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글쓴이: rainbows7  |  등록일: 05.27.2017 21:17:27  |  조회수: 570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푸시킨

 

솔로몬왕인가 ?

신하들에게 명령해서

세상에서 제일 귀한것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얼마후에 신하들이 반지 하나를 가져옵니다.

그 반지에 이러한 글귀가 있었답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부귀,영화 그리고  고통,어려움 ,슬픔 ,우울함, 전부입니다.

현실에 우울하신 모든 분들 힘내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를 옮겨 왔습니다.

살아보니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다 지나가더라고요




시를 말하다  문태준 시인
"나는 오래도록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리/ 리라로 선량한 감정을 일깨웠고/ 나의 잔혹한 시대에 자유를 외쳤고/ 쓰러진 이들에게 동정을 호소했으므로." 이 시구는 푸시킨이 1836년 쓴 시 '기념비'의 일부분이다. 세상을 떠나기 한 해 전에 쓴 시로 자신의 생애와 시적 성과를 자평한 것이면서 동시에 사후 자신의 문학이 미칠 영향을 예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가 예언한 대로 알렉산드르 세르계예비치 푸시킨(AleksandrSergeevichPushkin, 1799.6.6~1837.2.10)은 러시아의 국민 시인이며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로 칭송되었다. 러시아 작가 고골은 푸시킨을 200년에 한 번 나타날 작가로 치켜세웠고, 그가사망하자 "균형된 정신세계를 가진 위대한 인간의 상실"이라며 몹시 애석해했다. "인간의 감정을 고양시키고 선을 불러일으켰다"고 평가받는 푸시킨의 문학 세계는 인간 영혼의 평온과 자유를 노래하는 데 바쳐졌다. 그가 한때 정치적인 성향의 풍자시를 창작해 검열을 받고, 1825년에 12월 근대적 선진 지식인들에 의해 일어난 혁명운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시를 짓기도 했으나 보다 큰 그의 문학적 성향은 삶의 긍정과 고상한 정신의 지향에 있었다. 사랑의 감정과 자유, 신성, 환희로 고동치는 가슴을 노래해 삶의 경이를 일깨우고자 했다. 그가 “겸허와, 인내와, 사랑과, 순수의 정신이/ 제 가슴속에 살아나도록 하소서”(‘신부들과 수녀들이……’)라고 썼듯이.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이 시는 삶이 우리에게 안겨 주는 슬픔과 우울을 담담하게 인내하라고 당부한다.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고, 그렇게 시간이 경과하면 내 삶에 친밀하던 눈물과 고통은 사라지고 기쁨과 행복이 도래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곤란은 시간의 그늘과 주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이라는 이 유명한 시구에서도 푸시킨은 현재의 일이 순조롭지 않아 어렵더라도 내일의 시간에 생생한 기운이 샘솟아날 것임을 믿으라고 말한다. 고통이 풀리고 생동의 빛이 우리를 감싸는 후일에는 힘들었던 순간이 오히려 우리들 삶의 궤적의 기록이며 소중한 자산일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시는 삶의 근심을 큰 기쁨으로 바꾸는 것이 시간의 흘러감, 물처럼 흘러가는 시간의 완력에 의한 것이라고 바라보고 있음은 물론 삶의 음지를 양지로 전환시키는 것이 마음의 작용에 의해서도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어둡고 비통한 삶의 단면에 처하더라도 스스로 일광(日光)을 비춤으로써 그것을 넘어설 수 있다고 보는 이러한 푸시킨의 삶의 긍정적 에너지는 "마지막 꽃들은 더 사랑스럽네/ 들판에 화려한 첫 꽃들보다도/ 우리 가슴에 슬픈 꿈들을/ 더 생생하게 일깨우는 마지막 꽃들/ 그렇게 간혹 이별의 순간은/ 더 생생하네, 달콤한 만남의 순간보다도"라고 노래한 시 '마지막 꽃들은 더 사랑스럽네……'에서도 드러난다.
나탈리아 곤차로바(NatalyaGoncharova)와의 결혼 생활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그의 아내는 사교계에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얻었으나 사치벽이 있었다. 그리고 푸시킨을 죽음의 사지로 내몰아 간 것도 아내의 염문설이었다. 러시아 근위대에 근무하는 프랑스인 장교 단테스와의 추문은 푸시킨을 괴롭혔고 결국 단테스와의 결투라는 파국에 치닫게 했다. 단테스와의 결투에서 총상을 입은 푸시킨은 이틀 후인 1837년 1월 29일 숨을 거두고 만다.(레르몬토프는 푸시킨이 이런 비극적 죽음을 맞게 된 것은 러시아 궁정의 시시한 무리들의 함정과 음모 때문이라고 분노했다.) 푸시킨이 영면하자 2~5만 명의 문상 인파가 몰려들었고, 니콜라이 1세는 조문 행렬에 놀라 6만의 군대로 경계를 세웠으며푸시킨의 관을 미하일로프스코예 인근의 수도원으로 급히 옮기도록 했다.

미래파가 푸시킨의 문학을 트집 잡아 거북할 만큼 따지고 들고, 또 무용한 문학이라며 현대의 증기선에서 던져버려야 한다고 목청을 돋우기도 했지만 푸시킨 문학의 신화화 작업은 국가 차원에서 진행되었다. 푸시킨 문학의 휴머니즘과 삶에 대한 낙관적 전망들은 러시아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단일하게 묶어 내는 데에 아주 유용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진보적이고도 아주 양심적인 문학가들이 결과적으로 푸시킨의 문학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푸시킨이 구속되지 않는 자유의 정신으로 문학가로서의 위엄을 지켰기 때문이었다. 러시아의 혁명 시인 마야콥스키가 1912년 미래파 선언을 통해 과거 전통의 과감한 청산을 선언하며 그 청산 목록에 푸시킨의 이름을 올려놓았지만, 후일 푸시킨의 문학을 지지하고 옹호한 까닭도 내면의 양심에 귀 기울였던 푸시킨의 준엄한 예술가적 면모에 있었다. 푸시킨이 다음과 같이 시인의 시혼을 노래했듯이. “시인이여! 사람들의 사랑에 연연해하지 말라/ 열광의 칭찬은 잠시 지나가는 소음일 뿐/ 어리석은 비평과 냉담한 비웃음을 들어도/ 그대는 강하고 평정하고 진지하게 남으라// 그대는 황제 : 홀로 살으라. 자유의 길을/ 가라, 자유로운 지혜가 그대를 이끄는 곳으로/ 사랑스런 사색의 열매들을 완성시켜 가면서/ 고귀한 그대 행위의 보상을 요구하지 말라”(‘시인에게’)
작가소개

알렉산드르 푸시킨 (Александр Сергеевич Пушкин, 1799.6.6~1837.2.10) 1799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1811년 차르스코예셀로(후에 푸시킨의 이름을 따서 푸시킨 시로 바뀜)에 개교된 귀족 기숙학교에 입학했다. 1817년 졸업 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외무부 서기로 근무를 시작했다. 1820년 서사시 ‘루슬란과 류드밀라’를 발표했으며, 이어 ‘카프카즈의 포로’, ‘바흐치사라이의 분수’, ‘도적 형제’, ‘집시’ 등 낭만주의의 특질이 강한 작품들을 집필했다. 1824년 시인으로서 민족문학에 눈을 뜨며, ‘예언자’를 비롯한 서정시들을 썼다. 1830년 러시아 문학사상 최초의 리얼리즘 소설로 꼽히는 ‘예브게니 오네긴’, 단편 소설집 [벨킨 이야기], 서사시 ‘콜롬나의 작은 집’ 등을 완성했다. 1836년 문학 잡지 <동시대인>을 발간했으며, ‘대위의 딸’을 완성했다. 1837년 아내 나탈리아를 짝사랑하는 프랑스 망명 귀족 단테스와의 결투로 부상하여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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