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날 여러 놈 끌고와 밥 먹이는 길고양이

글쓴이: RibonG  |  등록일: 10.08.2020 11:42:12  |  조회수: 767
올해 명절은 조용하게 지나갔다. 누군가를 위해 해야 할 일도, 눈치 볼일도 없이 하루가 지나간 것 같다. 올해는 코로나 사태로 길가에 주차된 차도 별로 없다. 동네도 조용하다. 어색한 명절이다. 명절 전날엔 유명가수의 콘서트를 보며 잠시 흥분했고, 아무도 오지 않는 명절 아침엔 퍼질러 늦잠이나 잘 요량으로 늦게까지 책을 읽었다.

추석날 아침 현관문이 열릴 시간이지만 닫혀 있으니 마당에 사는 개가 나오라고 컹컹거린다. 먼동이 트면 나가서 밥 주고 대문 여는 나의 일상을 정확하게 입력해 놓은 것 같다. 참 신기하다. 고양이도 마찬가지다. 해만 뜨면 문 앞에서 야옹거린다. 개는 주인이 걱정되어 짖는 듯하고, 고양이는 자신을 보러 나오라고 목소리를 낸다. 어쨌든 누가 이렇게 격렬하게 불러주겠는가. 후다닥 나가서 대문을 열고 밥을 준다. 빨리 조치하지 않으면 개 짖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동네 사람이 문을 두드리기 때문이다. “뭔 일 있나?”

저 녀석 때문에 요즘 자주 뉴스에 오르내리는 고독사, 돌연사 등 죽음이 닥쳐와도 하루는 안 넘길 거라 우스개를 한다. 동물이라도 옆에 어슬렁거리니 혼자라는 느낌이 덜하다. 때론 밥 챙겨주는 것도 귀찮다. 하나 아침마다 누군가와 일용할 양식을 나눈다는 것에 의미를 두다가 가족이 되나 보다.

몇 년 전 우리 집 마당에 놀러 왔다가 개와 친구가 된 길고양이는 자기네끼리 대화와 타협을 거듭한 끝에 어느 날부터 같이 사는 거로 합의를 본 것 같았다. 아침에 현관문을 열었을 때 개집 안 풍경을 보고 깜짝 놀랐다. 개집을 나오는 개 뒤에서 고개를 빠끔히 내밀고 “누구 왔어요?”라고 말하듯 바라보던 고양이. 이후엔 두 마리를 더 데리고 들어와 아예 그 좁은 개집에 둥지를 틀고 한 지붕 두 가족이 되어 살았다.

그러던 개가 갑자기 죽었다. 오랜 시간 함께 한 녀석이라 한동안 우울하고 공허했다. 다행히 고양이들은 남아 있어 자기들끼리 개집을 차지하고 지내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개가 사라지자 개집에 모여 같이 부대끼고 잠을 자던 고양이들도 다 사라졌다. 배신감 같은 이상하고 허탈한 마음에 다신 동물은 키우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절간같이 조용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면서도 아침이면 집 나간 녀석이지만 밥은 먹고 다니라고 남은 사료를 부어놓고 나갔다. 언젠가부터 사료 그릇이 비워졌다. “고양이가 다녀갔구나….” 그러나 해 질 무렵이면 개도 고양이도 아닌 이상한 동물이 어슬렁거렸다. 어느 날 낮에 잠시 나타난 동물을 멀리서 사진을 찍어 확대해보니 너구리였다. 가까이서 실물을 본 건 처음이라 놀랐다.

“허허, 외롭다고 너구리를 키우는가? 농사짓는 곳에선 유해동물인데.” 어른들은 폰에 찍힌 너구리 사진을 보며 핀잔과 함께 혀를 끌끌 찼다.

어느 날 퇴근을 하니 마당에 성견 한 마리가 묶여 있다. “너구리보다는 개를 키우는 게 낫지.” 앞집 아저씨가 데려다 놨다. 일 년이 채 안 된 영리한 놈이란다. 강아지는 살던 곳에서 분리되면 며칠을 깽깽거리며 앓지만, 이놈은 내가 새 주인이 되리란 걸 아는지 짖지도 않고 꼬리를 내려 주인이 어떤 사람인가 스캔을 하며 훑어본다. 며칠이 지나 주인의 동선을 확인하고 주인이 출근할 때, 운동 나갈 때, 마실 나갈 때를 정확히 알고 각기 다른 표현을 한다. 해가 뜨는 시간에 대문 열러 안 나오면 불러제낀다. 정말 영리하다.

그런데 더 신기한 일은 사라졌던 길고양이가 몇 달 만에 다시 돌아온 것이다. 그들도 인간과 같이 아무리 맛있는 먹거리나 좋은 집도 친하게 지내는 이웃이 없으면 소용이 없나 보다. 처음엔 서로 텃세를 부리는 건지 끝없는 패싸움이 벌어진다. 한동안 서로 으르렁거리며 상처를 내고 서로 잡아먹을 듯 약 올리며 탐색하더니 드디어 또 한 지붕 두 가족으로 살기로 했나 보다. 장난치고 노는 모습이 귀엽다.

명절에나마 북적거리며 활기찼는데 조용하니, 때마침 핑크(수놈 고양이) 녀석이 데려온 고양이 무리가 마당에서 분주하다. 여러 놈을 끌고 와서 물끄러미 밥 먹는 것을 지켜봐 준다. 동물도 명절이 있나 하며 웃어본다. 자연에서 함께 살아가는 동물의 세계를 보노라면 가끔 관계에 대한 많은 생각과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글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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