음이 저의 속에서 꿈틀대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없으면 이 가게는 문을 닫을텐데”
하는 인간적인 생각이 저를 사로잡히면 ‘스스로 기도하고 그 길을 작정했는데도’ 나의 이 사정을 모르는 주인이 야속하고 미워지기 시작하는데 앞으로 몇 달이 걸릴지도 모르는 기도응답에 너무 답답하고 괴로워서 일하다 말고 하늘을 향해 “주여!”하며 크게 목이 터져라 부르짖었습니다. 그 이유는 얼마 전 “네가 앞으로 교만해 지는데 이 아픔을 생각하고 겸손해 져라” 는 성령님의 음성이 저의 마음에 살아있고 그때 주신 그 고통의 기억이 생생하니 마음속에서는 “겸손해야 한다. 죽어도 겸손해야 한다”
자신에게 타이르지만 매일 매일 닥치는 현실적인 어려움은 믿음으로 참고 주님의 응답하심을 참고 기다리는 저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짓눌러왔습니다. 어쩌다 주인을 쳐다보면 눈이 시려 보기가 싫어졌습니다. 교만한 마음이 저를 번뇌케 하여 너무도 견딜 수 없으면 하늘을 향해 “주여- 어!”
얼마나 크게 수도 없이 부르짖었는지 모릅니다. 이러한 교만과의 영적 싸움을 알지 못하는 주인은 갑자기 부르짖는 저의 소리를 듣고는 사무실에서 나와 저를 쳐다보더니 이상하다는 듯 머리를 갸우뚱하고는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와 같이 어찌 할 바를 모르고 한계를 느끼고 괴로워하면 미국에 이민 온지 약 3개월 된 제 동생이 찾아와
“형 내가 보니까 공장을 팔려고 내 놓은 것이 있는데 우리가 한번 해 보자?”
그러면 제가 살판이 난 것같이 하나님의 기도응답을 기다리는 것을 포기하고 내 방법으로 괴로움에서 빠져나갈 의향으로 “빨리 알아 봐라. 우리가 그것을 한번 해보자” 그 말을 하면서 제가 약 일주일 있으면 이곳을 떠날 수 있다는 거짓된 소망에 잠시 견디며 지내고 있는데 일주일쯤 되어 동생이 찾아와서는
“알아보니 이미 팔렸데”
하면 다시 교만한 마음이 꿈틀대기 시작하여 전과같이 교만이 저를 번뇌케 하여 견딜 수 없으면 하늘을 향해 다시
“주여- 어!”
부르짖기를 얼마나 했는지요. 제가 또 정 견딜 수 없는 상황이 되면 희한하게도 저의 동생이 찾아와 다른 가게가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회답이 오기까지 잠시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그 교만과의 싸움이 약 삼개월 지속되면서 제가 너무 괴롭고 지쳐서 나중에는 3일을 앓아누웠습니다. 그때 마음에 한가지 결단이 생겼습니다.
“죽든지 살든지 하나님 마음대로 하십시오.”
하며 문제를 완전히 주께 맡기는 마음이 들어오자 성령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만 두어라.”
얼마나 기다렸던 응답이었던지 내가 일할 다른 직장 알아보는 것도 다 접어두고 그날로 주인을 찾아가 말했습니다.
“주인아저씨 제가 사정이 있어 그만 일하겠으니 2주 내에 다른 사람을 구하세요.”
“그래요.” 하더니 잠시 후
“알았습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을 찾아보겠습니다.” 하며 1주일이 지났습니다.
사실 그 1주일 동안 저는 얼마나 평강 가운데 지냈는지 모릅니다. 주인 되시는 유집사님이 그만 두겠다고 말한 제가 전혀 떠날 사람같이 보이지 않았는지 1주일 후 저를 불렀습니다.
“잠깐 이야기 좀 합시다. 내가 Mr 전은 붙잡는다고 있을 사람 같지도 않아서 물어보는데 솔직하게 대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체 왜? 그만두려고 합니까?”
제가 말없이 있자
“괜찮습니다. 그만 두는 것은 기정사실로 알겠으니 단지 무슨 이유로 사표를 내는지 알아 앞으로 나의 사업에 종업원과의 관계에서 유익 된 경험과 정보를 얻고자 하니 말해 보십시오.”
제가 속으로 잠시 기도했습니다.
“주님 이렇게 권하시는데 말해도 되겠지요”
하며 입을 열어 간단하게 말했습니다.
“제가 신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 토요일까지 일을 하니 공부할 시간이 없고, 또 한가지는 둘째 아들이 생겨 생활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주인은 잠시 생각하더니
“Mr 전, 오직 두 가지 이유라면 그것은 내가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꼭 떠나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잘 생각해 보시고 계속해서 일하도록 해 보십시오.”
집에 돌아와 그날 저녁 제가 다니던 교회의 철야예배를 갔습니다. 통성기도 시간에 한참을 기도하는데 성령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오늘 성령의 충만을 세 번 받는다.”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두 번의 큰 은혜가 저의 영혼을 감싸고 위로했습니다.
분명히 세 번이라 하셨는데 하며 밖에 나가 물을 마시고 다시 기도하는 저에게 성령님께서 질문 하셨습니다.
“번데기가 무엇이 되냐?”
“나비가 되지요.”
그 대답과 함께 잃어 버렸던 꿈이 생각났습니다. 그 내용은 이러한 것이었습니다.
약 1주일 전 꿈에 손바닥 크기만한 큰 번데기가 더위에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이 보이고 또 하얀 손이 나타나 둥글고 넓은 철판을 불에 올려놓아 뜨겁게 달구더니 그 뜨거워진 철판을 번데기에게 던지자 그 철판 위에 놓인 번데기가 펄떡 펄떡 뛰는데 그것을 보고 있던 제가 속으로 “으이그 저 번데기가 죽겠구나!” 생각을 하자 하얀 손이 그 철판을 즉시로 빼는 것이었습니다. (철판을 빼는 그 순간이 저의 동생이 찾아와 빈 가게를 우리가 해 보자고 위로할 때였음) 철판을 빼자 그 번데기는 살았다는 듯이 축 늘어졌습니다. 잠시 후 하얀 손이 다시 철판을 던지자 번데기는 다시 뛰기 시작했고 저는 번데기를 쳐다보며 “저러다가 죽겠구나” 생각하자 하얀 손이 다시 철판을 빼고, 똑 같은 동작을 세번 반복했는데 마지막에는 마음속으로 “철판이 다 식었을텐데 엄살을 부리네.” 했던 것이 생각이 나며 모든 일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 동안 교만과의 영적인 싸움이 제가 잘나 견딘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께서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
이 말씀이 제 삶 속에 체험되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날 은혜의 말씀을 받고는 연단에 감사, 이기게 하심 감사, 미리 때려서 겸손케 만드심 감사, 말씀이 제 삶 속에 이루심 감사, 모든 것 감사! 감사! 감사! 얼마나 감사해서 울었는지요.  (이것이 최근 의학이 발견한 호르몬 중에서 '다이돌핀'이라는 것이 있다. 엔돌핀이 암을 치료하고 통증을 해소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이야기지만 이 다이돌핀의 효과는 엔돌핀의 4,000배라는 사실이 발표되었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mjpiglet&logNo=220158392341 )
주님 저같이 미련한 것을 대체 어디에 쓰시려고 이토록 연단하시고 인도 하시는지요 참으로 찬송이 절로 나왔습니다.
“오! 신실하신 주 내 아버지요 늘 함께 계시니 두렴없네.....”
주님은 그 후에도 계속해서 겸손으로 무장케 하시기 위해 성경말씀을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때 배운 것이 몇 가지 있는데
(1) 어떤 짧은 기도도 들으시는 주님.
(2) 모든 응답에는 때가 있다.
(3) 자아가 죽으면 하나님이 응답하신다.
(4) 말씀에 순종하여 끝까지 인내해야 승리한다. (5) 모든 것을 미리 주의 종이나 선지자에게 말씀하시고 이루시는 주님.(암3:7)
(6) 겸손만이 승리의 비결(겸손한 자는 내 방법 없이 하나님의 방법만 사용).
(7)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이 되시는 주님을 알았습니다.
그 후 응답을 받고 나서도 주의 종이 되기 위한 새롭고도 강인한 주님의 연단은 계속되었습니다. 세상의 썩어질 명예에는 관심도 두지 않게 하시려고 신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입학 첫해에 학생회의 총무를 맡아 충성하게 하셨습니다. 다음해에는 부회장을 맡겨주시더니 졸업을 앞두고는 회장을 맡으면 다 담당하겠구나 생각하는 저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부회장을 다시 하게 하심으로 썩어질 세상의 명예를 추구하는 것은 아예 관심도 갖지 않도록 귀한 체험을 주셨고, 88년 9월 신학교를 졸업할 때는 담임목사님의 교단가입추천서를 받고는 왠지 사람의 인도하는 대로 따라갈 것이 아니라 주님이 인도하는 교단에 들어가는 것이 합당하다 생각하고는 그 추천서를 가지고 새벽기도회에 나가 기도를 시작하는 저에게 주님은 저의 생각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주님! 제가 이 교단에서 일하는 것을 기뻐하십니까? 인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말을 마치기도 전에 제가 공장에서 다루는 Frame machine(사고난 자동차를 수리할 때 차체의 기본 되는 뼈대를 교정하기 위해 10톤의 힘으로 잡아당기는 기계로 맨 밑은 1단계에서부터 꼭대기까지 12단계로 높이를 조정할 수 있는 기계)이 보이더니 그 기계의 11단계에서 잡아당기려고 걸려 있던 체인(쇠줄)이 끊어지며 “챠르르”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졌고 그 꼭대기에 있는 12단계에는 이미 다른 체인이 걸려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순간 기드온이 두 번 양털로 확인한 것을 기억하고 그 자리에서 다시 기도했습니다.
“주님 다시 한번 확신을 주십시오 그리하면 사람과의 관계가 어떻게 되던지 다 뒤로하고 주님의 인도하심에 생명 걸고 순종하겠습니다.”
이 기도도 마치기도 전에 이번에도 제가 가장 잘 아는 자동차로 비유하시며 알게 하셨습니다. 이번에는 자동차 엔진과 연결된 벨트는 맨 끝에 걸렸고 다른 쪽은 위치가 틀린 중간에 어긋나게 걸려 있는 모습을 보이시며 확신을 주셨습니다.
미련한 저도 두 번에 걸쳐 알게 하신 내용이 무엇을 말씀하는지 3가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첫째는 기계의 12단계인 맨 꼭대기는 신앙의 가장 높은 수준으로 주님 가신 길을 그대로 따르는 것를 상징하는 것이요 그 때는 바로 마지막 때 주의 재림을 준비하는 때인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둘째는 맨 위의 롤러바퀴가 다른 것에 비해 작은 것은 사역의 기간이 짧은 것을 알게 하셨으며
셋째는 미국교단으로 들어가지 말고 한국교단으로 인도하심을 보고 마지막 때 한국이 주님께 쓰임 받는 나라인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 기도의 응답을 받고는 때를 기다리자 신실하신 주님은 저에게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는 제가 가야 할 교회(실은 엄청난 시련과 연단을 받기 위해 예비 된 교회였지만)로 인도 하셨습니다. 주의 인도 따라 옮겨간 교회는 마침 성전을 건축할 때인지라
“주님! 저도 벽돌 한장 쌓는데 동참하기 원합니다. 제 사정을 아시는 주님 제가 얼마 하기를 기뻐하십니까?”
기도를 하자 그 자리에서 감동하시는데 너무도 정확하게 나의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은 바로 저의 가진 모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날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오늘 예배 시간에 기도하는데 성령님께서 모든 것을 드리라 말씀하시는데 순종합시다. 아브라함에게는 이삭도 바치라 하셨는데 우리는 사정 보아서 이 정도 하라시니 감사함으로 합시다.”
하니 의외의 대답이 나왔습니다.
“말씀대로 하세요.”
결국은 자기의 소유를 다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눅14:33) 하신 말씀도 다 이루셨습니다. .

3. 끝까지 순종, 인내하는 훈련
 그후 주님께서는 처남과 함께 조그만 공장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 사업을 하면서 하루는 마약 중독자와 노숙자에게 전도하며 음식을 나눠주시는 여 전도사님이 공장에 찾아와 “혼자 하는데 너무 힘들어 도움이 필요하다.”
말을 듣는 제게 성령님의 강한 감동이 저의 심령에 왔습니다. 감동하는 데로 그 자리에서 승낙하고 그 주일부터 찾아가 돕기 시작했습니다.
코리아타운 9가와 후버에는 마약에 중독 된 사람들이 골목골목에 천막을 치고 언제 죽을지도 모르고 되는대로 사는 사람들만의 세계가 저의 주위에 있는 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으나 가보니 그 좁은 골목에는 약 80명 정도의 흑인. 멕시칸, 아시안, 백인, 남자, 여자 참으로 내가 살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있었습니다. 매 주일 그 분을 도와 주다보니 저의 온 식구가 총 동원되어 집사람과 저는 그 분을 도와 라면을 약 2 Box를 끓여 큰 들통 2개에 담아서 마켙에서 쓰는 카트로 끌고 가서 노숙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서 라면을 큰 컵에 담아 주면 두 아들은 라면을 들고 천막 속에서 마약에 취해 누워있는 사람들을 찾아 들어가 나누어주고, 그런 사역을 3달 하다보니 그 전도사님이 사역을 할 수 없는 개인사정이 생겨 그 당시 같이 나와서 돕던 다른 전도사님과 같이
“우리가 라면을 못하지만 도넛과 주스라도 사서 주일날 계속합시다.”
그 후 약 6개월을 계속했지만 어떤 변화도 한 영혼도 변화되는 것을 보지 못하자 그만 탈진이 되었지만 계속해야 되는지를 망설이는데 최, 정형제 두 분이
“당신들이 우리를 인도하겠느냐?”
며 따라올 의사를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기쁘고 감사하여 그들을 우선 마약 수용소로 보냈으나 1주일 후에 다시 그곳에 나와 있는 것을 보고 다시 찾아가 권유하자
“그 수용소는 있을 곳이 못된다.”
“그러면 나를 따라 오면 내가 임시 거처를 마련하겠다.”
저를 따라오는 것을 워싱턴과 킹슬리 코너에 있는 저의 자동차 바디 공장으로 데리고 가서
“사고 난 새 미니 벤에서 우선 잠만 자도록 해라. 내가 빠른 시일 안에 새 거처를 마련하겠으니 불편할지라도 잠시 기다리라.”
 첫날 공장을 떠나면서 모든 열쇠를 설명하고 넘겨주자 의아해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때 자기를 믿고 신뢰하는 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아무런 관계도 없고 신분도 모르면서 길에서 전도하다가 “예수 믿겠다.”는 그 한마디에 전 공장의 열쇠를 마약 중독자요. 강도 같은 자신에게 맡기는 것에 “나를 믿어 주는 사람도 있구나” 하며 두려워지기까지 했다 합니다.
주님께서는 두 분을 변화시키기 위해 저의 마음에 마약 중독자들까지도 믿고 맡길 수 있는 마음을 저에게 먼저 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런 순간순간에 바로 주님이 역사하셨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같이 전도 사역하시던 이 전도사님이 방을 구입했다고 하여 몸만 가면 되지만 이사(?)를 가서는 두 분과 함께 주일이면 교회에 같이 가고 예배 후에는 그 동안 하던 노숙자에게 같이 가서 전도하고 끝나면 다 같이 마련한 숙소로 가서 다시 말씀 읽고 설교하고 찬송하고 식사를 마련해 같이 교제를 갖기 시작하고는 평일에도 두세번 숙소를 찾아가 성경을 가르치기 시작하자 크게 변화되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한번은 제가 찬송하고 싶은 감동이 생겨 일어나 “세상에서 방황할 때 나 주님을 몰랐네 내 맘대로 고집하며...”
이 찬송을 부르자 두 분이 흐느껴 울기도 하며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서서히 두 분의 삶 속에 나타나기를 시작했습니다.
약 6개월의 세월이 지나자 그중 최형제가 먼저 은혜를 받고 변화되는 것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하루는 주님이 저희들이 예배드리는 장소에 두 천사와 함께 방문하셨는데 저희 방 입구에 서신 주님이 손을 들어 가리키며 한 사람에게 “네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
물으시고는 뒤돌아 나가시는 것을 보고 꿈이 깼으나 너무도 분명한 일이기에 일어나서는 얼른 주님이 나가신 문을 열고 보니 눈앞에  예수님께서 두 천사와 함께 황금 길을 걷고 멀리는  시온성이 보이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나타났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은혜를 받으면서도 사람인지라 그토록 자유분방하게 마약하며 그 누구의 제약도 없이 살던 분들인지라 어떤 때는 짜증스러운지
“이렇게 방에만 처박아 두려느냐? 사람이 어떻게 먹고 자고 그것만이 전부냐?”
“그렇다면 경치 좋은 야외로 갑시다.”
달래고 위로하며 계속 성경을 가르치고 인도하자 먼저 은혜 받던 최형제님이 목회자로 소명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 내용은 저와 최형제님이 똑같이 검은 양복을 입고는 높은 산에 올라가 십자가 있는 교회에 들어가 설교를 마치고 나오는데 들어갈 때는 하나도 없었던 양들이 나올 때는 그 산 전체를 쌀을 뿌려놓은 것 같이 하얗게 뒤덮고 있는 것을 보고는 꿈이 깨었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얼른 그 내용을 해석해 주었습니다.
“최형제님은 주님께서 나와 함께 동역하는 주의 종의 소명을 주셨으니 신학교에 입학하여 목회자가 되라.”
최형제가 권하자 믿어지지 않는 듯이 피식 웃었으나 그 웃음이 싫지는 안은 듯했습니다.
물론 저도 웃었습니다. 그것도 이해가 되는 것이 이제 나이 50이 넘어서 그것도 마약에 10년 넘게 중독되었던 사람이 그것도 모자라 노숙자 생활을 3년이 넘게 하다가 어느 날 은혜 받았다고 신학을 공부해서 목회자의 길을 가라고 권하니 돈은 고사하고 몽땅 연필 한 자루 없는 현실이니 웃음도 나올 수밖에는 없었겠지요.
그러나 주님은 사람이 아니셨습니다. 분명한 소명을 주신 분이 주님이시니. 이루실 것도 주님 스스로 이루어 나아가실 것이 그 동안 제가 받은 연단과 경험을 통해 저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제가 최형제님에게 한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소명은 분명히 본인이 받아야 한다. 천 사람이 말해 줘도 소용없다. 그러므로 기도원에 가서 3일 금식하면서 기도해 보라.”
“기도원에 가서 기도해 보겠다”
대답을 하기에 다음날 아침에는 아예 출근하면서 공장에 모시고 와서 함께 공장에서 은혜 받는 이야기를 해 주고는 저녁에는 집에 돌아가면서 바로 집 근처의 아가페 기도원으로 모시고 가서는 돌아오면서 말했습니다.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우리 집에 전화하지 마세요.”
그 당시 그 말을 듣고 얼마나 섭섭했던지 무엇을 어떻게 기도할 지도 모르는데 막연했지만 기도 굴에 들어가 무작정
“하나님 나를 살려주세요.” 만 했답니다.
이틀이 지나 전화가 왔는데 그 목소리가 무척 상기되어 있었습니다.
“전전도사 내가 주님을 만났다. 빨리 올라와라.” 올라가 보니 진실로 주님을 만났을 뿐 아니라. 자신의 몸에서 그 동안 쌓였던 마약기운이 몸의 두 곳으로 빠져나간 흔적을 보여 주었습니다.
과연 때가 되자 말씀하시고 이루시는 주님께서는 주위에서 신학교를 입학할 수 있도록 선한 도움의 손길이 답지하기 시작했습니다.
국제성서신학교에 입학을 하고 같이 공부하는 학생들이 픽업을 해주고 한 학기를 마치자 최형제는 매일 아침에 일어나자 먼저 기도하는 것이 일과가 되었는데 숙소에 찾아가자
“오늘 아침은 기도하는 데 부인과 딸이 보이는데 집에 가 봐야겠다.”
“그냥 가지 말고 기도하고 갑시다.”
하고는 최형제님의 부인을 평소에 잘 아는 권사님을 찾아가 셋이서 돌아가면서 기도를 하고는 최형제님이 알려준 주소를 찾아가자 둘째 딸이 나와 보고는 놀라 뛰어 들어가 부인을 데리고 나오는 데 무척이나 놀라고 당황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집에 들어가서는 제가 그 동안 최형제님에게 있었던 일을 약 한시간에 걸쳐 설명하자 “내 남편은 세상의 그 누구의 말도 안 듣는 사람인데 신학교를 입학해 목사가 될 것이라니”
하며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후에 들은 이야기는 한동안 길에서 보이지 않아 어떻게 되었는가 궁금했는데 어느 날 몸이 불어서 갑자기 찾아와 아마 죽을 때가 되어 마지막 가는 길에 행패를 부리려는 줄 알았다고 들려주었습니다.
그날 이후 최형제님의 가정은 회복되었고 남은 정형제는 혼자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전혀 변화된 모습이 보이지 않아 하루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저의 아내와 최, 정형제님 넷이서 다시 아가페 기도원에 가서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정 형제를 가운데 두고 아내와 제가 양옆에서 2시간을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주님 이 영혼은 왜 안됩니까? 제가 알기로 주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하셨는데. 오늘 이 영혼을 주님이 만나 주시지 아니하면 다시 마약의 세계로 돌아갑니다. 주님 붙들어 주세요. 주님 만나 주세요.”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 2시간이 지나자 옆에 있던 정형제가 갑자기 방언으로 기도하기를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저의 눈앞에는 번데기를 연단하던 그 하얀 손이 나타나더니 정형제님의 몸에 불도장을 찍는 것이었습니다.
“할렐루야!” 미련한 종의 기도를 들으셔서 성령으로 인을 쳐주셨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하던 88년 주님께서는 한 세미나에 참석한 저에게 선악과에 대한 충격적인 내용을 듣고 더욱 하나님과 인간관계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죄에 대하여 더 깊고 확실한 것을 깨달아 알게 하셨습니다.
그날 받은 은혜에 감사하여 다시 선악의 기준을 오직 하나님 말씀 기준으로 하는 신앙의 결단을 두 번째 만들어 내셨습니다.
그날 헌금함에 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선악을 포기하는 의미에서 평생을 말씀에 순종하며 살기로 서원하며 제 손을 그 헌금함에 넣었습니다.
저의 공장은 때가 되자 주님께서 새롭게 인도하셨습니다.
성령님께서 다시 저를 감동하시는데 자동차 공장을 정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훈련과 연단을 받고도 제대로 순종할 수 없는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은 막다른 길로 이끄셨습니다. 그것은 공장이 그 동안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도구가 되어 어려운 중에도 이끌어 왔으나 갑자기 문을 닫는다는 것이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음을 아시는 주께서 공장에 대한 아쉬움을 버리게 하시려고 공장 운영이 점점 어려워지더니 더구나 LA 시에서 자동차 페인트칠하는 부스를 보수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모든 것이 주의 종을 만들어 가시는 주의 손길이었습니다. 자릿세를 내기도 어려워진 상태에서 갈 길은 오직 하나 문을 닫는 길뿐이었습니다. 주인을 만나 사정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동안 여러 가지 사정을 이해해 주신 것이 감사합니다만 도저히 현재의 상황으로는 운영할 수가 없으니 나는 가게를 돌려주고 나가겠습니다. 그러니 언제든지 가게를 포기하면 가게를 산 금액을 돌려주기로 계약서와 당신이 이 건물을 살 때 작성된 에스크로에 있으니 돌려달라.“
고 하자. 건물 주인은 펄쩍 뛰면서
“나는 건물을 전 주인에게 살 때 전혀 그런 내용을 알지도 못했고 듣지도 못했다. 그냥은 절대 못 준다. 정 받으려면 전 주인을 데려오던지 법원에 송사를 해라.”
말하고는 가 버렸습니다. 전 주인을 찾았으나 타주로 이사하여 찾을 수가 없었고, 얼마 후 다시 찾아온 건물주는 시에서 통보한 날짜가 됐으니 빨리 나가라며 본인이 경영하는 쓰레기 수거회사에서 쓰는 큰 콘테이너로 공장 입구를 임의로 막아버렸습니다. 원금은 고사하고 마지막 달 디파짓 한 금액도 돌려받지 못한 채 가게를 포기하고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대로 순종하기로 서원한 제가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고전 6:7)
“참소하는 자는 미련한 자니라.”(잠언 10:18)
는 말씀으로 인해 차라리 돈을 포기하면 했지 말씀을 어길 수는 없었습니다. 더구나 제가 있던 건물주 부부가 교회 출석한다는 말을 들었기에 “이것은 말씀에 대한 나의 믿음을 다시 한번 순종하는지의 여부를 시험하시는 주님의 손길이요 주님의 허락하심이다.” 하며 감사했습니다.
그때 제가 돈을 돌려받았다면 그 당시의 저는 틀림없이 다른 공장을 찾아다닐 것을 아신 주님께서 저에게 목회자의 길을 인도하기 위해 주인의 마음을 그렇게 인도함인 줄 알았습니다.
돈을 포기하기로 마음을 갖게 되면서 앞으로 다시는 세상의 길로 돌아서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엘리야의 부름을 받은 엘리사가 자신이 밭 갈던 한 겨리의 소를 잡아 백성에게 나눠주고 돌아선 것처럼’ 2년 동안 저를 돕던 종업원에게 가지고 있던 공장의 모든 연장을 거주 주었습니다.
가게문을 닫고는 집에 들어와서 일주일 동안은 오직 식사 외에는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일주일이 지나 성경을 일독 하자 성령님의 감동이 왔습니다.
 “석 달을 기다려라.” 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주님은 신실하셨습니다. 석 달이 되자 새벽에 기도하는 중 다시 성령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기름을 부었느니라.”
말씀을 듣고 출석하던 교회에서 93년 9월 전도사 임명이 되었습니다.
교역자의 길은 모든 것을 드리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말씀대로 순종한 그때 신학교를 졸업하고도 5년 만에 열렸습니다. 참으로 놀랍도록 정확하신 주님, 자기를 바라는 모든 자들에게 결코 낙망케 아니하시는 주님은 다시 저를 더욱 큰 연단으로 주님의 형상을 닮아 가는 길로 빚어 가셨는데 그 과정은 예외 없이 자신을 십자가에 죽이고 때를 기다리는 바로 주님 가셨던 길, 어려움과 아픔과 상처받는 일과 인내하는 모습으로 항상 다가왔습니다.
“우리가 그 나라에 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지니라.”(행14:22)
그럴 때마다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아픔이 문제가 아니라 제가 어떤 변화된 인격과 자세로 대처하는가 하며 환경을 바꾸시기보다는 저를 먼저 변화시키시고자 기다리고 계신 주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공장을 포기한 대신 교역자의 길은 열렸지만 집을 포기해야만 하는 또 다른 아픔이 남아 있었습니다.
수입이 없이 6개월이 지나자 은행에서 차압이 들어왔습니다.
결혼해서 아내의 가장 큰 울음을 보았습니다.
이사하기 전날 아내는
“이 집만은 지키고 싶었는데...”
저는 무엇이라 위로할 말이 없었습니다. 울음을 보면서 저의 고백은 오직
“이 아픔을 아시는 주여 이길 힘과 능력을 주소서!”
집을 비워 주는 날 새벽에 집에서 기도하며
“주님 오늘 은행에 집 넘겨주고 이사갑니다.”
성령님께서 저에게 
“3번 감사하고 내려가라.”
처음에는 그 말씀에 약간 당황했지만 그러나 바로 마음을 바꾸고
“주님 감사합니다.”
첫 감사는 왠지 제가 느끼기에도 약간 떫은 감사였어요. 다시 한번
“주님 감사합니다.”
하는데 이번에는 떫은 것이 사라진 감사였어요. 3번째
“주님 감사합니다.”
하는데 그 소리를 마치지 못해서 옆으로 뒹굴었어요. 그 말을 마치지 못하여 전에 하늘이 갈라지던 때 느꼈던 기쁨이 저의 영혼을 감쌌으니까요. 참으로 측량할 수 없는 주님의 은혜요 역사였습니다. (이것이 최근 의학이 발견한 호르몬 중에서 '다이돌핀'이라는 것이 있다. 엔돌핀이 암을 치료하고 통증을 해소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이야기지만 이 다이돌핀의 효과는 엔돌핀의 4,000배라는 사실이 발표되었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mjpiglet&logNo=220158392341 )
그러나 이제까지의 모든 말씀에 순종하여 세상의 물질, 내 방법, 이기적인 마음, 혈기 등을 말씀에 순종하게 하셨던 훈련도 실상은 모든 것을 미리 아시고 주관하시는 주께서 앞으로 있을 더 치열하고 더 격렬한 영적전쟁를 위하여 미련한 종을 준비시킨 예비훈련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 것은 교역자 생활에 첫 발을 내 딛자 즉각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주님을 만나고 이제까지 10년의 모든 훈련은 바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로 가나안 땅을 약속 받은 광야 2세가 40년이 지나기 전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여 요단강 동편의 바산왕 옥과 아모리왕 시혼과의 전투를 허락하신 것이 결국 가나안에 있는 7족속과의 전쟁을 위한 예비 전쟁과 같았습니다.
또한 때가 이르매 주께서 저에게 공장의 문을 닫으라 말씀하셨던 것은 광야 2세의 제사장들(주의 종)이 언약궤를 멘 채 여호수아(예수)의 명령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성도)앞서 요단강에 생명을 걸고 순종하므로 어떤 환경에서도 여호와의 말씀에 목숨을 건 순종이 있는가를 확인된 후에야 광야 2세가 가나안 땅에서의 전쟁이 가능했던 것과 같이 미련한 종에게는 공장의 문을 닫는 것이 죽음을 각오한 언약궤를 멘 제사장의 신앙의 결단과 같았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다가올 것은 가나안의 처절한 전투가 시작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였으나 그 당시에는 주님의 인도하시는 손길을 저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에서 있을 더 큰 전쟁의 승패도 이스라엘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께 대한 순종의 여부에 딸린 전쟁이었습니다.
집에서 3달을 성경만 보며 기다리며 기다리던 교역자의 생활은 하나님의 말씀에 목숨을 걸고 순종해야만 하는 시험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부딪힌 것은 첫째로 교회재정의 어려움을 이야기하시며 첫 달은 자원 봉사한 것처럼 권하는 교회의 사정에 기쁨으로
“첫 열매는 온전히 주께 드리려 했으니 잘됐다”하며 넘어갔으나 둘째 달이 되자 이번 달도 참아보라는 교회의 권면에 “아멘!” 하자 석 달이 되어서는 다시 개인적으로 불러
“전 전도사는 교회재정이 어려워 사례를 못할 것 같으니 앞으로 계속 사례없이 봉사해야겠다.”
“목사님 저는 돈 주면 있고 안주면 떠나는 그런 사람 아닙니다. 주님이 '내가 기름을 부었느니라'는 음성을 듣고 들어 온 사람입니다. 저는 모든 것이 주께 헌신되었으나 저희 집사람은 저와 같이 헌신되지 않았으니 집사람을 위해 기도나 해 주십시오. 사례문제는 목사님이 말씀하신 대로하겠습니다.”
대답을 하자 목사님께서 저희 집사람과 저를 위하여 기도해 주셨습니다. 목사님과 있었던 대화를 아내에게 털어놓자
“당신을 교역자로 임명할 의향이 없는 교회에 그렇게 있어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 이제 그만 사표 내고 나오라.”
했지만 하와의 말을 들은 아담과 아브라함이 부인 사라의 말을 듣고 하갈을 취하여 이스마엘을 낳은 것과 백성을 두려워하여 양과 소를 죽이지 않고 끌어 왔다가 하나님 말씀을 불순종하여 버림받은 사울 왕의 최후를 생각할 때 급료를 못 받아서 굶어 죽어도 현실의 상황에 상관없이 전도사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성경적이요. 또한 이러한 일이 있을 것을 아시는 주께서 미련한 제가 흔들리지 않도록 분명한 하나님의 뜻인 것을 확신시켜 주시기 위해 들려주신
“내가 기름을 부었느니라.”
음성을 생각할 때 주님을 실망시킬 수는 더욱이 없었습니다. 아내에게
“나는 이 자리에서 죽겠다.”
아내는 그 당시는 저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아내는 저의 자세를 따라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후 목사님께서는 본인의 주머니를 털어서 개인적으로 주시기도 하며 위로도 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언제나 책임지시고 이루신 것을 체험하였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저에게 말씀하신 대로 순종하기로 죽음을 각오한 저에게는 그 질문이 그렇게 큰 시험과 어려운 질문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훈련을 많이 받은 병사가 전쟁에서 피를 적게 흘린다는 교훈이 적용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시험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교역자 생활이 약 2개월이 지나자 다른 부교역자들 간의 친교도 이루어지고 대화를 나눌 만큼 가까워지니 하루는 저를 부르더니 담임 목회자와 교회의 비리(모두 거짓이었으나 그 당시 저는 모든 것이 사실인줄 알았음)를 말하며
“이런 경우 당신은 어떻게 하겠느냐?”
 저에게 의견을 물어왔습니다. 처음에는 어떻게 처신해야 되는가 약간 당황되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대답은 오직 하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면 기름 부은 종은 하나님의 소관이다. 나는 오직 이러한 상황에서 오직 기도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알고 있다.” 대답하자
“그런데 언제까지 기도만 하겠느냐? 이러한 때 자신을 헌신하며 나서는 것이 하나님의 참 종의 자세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때가 아니겠느냐? 또 당신을 교역자로 안 쓰려고 싫어해서 내보내려고 하는 것을 내가 당신을 끝까지 고집해서 지금까지 왔는데 잘 생각해 보라”
오직 말씀에 깨어 있고 붙들려 있지 아니한 신앙은 빠지기 쉬운 유혹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마귀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는 일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 그대로 였습니다. 석 달을 한결같이 자기들의 계획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며
“당신만 동참하면 오늘부터 일을 시작한다.”
설득했으나 마지막 바른 선택을 하는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였습니다.
“않된다.” 는 저의 한결 같은 대답에 그들은
“다시 한번 기도하라.”
“그러면 다시 한번 기도하고 내일 아침에 최후의 답을 주겠다.”
대답한 저에게 성령님의 역사는 너무도 정확하게 나타났습니다.
새벽에 일어나는 저의 침대 맞은편에 있는 벽에 큰 사진이 나타났습니다. 그 모습은 저에게 너무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고시레(제사 드리고 나서 음식을 던지는 행위) 하려고 서 있는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바로 자리에서 엎드려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을 만난 이후 언제 제가 우상에게 제사를 드린 적이 있습니까?”
“말씀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불순종하면 상황과 관계없이 그것이 우상이다.”
너무나 놀라운 말씀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오늘의 이 시대는 절대 진리가 사라진 시대!
오직 상황에 따른 상황 윤리만이 존재하는 이 시대에 주님은 절대 진리에 서서 살아갈 것을 다시 한번 가르치셨습니다.
전도사로 임명되어 당하는 첫 시험도
“너와 함께 하리라.”
말씀하신 주님은 위험 순간에 신실하게 역사하셨습니다.
자신들의 계획에 동참할 것을 요구한 그들에게 바로 찾아가
“당신의 계획에 대하여 나는 절대 동참하지 않겠다. 그러니 모든 것을 없었던 것으로 하자.”
결국 성령님의 역사로 도움으로 모든 것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본색을 드러내며 거기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밝혀지고 드러나자 이제는 교회와 제가 결탁하여 자기를 계획적으로 쫒아내려고 성차별을 하며 악한 음모를 꾸몄다며 역으로 모함하고 변호사를 통하여 1,100만 불이 넘는 고소장을 교회와 저에 보내왔습니다.
참으로 악한 세상이었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면 시험은 더욱 오는 것 같았습니다.
고소장을 받아 들고는 그 자리에서 히스기야 왕이 앗수르 왕 산헤립의 편지를 들고 성전에 들어가 펴 들고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한 것과 똑같이 편지를 읽었던 그 자리에 편지를 손에 잡고는 다 읽은 편지를 마루바닥에 딱 소리가 나도록 치면서 주님께 다음과 같이 기도했습니다.
“주님 시키는 대로 기름 부은 자에게 손대지 말라하여 막았더니 이 고소장이 왔습니다.”
과연 다시 한번 주님의 신실하심을 종에게 보이셨습니다.
그 짧은 기도를 마치기도 전에 고소장을 보낸 당사자가 제 앞에 환상 중에 나타나서더니
“없었던 것으로 합시다.”
말하고는 돌아서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놀라움 바로 그 자체 였습니다. 그 고소로 인하여 미운 오리새끼 같았던 저는 오히려 이제는 교회에는 절대 필요한 증인이 되어 교회를 변호해야 했고 상대의 그 악한 계교로 인해 저는 7개월 만에 사례비를 받는 일이 허락되었습니다.
참으로 힘든 7개월의 인내기간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좁은 저의 사무실 안에서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듯이 제 사무실 안에서 누구도 몰래 수도 없이 맴돌면서 “주님은 살아 계십니다.”
“주님은 살아 계십니다.”
“주님은 살아 계십니다.” 기도하며 되뇌던 일이지금도 생생합니다. 어떻게 그 힘든 시기를 넘기고 지냈는지 오직 은혜!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시련이 있을 것을 아시고 미리 주의 신실하심을 뼈에 박히도록 훈련시켜 주심으로 인하여 끝까지 인내하며 오직 말씀에 죽고 사는 저를 만드심에 감사를 드릴뿐입니다.
과연 언제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1,100만 불 송사의 문제도 해결하시려는가 하며 그 날을 기다리며 전도사 생활을 지냈습니다.
약속은 만 3년을 끌며 해결의 시기가 보이지 아니하더니 3번째 출두하여 법원이 지정한 사무실에서 증언을 하던 중 휴식 시간을 이용하여 복도에서 오가며 마음속으로 주님께 드린 기도
“주님 오늘 이 증언이 마지막 되게 하옵소서.” 하며 짧고도 간절한 기도가 응답되었습니다.
그날 질문에 대한 저의 증언을 다 듣고 있던 고소자의 변호사는 옆에서 적어 준 메모지를 보고 다시 질문하였습니다.
“당신이 교회 시무하게 된 동기는 누구 때문이라고 생각합니까?” 변호사에게 그 질문을 하게 했던 동기는 바로 어떤 사람에 의해 쓰임 받게 된 것 아니냐? 질문인 것을 알고 저는 오히려
“사람이 나를 쓴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이 나를 쓴 것이냐 네가 스스로 생각해 보라”는 의도로 다음과 같이 답변을 했습니다.
“나는 원래 신학교를 졸업하고 주님의 때를 기다리며 자동차 수리하는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하루는 성령님께서  ‘공장을 닫으라.’ 말씀하셔서 문을 닫고 집에서 성경만 보고 기다리는데 일주일이 지나자 ‘석 달을 기다리라.’ 다시 말씀하셨고, 그 석 달이 지나자 A교회에서 나를 채용하는 인사명령이 났다.”
하자 상대의 변호사가 저에게
“내가 당신을 존경합니다.” (I respect you) 참으로 놀라운 주님의 응답이요. 역사였습니다.

4. 끝까지 사랑하는 훈련
교역자로 일하며 송사의 문제가 한창 진행되는 중 또 다른 아픔과 연단이 오는 것을 성령님께서 준비시키셨습니다.
교역자 생활이 익숙해 져 갈 어느 주일날 전도사의 일을 보고 있는 저의 사무실로 마약을 끊고 신학을 공부하는 최형제님이 들어오면서
“장로가 악수하자는 것을 보기 싫어 뿌리쳤다.”며 들어오는 것을 제가 마주 보며 대답했습니다. “최형제님 목회자의 길을 가는 것은 섬김을 받으려 가는 것이 아니요 섬기려하고 목숨까지 주려고 가는 것입니다.” 하고 성경을 인용하여 답하자 갑자기 안색이 변하더니 저를 향하여
“너 죽고 싶어?”
말을 듣고 제가 가만히 있자 밖으로 나가 담임 목사님을 찾아가 무슨 말을 했는지 얼마 후 저를 부르신 목사님께서
”무슨 일이 있나 최형제가 지금 들어와 이상한 말을 하는데 어떻게 된 것이냐?“
물음에 오늘 있었던 일과 사정을 이야기하자
”이제까지 잘 지냈는데 화해하도록 하라.“
고 위로해 주셨으나 그후 최형제는 다시는 교회에 출석하지도 않고 수개월이 지났습니다.
하루는 최형제를 위해 기도하는데
“최형제가 벼랑 중턱에 서서 위만 바라보고 있는데 제가 뛰어가 손을 뻗쳐서 끌어올리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후 성령님께서 다시 저에게
“등록금을 준비해서 찾아가라.” 감동을 주셨습니다. 얼마 있어 아버님이 소천 하셔서 모든 유산을 정리하여 동생에게 다 건네주면서 필요한 등록금을 가지고 성령님의 감동하신 대로 바로 찾아갔습니다. 멀리 워싱턴까지 갔다가 일이 잘 안되어 돌아 온지 며칠이 않되었다며 워싱턴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데 듣는 저도 하나님의 역사가 놀랍기만 했습니다. 그 먼 곳에서 돌아 올 수밖에 없도록 역사를 하셨습니다. 워싱턴에서 제일 큰 한국마켙에서 취직하여 일을 하는데 LA교회에서 알고 지내던 선교사님이 그 마켙에 들어오더니 “할렐루야! 최 전도사님 여기서 웬일입니까? 오늘 내가 부흥회를 인도하는데 하루 와서 간증 집회해 주세요?”
마켙 주인이 그 자리에서 부르면서
“전도사님이세요? 저는 교회 장로로서 주의 종 못쓰겠습니다. 오늘 하루 일 했지만 LA갈 비행기 삯을 드리겠으니 돌아가 주의 일 하십시오.” 하여 그 자리에서 쫓겨나 짐을 싸고 나와 이대로는 돌아갈 수 없다 생각하고 다음날은 음식점에 들어가 요리사로 일하기로 주인과 합의를 보고 있는데 어제 만났던 선교사님이 식당에 들어오면서 어제와 똑같은 말을 하자 식당주인이 이번에는 “저는 집사입니다. 미안합니다. 안되겠습니다.”  두 번 선교사님을 통하여 거절당하면서
“이것은 하나님의 손이다.”
두려운 생각이 들어 워싱턴에서 LA로 돌아 왔는데 제가 찾아 왔답니다.
제가 성령님께서 준비시킨 등록금을 내 놓자 “이제 당신이 하나님의 사람인줄 알겠다.”
며 주님께 감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감사할 사람은 저였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상황과 아픔과 어려운 문제도 주님의 손길과 인도하심에 온전히 따르면 모든 상황은 항상 아름답게 결실되는 또 한번의 역사를 주님은 완성시키셨습니다. 또한 저에게 다른 한 가지를 체험시켜 주셨습니다.
“세상에 있는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 13:1)
이 일이 있은 후 최형제님은 신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현재는 저희 시온성 교회에 선교목사로 함께 동역하게 인도하셨으니 주님이 최형제님에게 꿈으로 저와 동역할 것이라는 약속은 때가 되매 이루셨으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눅1:37) 말씀을 다시 이루셨습니다.

5. 목자의 길
 송사의 문제가 3년이 걸리며 해결된 지 얼마 후 어느 날 다시 성령님께서는 새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교회에 사표를 내고 떠나라” 감동하였습니다. 결국 교회 분란에 대한 저의 모든 사명이 끝나자 기도하는 저에게 성령님께서
“창대케 하기 위하여 떠나보낸다.”며 떠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공장을 닫을 때는 환경에 밀려서 마지못해 닫았던 제가 주님의 신실하심을 더 배우고 체험한 이번에는 망설임 없이 그날로  담임목사님을 찾아가 사표를 내자
 “어디 다른 자리가 있는가?”
 “주님이 사표 내라고 하십니다.”
 “참으로 모를 사람이군 그렇다면 후임자를 구할 때까지만 기다리라.”
한달 후 교회를 떠날 때 목사님께서는 생활에 당장 필요할 테니 쓰라며 3개월의 생활비를 주셨습니다. 그날로 기도원으로 올라갔습니다.
혼자서 기도원으로 가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주님만 아시는 이 외로움, 참으로 세상의 그 무엇도 의지하지 못할 상황으로만 인도하시는 주님. 오직 주만 바라보고 의지하는 종으로 만들어 가시는 주님. 주님이 그 길을 가셨기에 나에게 그 길을 따라 오라 말씀하시는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죽어도 따르겠습니다. 말씀하세요. 종이 듣겠습니다.
주님의 위로나 칭찬을 기대하며 기도원에 이른 첫날 너무도 뜻밖의 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첫날 하나님의 눈에 비친 저를 보여주심에 깜짝 놀랐습니다. 성경에서 평상시 제가 가장 악한 사람을 다윗이라고 했는데 (이유는 사울 왕은 성령님이 떠나 범죄 했지만, 다윗은 성령님이 떠나지 않았는데도 범죄 했기 때문) 첫날 기도원에서 저에게
“네가 다윗과 같은 악한 자”
라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에 놀람과 경악뿐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단식하며
왜? 나의 이런 모습을 알게 하셨는가 무척 궁금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분명 다음 과정이 있기 때문에 준비시키시기 위해 알게 하셨을 텐데 다음 일이 궁금해 졌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다음날도 단식하며 기도하는데 성령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 미워하는 사람 데려가겠다.”
이 또한 너무 의외의 물으심에 이상하다. 왜 이런 말씀을 주셨는가? 엎드려 있으며 대답할 말이 한길밖에 없음을 알도록 저를 깨우쳤습니다.
그것은 사표내고 나오기 바로 얼마 전 교회의 일을 하는데 유독 사람을 멸시하는 것에 격분되어 제가 속으로 멸시하는 사람을 향하여 ‘너를 이 교회에서 필요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던 저를 오히려 성령님께서는 그러한 사람까지도 오히려 포옹하고 품지 못하는 저 자신을 회개하게 하셨던 것과 또 과거에 물으셨던 성령님의 2번의 질문에 제가 보였던 반응을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참으로 정확하신 하나님. 그것은
“4,5년 전 신학교를 다닐 때 내가 물었던 질문에 그때는 네가 욕심으로 대답했지, 그 후 2,3년 후 다시 질문할 때는 네가 인간의 정 때문에 어쩔 수 없어서 대답했지. 그렇다면 오늘은 나의 이 말에 어떤 대답을 하겠니?”
제 아픔을 풀어주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오히려
“네가 이제는 얼마나 성숙한 대답을 하는지 들어보자 말해봐?”
하시는 주님의 의도를 분명히 알게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해요. 주님 이 대답을 원하셨지요. 알겠어요. 주님! 저 미워하는 사람 데려가지 마시고 차라리 저를 데려가세요.”
모세 (출32:32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바울 (롬9: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유다와 같이 베냐민의 종 되는 것을 대신 지겠다고 자진하여 나서는 그 유다를 그토록 사랑하셨던 주님(시78:67,68 “또 요셉의 장막을 싫어 버리시며 에브라임 지파를 택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유다 지파와 그 사랑하시는 시온 산을 택하시고”) 그 유다가 했던 그 대답을 저에게도 만들어 내시려고 이제까지 44년을 참으시며 인도하셨던 주님. 주님이 자원하여 십자가 지심같이 오늘 이 시대에도 그와 같은 자를 찾으시는 주님. 알겠습니다. 주님 제가 그 길 따르겠습니다. 성경 속의 모든 인물들 유다(창44:30-34 “아비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결탁되었거늘 이제 내가 주의 종 우리 아비에게 돌아갈 때에 아이가 우리와 함께 하지 아니하면 아비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이같이 되면 종들이 주의 종 우리 아비의 흰머리로 슬피 음부로 내려가게 함이니이다 주의 종이 내 아비에게 아이를 담보하기를 내가 이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지 아니하면 영영히 아버지께 죄를 지리이다 하였사오니 청컨대 주의 종으로 아이를 대신하여 있어서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아이는 형제와 함께 도로 올려 보내소서 내가 어찌 아이와 함께 하지 아니하고 내 아비에게로 올라갈 수 있으리이까 두렵건대 재해가 내 아비에게 미침을 보리이다), 모세, 바울 하나같이 주님의 형상이 회복된 자들이 그 시대 시대에 복음의 사명을 갖고 나가 순교의 피를 뿌리게 하셨던 주님.
주안에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서 맏아들 그리스도의 형상을 만들어 가는 것을 알지 못하면 그는 어떤 기사와 능력과 이적을 행할지라도 멀리 보지 못하는 영적 소경이라 성경에 말씀하셨던 주님(벧후1:4-9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 ”) 기도원에서 첫 3일 단식하고 나중 3일은 교회 개척을 위한 기도를 마치고 내려오려는 끝 날에 새로운 다짐을 만드신 주님. 모든 것을 이루시는 주님의 역사는 놀라움 그것뿐입니다.
김종태전도사님이 오셨던 것은 주님의 심장을 갖게 하시고 또한 확신시키시고 미련한 종에게 기쁜 응답 주시기 위한 주님의 깊은 배려요 참된 축복의 기회였습니다.
“전영철전도사님 기왕에 목회를 시작하시는 데 주님께 간구해서 큰 능력 받고 목회 하시지요?”
오로지 이 한 가지의 대답을 만들기 위해 주님께서 이제까지 저의 삶을 샘플삼아 인도하며 훈련하심을 깨달은 저에게 김전도사님의 권고는 주님께 엎드려 간절히 다시 한번 간구하게 만드셨습니다.
“주님 저는 능력이나 은사나 다른 아무 것도 필요 없습니다. 오직 하나 간구합니다. 주님 심장가지고 목회 하겠으니 주님 심장주세요?”
바로 그때 성령님께서 저에게 말씀 하셨습니다.
“나의 마음과 너의 마음이 온전히 일치됐다. 이제 내려가서 그 마음으로 목회해라.”
할렐루야! 주님 감사합니다.
이날 받은 은혜로 말미암아 저희 시온성교회는 개척이념이 “아들의 형상을 회복”해야 한다
(롬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자가 되게 하려 ”)는 분명한 목표가 세워지게 되었고 그것을 한 성도 한 성도에게 가르치고 땅 끝까지 전파하기 위해 교회를 창립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6. 새로운 어려움
 기도원에서 내려 올 때 큰 희망과 꿈을 가지고 내려왔던 나의 기대는 쉽게 이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96년10월 27일 첫 예배를 동생부부와 함께 집에서 드릴 때 이 연약한 교회를 어떻게 인도해 가실까?
몇 달이 지나면서 교회이름도 못 정하고 예배를 드리는 저희에게 시온이라는 이름을 주신 주님. 97년 신년 첫 예배를 시온성 교회란 이름으로 드리게 됨을 감사했을 때 그 기쁨, 우리를 기억해 주신 주님, 세상에서 가장 적고 보잘 것 없는 저희 교회를 그래도 주님을 기뻐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전도사로 시무하고 있을 때 하신 말씀 “창대케 하기 위하여 떠나보낸다.”며 사표낼 것을 권하셨던 그 말씀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간직하고 나가는 저에게 개척하여 얼마 되지 않아서 어느 날 예수님은 새벽기도 시간에 기도하는 바로 제 앞에 서 계셨습니다.
“따라 오라”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벌떡 일어났는데 뒤를 돌아보니 제 육신은 엎드려 있는데 제 몸에서 빠져나온 제 영이 일어나 따라가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창고 문을 여시며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필요한 것 있으면 가져가라.” 
“주님 보시기에 제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 주세요.”
너무도 자연스러운 저의 그 대답을 들으신 주님은 “알았다” 말씀하시고는 떠나셨습니다.
그 대답을 하고 나서 그 동안의 연단이 이러한 대답을 하게 만드셨음을 다시 한번 감사드렸습니다. 만일 짧은 제 생애 동안 제가 계획하고 마음먹었던 것이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그와 같은 대답은 절대로 하지 않았을 것이고 저 자신이 보기에 스스로 필요하다 생각되는 것을 가졌을 텐데 그 동안 얼마 되지 않는 저의 삶에서 저의 방법과 계획이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었을 뿐 아니라. 주님을 만나고 나서도 주님은 저의 생각과는 항상 다른 길로, 진실로 좁은 길로 인도하셨고 그 길을 따라 갈 때마다 절대 불가능해 보였던 모든 일들이 오히려 아름답게 변화되었고, 또 왜 빨리 응답하시지 않는가 안타까워하는 저에게 가장 좋은 시간에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셨으므로 저의 모든 생각과 행동 결정에서 주님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저의 속에서 창조해 내셨던 주님. 또한 그러한 대답을 할 수준과 때를 알고 찾아와 주셔서 결국 주님 앞에서 이러한 대답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신 주님께 모든 영광과 찬송과 감사를 돌립니다.
과연 주님이 보시기에 나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무엇일까?
나의 생각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길로 인도하신 주님이셨는데 과연 무엇을 어떻게 주실까?
저도 많은 기대를 했고 진실로 궁금했습니다.
과연 주님이 계획하신 것은 저의 생각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이끌어 가셨고 나타났습니다.
제가 소유한 콘도에서 교회를 개척하여 여섯 달이 지나자 주님께서는 집이 좁도록 새 성도님들을 한 가정 두 가정 모아 주셨습니다.
목사도 아닌 전도사로 더구나 목회 초년생인 저의 눈에 보이는 성장이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선배 목사님들이 목회가 눈물의 길이요 목회가 어렵다고들 하는데 그리 어려운 것 같지 않고 쉬워 보이는 저를 어찌 주님이 가만히 두시겠습니까?
예배 처소를 찾아다닐 때 너무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첫 예배 처소를 성도님들과 열심히 기도하며 찾아들어 갈 때의 기쁨을 더욱 컸습니다.
이제 우리도 주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힘입어 자체의 예배처소를 갖게 되었다는 기쁨 말입니다.
예배처소를 얻고 잠시 동안 조용하던 교회가 전혀 생각지 않았던 어려움이 시작되었고 목회 경험이 부족한 저에게 교회에 부딪쳐 오는 모든 환난과 문제에 담대하게 대처하는 저를 만들어 가셨습니다.
예배 처소를 얻었는데 교회에 어려움이 생기자 모든 문제와 짐이 바로 담임 목회자에게 오는 것과 이러할 때 어떤 자세로 대처해야 하는가? 과연 주님이 시키는 대로 인도하신대로 따라 왔건만 이 교회가 앞으로 어떻게 되려나 한치 앞을 모르니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결국 예배처소를 얻은 지 1년 만에 자릿세를 제대로 내지 못하자 경찰이 와서 열쇠를 바꾸고 저희는 졸지에 교회 모든 짐을 창고에 넣고 길바닥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새벽기도하며 울고 기도하고 답답하던 심령이 막상 어려움이 닥치자 담대함이 넘치게 하셨던 주님.
새벽에 찾아오신 주님에게 대답했던
“주님 보시기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 주세요.! 의 응답이 이것인가?“
그렇구나! 신실하신 주님! 구하는 자에게 아들도 아끼지 아니하시고 주신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기 않겠느냐?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제게 필요한 것이 교회 부흥과 성장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제게 주시기 가장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것은 바로 지금과 같은 상황, 사람의 눈으로 볼 때 모든 것을 포기 할 수밖에 없는 상황, 뒤로 물러 설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주님의 선하심을 믿고 다니엘 같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같이 ‘그리 아니하실 찌라도’를 고백하며 오직 주만 의지하고 따르는 종을 만드시는 것이 주님의 보시기에 먼저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필요한 것 있으면 가져가라.” 주님의 물음에 제가 대답한 것의 응답이 이제 교회를 내 주고 길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바로 기도의 응답인 것을 알았습니다.
교회의 부흥과 성장은 목회자의 그릇만 만들어지면 그릇대로 얼마든지 채우실 수 있는 주님이시기에 미련하여 목회가 무엇이며 어떤 것인지를 모르는 부족한 종을 먼저 그릇을 지으시기 위해 이렇게 인도하시는구나 감사합니다 주님!
얼마 되는 않는 성도님들에게 임시 예배처소를 아가페 기도원으로 알려주고 주일날 준비하고 올라 갈 때 과연 몇 분이나 오실까. 그나마 성도님들이 실망하고 떠나실 것 같은 불안감을 해소시켜 주셨던 주님.
아무리 가슴이 답답해도 기뻐하고 감사함에 본이 되어야하는 사명자이기에
“이것조차도 감사하자!” 
첫 시련이 너무 강하게 닥치게 하신 것은 그래야 다른 웬만한 시련에는 미동도 하지 않게 만드시려고 첫 시련이 큰 것에 감사합니다. 주님! 또 한편으로 다음주일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마음 쓰고 있는 중에 한 성도님의 마음을 감동하사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작은 공간을 허락하신 주님 과거에 번데기를 철판에 익히면서도 피할 길을 주시고 또한 감당할 시험만 허락하셨던 주님. 큰 아픔과 어려운 일을 앞두고 꼭 찾아오셔서 “내가 너와 함께 하니라.”
그 첫 말씀을 항상 신실하게 이루어 주셨습니다.
처음 키를 얻어 문을 열 때
“주님! 언제까지 이 곳에서 예배를 드리게 하시렵니까?” 신실하신 주님 언제까지입니까? 주님! 인도해 주세요?
열쇠를 열 때마다 심장이 떨렸습니다. 석달을 좁은 공간에서 주일 예배만 보고 있는 저에게 성령님은 새롭게 인도하셨습니다.
편지를 여러 교회에 보내게 하시고 응답을 기다리던 중 정확하게 약속 장소로 인도하신 하나님은 그 환난 중에도 함께 하심을 보이셨습니다.
새로이 예배처소를 얻어 들어간 곳에서 주님의 역사는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개척 3년을 전도사로 교회를 시무케 하시면서 어떤 고난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주님의 절대적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믿고 따르도록 훈련시키신 후 그러니까 첫 주님과 만남이 있은지 15년, 신학 졸업한지 10년의 세월이 지난 99년 4월에 목사안수를 허락하셨습니다.
전도사에서 목사의 신분으로 바꾸어 주신 주님께서는 저를 새롭게 인도하셨습니다.
그 동안 성경공부 하시던 K집사님의 처남이 20년이 넘게 정신병동을 전전하며 젊은 시절 다 보내고 있는 오형제를 찾아가 손을 얹고 기도하자 손을 뿌리치며 몸싸움을 하며 끝내 기도하게 하신 주님은 오형제를 위해 매 주일마다 오후 2시에 특별 기도회를 시작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그 후에 주님은 다시 아내의 친구 되는 서자매님이 어려운 일이 많아 저희 교회에 가서 혼자 기도를 하고 싶으니 열쇠를 줄 수 있는가 물을 때 목사안수 받던 날 새벽에 다시 한번 마음을 겸손케 만드신 주님이 생각났습니다.
평소에 기도하기를
 “주님이 보시기에도 목사 같으면 목사안수를 주십시오.”
하던 저에게 정작 안수 주시는 새벽에 자격이 있어 목사안수를 주는 것이 아니라
“자격 없는 것을 오직 은혜로 주신다.”는 것을 알게 하셨던 것이 생각나자 저의 대답은 자연스럽게 나왔습니다.
“서자매님 어떻게 혼자 기도하게 하겠습니까? 제가 그래도 얼마 전 목사가 됐는데 서자매님 한 분도 좋으니 매일 시간 내서 기도회를 인도하겠으니 해 보세요?”
“저 하나 때문에 매일 기도회를 하시겠다구요?”
“물론이지요. 목사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말씀 듣겠다면 어디든지 갈 준비가 되어있으니 21일 다니엘 기도회를 시작합시다.”
“....주의 심장가지고 우리 이제 일어나 주 따르게 하소서 물이 바다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이 ....”
매일 자매님이 나올 수 있는 시간이 오전 10시인지라 저와 아내와 서자매는 매일 21일을 작정하고 기도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전하자 은혜 받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열흘째 되는 날에는 서자매님 스스로
“목사님 오늘은 새벽기도도 합시다.”
“원하시면 언제든지 하세요.”
대답하고는 새벽에 사도행전에서 있었던 성령의 강림을 전하고 믿음의 손을 얻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제 자리에 돌아오고 모든 기도회가 끝나자 서자매님이 물었습니다.
“목사님 왜 기도를 조금 더 해 주시지 그냥 가셨어요? 손을 올려놓고 기도해 주시는데 바로 그 순간에 주님이 앞에 서 계시면서 누런 양 한 마리를 지팡이를 잡고 내려보고 계신 것이 보이는데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자매님 염려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다 보고 계시대요.”
나중에 서 자매님은 성령의 세례를 받으시고는
“하나님이 나 같은 것도 성령을 주실지는 몰랐어요.”
주님은 믿고 구하는 것을 주시되 넘치게 주셨습니다. 서자매님이 7가지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하더니 21일 끝날에는 자기 앞에 가시관 쓰시고 옆구리에 피 흘리며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을 만나고는
“7가지 기도제목 다 안 들어 주셔도 이제는 주님 따라 가겠다.”며 기뻐했습니다.
비록 교회는 누추하고 자랑할 것 없지만 주님의 임재를 체험한 자매님이 은혜 받고 출석하기를 시작했습니다.
저의 할 일은 말씀만 전하면 주님이 그들의 심령을 변화시킬 테니 주님 어떤 영혼도 보내만 주세요. 전심으로 전하겠습니다. 이런 마음을 갖고 있는 저에게 다른 자매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가정의 어려움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물음에
“당신이 주님을 찾는 것이 은혜 받은 증거다. 걱정하지 마라 모든 문제를 남의 문제로 보지 말고 바로 나를 변화시키는 주님의 손길로 보라” 권하고 다시 한 자매를 놓고 새벽에만 시간이 있다는 이자매님 사정으로 이번에는 새벽기도회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매 주일 오형제를 위한 특별기도회와 두 번의 자매님들을 위한 기도회를 통해서 은혜는 제가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두 번의 21일 기도회를 거의 마쳐가는 어느 날 새벽에 예수님이 바로 저희 교회 창밖에 서 계신 것을 제가 얼른 알아보고 뛰어가 주님의 손을 잡으며 말했습니다.
“주님 사랑해요.”
“내가 안다.”
예수님께서는 저의 손을 두 번이나 잡아주시면서 위로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깨어보니 꿈이었습니다.
그 위로해 주신 이유가 다름 아닌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다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매 주일마다 오형재와 두 자매님을 위하여 열심히 21일 동안 주님 마음으로 말씀 전한 것이 바로 예수님을 사랑한 것이라는 것을 저에게 알려 주시려고 찾아 온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두 자매님은 모두 주님 만나고 성령 충만도 받았지만 가장 큰 은혜는 오히려 제가 받았지요.  왜냐하면 그 기도회들을 통해서 저는 목자장되시는 주님을 아케페 사랑한다는 것을 인정을 받았으니 말입니다.
이제야 목회가 성도들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진정 주님이 기뻐하시는 목회가 어떤 것이며, 어떻게, 어떤 자세로 목회를 해야 할지를 정확하게 알게 하셨고 방향이 잡히게 되었습니다.
만일 처음 시작할 때처럼 쉽게 생각하고 쉽게 부흥이 되었다면 두 자매를 놓고 그렇게 전심으로 했을까? 생각해 보니 결코 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였습니다.
그 동안 비록 주님이 친히 허락하시고 인도하셔서 시작된 교회였지만 바로 교회가 성장이 않 되고 어려웠기 때문에 한 영혼이 천하보다 존귀함을 너무나도 철저하게 깨닫게 하였을 뿐 아니라 그 어떤 누구라도 은혜와 말씀을 사모하면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말씀을 전하겠다는 제 자신이 목사로서의 마음 준비가 갖추어지게 하셨으니 이 모든 아픔과 어려움이 저를 주님이 원하시는 목회자로 만들기 위한 주님의 필수과정인 것을 알았으니 이 또한 은혜와 감사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21일을 마치고 나자 은혜를 받은 이자매님이 성경공부를 하고 싶다며 꼭 같이 공부할 자매가 있다하여 함께 시작하게 되었고 나중에 나온 박자매님은 성경을 공부하면서 주의 종의 소명을 확신하는 계기가 되도록 주님은 인도하셨습니다.
주를 따라 가기 18년이 지난 지금에야 그 동안 저를 인도하신 주님의 손길을 돌아보니 분명히 알게 하셨습니다.
주께서 친히 홍해를 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신 주께서 이스라엘 광야 1세의 불신앙으로 인한 실패와 모세의 죽음까지도 상관하지 아니하시고 주께서 처음 계획하신대로 가나안 정복을 위해 광야 2세의 지도자 여호수아를 통하여 말씀대로 가나안 땅 정복을 성취하신 것과 같이 오늘도 우리들의 몸을 성전 삼아 우리 심령 속에 오신 주님께서 오늘도 각 성도의 삶을 통하여 가나안을 정복(하나님 형상 회복)하고 계심을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미련한 종의 삶을 샘플 삼아 만 30세에 영혼의 홍해(거듭남)를 가르시고 10년 동안을 어떠한 상황에서도 오직 말씀에 순종하는 광야훈련을 마치자 만 40세에 공장을 닫고 3달을 기다리게 하시고, 자아의 죽음을 상징하는 요단강(굶어 죽을지라도 말씀에 순종하여 가게를 닫게 하심)을 제사장이 언약괘를 메고 여호수아의 명령에 발을 내 밀어 건너간 것과 같이 “기름을 부었느니라” 말씀을 주어 건너게 하시고 가나안 정복의 첫 관문인 여리고 성을 이스라엘 백성이 제 7일에 마지막 7바퀴 돌자 무너뜨리심과 같이 미련한 종의 교역자 생활 첫 7개월을 인내하게 하셔서 마침내 주님이 역사하심으로 인내의 결과를 얻게 하셨던 주님을 알게 하셨을 뿐 아니라 그 후에도 아이성 전투의 실패와 회개로 인한 전진을 너무도 정확하게 이루어 가셨습니다.
주님이 친히 종의 생에 함께 하시고 인도하셔서 출애굽기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함께 몸이 죽어서 가는 가나안(천국)이 아닌 육신이 살아 있을 때 가나안 정복(그리스도의 형상 회복)을 모든 성도들이 신앙의 여정 중에 필히 가야만 한다는 것을 확신하고 목사안수를 받기 위해 제출해야 하는 논문을 그 동안 주님께서 친히 인도하셔서 체험으로 알게 하신 모든 내용을 논문의 중심 주제로 하여 출애굽기에서부터 가나안 정복을 이룬 여호수아서까지를 시간표로 작성하기 시작하면서 너무도 놀라운 새로운 내용들이 시간표를 만들어 가면서 발견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이 모든 50년 동안 12지파 이스라엘 백성이 걸었던 구원의 전 과정과 내용이 또한 신약에서는 예수님 12제자들의 심령이 점진적으로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로마서 8:29과 일치되게 변화되는 심령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구약 속의 출애굽에서부터 가나안 정복까지를 신약에서는 가나안 땅을 정복해 가는 것이 아닌 가나안 땅을 상징하는 제자들의 심령이 잃었던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어 가는 것을 알고는 구약의 12지파의 가나안 정복과 신약의 12제자의 하나님 형상 회복이라는 신약과 구약을 대조시키며 전체적인 성경을 재해석할 수 있는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또한 그 모든 내용을 하나의 도표로 작성하도록 지혜를 주셨고 그 도표와 시간표를 보면 누구나 한 눈에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인도 하셨습니다. 또한 그 알게 하셨던 모든 내용이 목사안수에 필요한 논문이 되게 하셨습니다. 목사안수 때 제출했던 논문을 심사하셨던 총회장 목사님께서 물으셨습니다. “어떻게 그런 내용을 알게 되었습니까?”
저의 대답은 너무도 간단했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그 길로 데리고 가 주셔서 알게 되었습니다.”
진정 요셉이 자기를 애굽의 종으로 팔았던 형들을 만나 고백했던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요셉이 자기의 길을 하나님의 눈으로 재해석하여 고백하던 것과 같이 그 동안 나는 왜 종의 길이 이다지도 남과 다르게 고달픈가를 깨달아 알게 하셨을 뿐 아니라 오히려 모든 손길에 감사하고 감사하게 만드셨습니다.
그 후에는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의 전 과정과 내용을 성도들에게 가르치자 비록 적은 수이기는 하지는 이제까지 성경을 공부한 모든 성도들의 한결같이 말씀하시기를
“이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왜? 무엇을 목표로 어떤 길을 필히 가야하는 지를 정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공통된 고백을 들을 때 또한 감사했습니다.
주의 인도하심 따라 교회를 개척하고도 3년 동안 창립예배를 드릴 환경이 되지 못했으나 그것도 때가 되매 허락하셨고 주님은 부족한 종에게 결혼예식을 인도하는 기회도 주시며 불신자의 가정에서 자라난 미련한 사람을 50년의 세월이 지나서 목사로 만들어 가셨고 지금도 만들어 가고 계십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고전15:10)이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이 진정 저의 고백이 되도록 역사하셨습니다.
그 후에도 수많은 시련과 연단이 계속되었을 때 주님은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우연이 없으신 분이신데 왜 교회를 지켜나가기가 이렇게 힘이 들게 하실까? 그 동안 성령의 모든 말씀에 전심으로 순종하며 사업장도 정리했고 소유한 모든 것을 주께 드리고 들어온 길인데 왜? 교회를 개척하고 5년 동안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자 그 교회 개척이후로 자릿세와 집세를 제 날짜에 제대로 내어 본 적이 없었던은 왜일까?
그런데 놀라운 것은 깨달아 졌습니다.
그것은 힘들던지 쉬웠던지 어찌 되었던지 간에  교회 시작에서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집세와 교회세를 해결되었기 때문에 현재 집에서 살고 교회를 유지해 가고 있지 아니한가.
순간 깨달아 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 순종한 종에게는 책임이 없다. 불순종했으면 내가 책임을 져야 하지만 순종하면 시킨 주인이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래 정이 교회가 부흥이 안되고 성도가 없어 도저히 유지할 수 없으면 닫으면 된다. ”
내가 교회 집세를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은 사업을 운영하듯이 나의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일이 아닌 주께 순종하며 주의 일을 하면 교회의 모든 일은 주님이 책임지시는 것이다.
부흥성회를 인도하시던 신필수 목사님께서
“7년을 인내하며 기다리라. 그리하면 약속이 이루어지리라.” 위로하셨습니다.
그 후에도 시련과 연단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과거처럼 마음이 짓눌리는 것은 없어지고 이제까지 지키신 주님, 앞으로도 지키신다는 담대함을 만들어 내셨습니다.
신실하신 주님은 그러한 마음을 미리 준비시키시고 더 큰 시련을 허락하셨습니다.
교회를 함께 시작했던 김목사님이 주님의 인도하심 따라 교회 개척을 위해 떠나가시자 그 나마 있던 성도들도 상심이 되어 하나 둘씩 떠나갔습니다.
약속의 7년은 얼마 안 남았는데 어찌해야 하나 과거에 약속의 말씀 받은 전도사님이 전화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상담했을 때
“전기와 수도가 끊어질지라도 주님이 말씀하신 가게가 팔린다는 날까지 가게 앞에 의자 갖다 놓고 그 자리를 지켜라.”고 상담해 주었는데 ....
성도들은 다 떠나고 피아노 반주자 혼자 남아 있는 교회를 무려 7개월을 성도 한 분 놓고 설교하며 견디어 왔는데.... 한 분 성도라도 있으니 교회를 닫을 수도 없고 .....
2003년 4월 1일에는 이런 기도가 나왔습니다.
“주님이 아십니다. 더 이상 인내하라면 더 인내하겠는데요 건물주인 할머니 뵙기가 너무 미안해서 그럽니다. 이제는 저에게 약속하신 이사야 53장과 49장의 약속이 안 이루어질 찌라도 주님 따르겠습니다.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주인이 되시는 주님 어떻게 할까요? 어디든지 가라면 가겠습니다. 부목사로 임지를 주시면 가겠습니다. LA를 떠나 타 지역으로 인도하시면 가겠습니다. 말씀하시면 종이 듣겠습니다.”
저의 기도를 하감하신 주님께서 순간 영안을 열어 다음과 같은 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10여 년 전에 뻔데기를 철판을 던져 단련시키시던 하얀 두 손이 나타나 정금으로 된 금덩어리 2개중에 하나를 움켜잡고 잡으니 그 황금덩어리가 하얀 손에서 성막의 성소 안에서 불을 밝히는 공교한 7가지의 황금촛대를 만드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순간이었지만 너무도 감격이 되었습니다.
(욥 23: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분께서 아시나니 그분께서 나를 단련하신 뒤에는 내가 금같이 나오리라
어떻게 이렇게 사람을 완벽하게 위로하실 수가 있을까 하고 새로운 용기가 불끈 올라왔습니다. 주님 그렇다면 또 다시 시작해 보겠습니다.
전도사 생활을 마치고 96년 10월27일 교회를 개척하고 약 2달이 지난 12월20일에 기도하는 제 앞에 주님이 서 계셨던 주님이. “따라와라.” 하시고는 따라가는 저에게 한 창고의 문을 여시며 “필요한 것이 있으면 가져가라.” “주님 보실 때 제게 필요하다 생각되시는 것 주세요.” “알았다.”
그 이후로 저희 교회를 주님은 7년 동안 7번 길바닥에 내동이 쳐지는 길을 걷게 하셨을 때 어떤 때는 아이들 셋을 데리고 길바닥에 나앉을 위기 때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었지만 7년 동안의 연단은 오직 하나 마지막 때 금 촛대로 만드셔서 쓰시려고 그랬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주님의 말씀에 감동되어 그날 집에서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오늘 우리 교회가 7번째 쫓겨났다 하지만 아빠는 앞으로 12번을 더 길바닥에 쫓겨나도 주님을 끝까지 따라 간다” 고백하는 저의 말을 들은 둘째 아들이 “아빠는 이제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Unconditional love(무조건 사랑)하는 분이 되셨구요 Unbreakable relationship recover(깨어질 수 없는 관계를 회복)되셨다”고 성령의 감동으로 자기도 모르는 말을 하였습니다. 약 10년이 지난 후에 아들에게 그때 네가 한말을 기억하느냐 물었더니 내가 그런 말을 했어요 하더군요. 참으로 주님께서는 교회성장도 아니요 부요도 아니요 오직 하나 마귀도 깰 수 없는 관계회복의 복과 은혜를 예비하고 계셨습니다. 그 후에도 수 많은 은혜를 경험하고 경험하면서 더 깊은 은혜의 세계로 인도하셔서 지금은 한국과 일본으로 일 년에 한번 씩 한 달이나 두 달 동안 창세기의 선악과의 비밀과 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신부단장 세미나를 인도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목회자 세미나를 하면서 해 마다 나갈 때는 10년이 넘게 모았던 자료들을 30대의 컴퓨터에 넣어서 10년 전부터 목회자들에게 나누어 드렸는데 2019년에는 가정교회 온 식구들과 합심하여 100대를 마련하여 나갔을 때 새벽에 기도를 하게하시던 주님께서는 저의 헌신이 열납 되었는지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한 창세전에 미리 정하신 인간 설계도”를 주셨습니다. 코로나로 2020년에는 한국에 못나가는 동안 또 다시 제가 쓸 수 있는 크레딧을 거의 다 채우면서 혼자 컴퓨터를 100대 준비한 저에게 성령님의 감동으로 알게 하셨습니다. “너와 같이 All in한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어서 십자가까지 데러간다.” 그 감동을 받고나서 성경을 보니 전부 하나님께 All in한 사람들이 시대마다 쓰임 받은 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주님께서 교단을 선택할 때 주셨던 말씀과 우리 교회 석 달치 밀린 자릿세를 전부 세미나를 인도하던 교회에 헌금할 때 주셨던 약속의 말씀 “마지막 때 비밀을 주겠다”는 약속을 받고는 주위 성도들에게 주님께서 전목사에게 약속하신 계시록을 열어 달라는 중보의 기도를 부탁하고 계시록을 읽어 나가는 데 (계6:9) 그분께서 다섯째 봉인을 여신 뒤에 내가 제단 아래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자기들이 간직한 증언으로 인해 죽임을 당한 자들의 혼들을 보니 10) 그들이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오 거룩하고 진실하신 주여, 주께서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사 우리 피에 대한 원수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는 일이 얼마나 더 지속되리이까? 하더라. 11) 그분께서 그들에게 각각 흰 예복을 주시며 또 그들의 동료 종들과 형제들도 그들처럼 죽임을 당해 그 수가 차기까지 그들이 아직 조금 더 안식해야 한다고 그들에게 말씀하시더라.
이 말씀을 읽는데 말씀이 제 가슴으로 팍 박히며 떨리는 것입니다. 바로 그 순간에 성령의 감동으로 깨달아 졌습니다. 계시록이 죽기까지 순종하신 주님과 똑 같이 죽임당하면서도 믿음을 지킨 자들의 수를 채우시려는 창세 전 하나님의 계획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 숫자가 채워지기 위해서는 마지막 때 계13장15절의 두 짐승이 나타나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는 모든 자는 다 죽이게  하더라는 말씀이 이해가 되고 그런 죽임을 당하면서도 스테반 집사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어야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행 7:60)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주여, 이 죄를 저들의 책임으로 돌리지 마옵소서, 하더라. 이 말을 하고 그가 잠드니라.
(요 15:13) 사람이 자기 친구들을 위해 자기 생명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 무엇이든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너희가 행하면 너희가 나의 친구니라. 15) 이제부터는 내가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자기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오히려 내가 너희를 친구라 하였나니 이는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모든 것을 너희에게 알려 주었기 때문이라. 16) 너희가 나를 택하지 아니하고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것은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남아 있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그분께서 그것을 너희에게 주게 하려 함이라.
제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지금도 계시록을 다 알아서 쓰는 것이 아니라 그 숫자를 채우시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계시록을 읽어나가자 계시록 전체가 확실한 구분이 되고 많은 부분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말 3:17)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보석들을 만드는 그 날에 그들을 나의 소유로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자기의 친아들을 아끼는 것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18) 그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로운 자와 사악한 자를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하나님께도 보석이 있는 것을 새롭게 알았습니다.
(요 12: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의 아들이 영광을 받을 때가 왔도다. 24)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홀로 남거니와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25)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그것을 잃을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에 이르도록 그것을 간직하리라. 26) 어떤 사람이 나를 섬기면 그는 나를 따를지니라. 내가 있는 곳에, 거기에 내 종도 있으리니 어떤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주님을 섬기는 것이 주님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것이요 그 길을 따르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성경을 보면서 확실히 깨달은 것은 주님은 분명히 죽고자 하면 산다 하셨지만 수 많은 성도들이 죽으려고 성경을 보지 않고 오히려 안 죽으려고 하면서 보기 때문에 성경이 너희에게 봉한 책이 된다 하셨는데 죽으려고 하면 보이는데 안 죽으려고 하니 성경을 기록하신 하나님과 생각의 근본이 다르니 봉한 책이 되는 것은 당연한 원리인 것입니다. 6년 전 교회를 개척할 당시 처음 길에 쫓겨나올 때는 특수 훈련을 마치고 졸업하는 모습으로 위로하시던 주님,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 이모저모로 위로하시고 인내하게 하셨던 주님.
 첫 번째 길거리로 나와 갈 곳이 없어 방황할 때 너무 큰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의 선하심을 맛 보고 나니 이번 문제는 밥이다. 아니 모든 문제는, 아니 앞으로의 어떤 문제도 다 나의 성숙과 강인함을 위한 주님의 은혜요 사랑의 손이다. 담대하게 고백하게 만드셨습니다.
그 동안의 모든 주임의 인도하심을 돌아보면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인도하셨음을 압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주님이 말씀하신 무화과나무(무화과나무는 성경에서 이스라엘로 상징됨 실제 이스라엘의 국화는 무화과나무이며 1948년 5월14일 독립했음)의 싹이 나서  한 세대의 년 수인 70년이 거의 다 이루어져 가는 것을 세상에 알리려면 먼저 이 말씀을 받은 종이 세상을 살되 말씀과 일치되는 생활을 살지 않으면 이 거짓되고 속임 많은 세상에서 어느 성도도 따르지 않을 것을 아신 주님께서는 이 미련한 종의 삶에 개입하셔서 좁은 길로 인도 하셨습니다.
믿음의 선조들이 살았던 나그네와 같은 삶과 신앙을 본 받게 하시려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하루는 기도하는 제게 성령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볼 때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어떠한 환경에서도 내 말씀을 존귀히 여김으로 인해 세상의 소리와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상한 마음과 찢어지는 아픔을 인내하며 나를 따르는 그 마음이 이 세상에서 무엇보다도 내게 가장 귀하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3일 길인 모리아 산을 가는 동안의 찢어지는 아픔을 인내하며 끝까지 말씀에 순종하였기 때문에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나의 미련함과 연약을 미리 아시고 위로도 그때마다 또 다시 넘치게 하셨던 주님!
이제는 압니다. 부족하고 미련한 종에게도 그 35년 동안 오직 “일용할 양식이면 족하리라.”는 그 한마디 말씀에 순종하려고 수많은 아픔과 어찌할 수 없는 환경,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수많은 순간들, 세상의 기준과 가치관으로 볼 때 자기 것도 챙기지 못하는 가장 미련하고 어리석은 자로 보여지는 것을 알면서도 주님이 말씀하셨으니 오직 순종하며 가자, 또 인내해 보자하며 상하고 찢어지는 마음을 가지고 주를 따라온 것을 아시고 이사야49장 말씀으로 위로하셨습니다.
“나는 여호와의 보시기에 존귀한 자라. 나의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셨도다 다시 야곱을 자기에게 돌아오게 하시며.... ”
마침내 어려운 환경에서 귀한 하나의 결심을 하게 인도하셨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구약 출애굽기에서부터 가나안정복을 신약의 그리스도의 형상이 회복되는 제자들의 심령의 변화되는 과정과 연결시켜서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구원을 완성시켜 가시는 것을 책으로 쓰게 하셨습니다. 이 결심 또한 주님의 예비하심이요 은혜가 아니겠습니까?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약속을 이루어주지 아니 하셔도 따라 가겠습니다.
주님! 인도하소서
주님! 내 뜻대로 마시고 주님 기뻐하시는 길로 인도하소서.
주님! 감사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호산나!
샬롬!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마24:42
문자세세지를 818-606-6418 이사야전목사나 kskjeon@gmail.com 으로 연락 주시면 자료도 보내드리겠습니다.
사진 설명 : 세번째 사진은 함께 전국을 돌면서 세미나를 주관해 주시는 키가 크신 분이 이성근목사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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