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태프 성추행 김생민의 방송 하차, 빠진 게 있다

글쓴이: yolo7  |  등록일: 04.03.2018 13:53:00  |  조회수: 312
"너만 당한 것도 아니고, B는 너보다 더 심한 일을 당했다. 그런데 B는 출연진이 나가야 한다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김생민 성추행 사건을 처음으로 보도한 <디스패치> 기사 중)

지난 2일 <디스패치>를 통해 보도된 김생민 성추행 사건은 성실한 이미지로 25년 만에 전성기를 맞은 김생민에게 큰 타격을 안겨주었다. 성추행 보도 이후 김생민은 그를 스타덤에 오르게 했던 KBS <김생민의 영수증>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출연해왔던 KBS <연예가 중계>, MBC <출발! 비디오 여행>, SBS < TV 동물농장> 등 현재 출연중인 10개 프로그램에서 하차한다고 발표했다. 10여 편의 광고도 줄줄이 방송 중단을 결정했다.

<디스패치> 보도에 따르면, 김생민 성추행 사건은 2008년 발생했다. 김생민은 노래방에서 스태프 두 명을 밀실로 불러 성추행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미 10년 전 벌어진 일을 두고 어렵게 정상의 자리에 오른 김생민에 대한 가혹한 처사라는 반응도 있다. 하지만 보도에 따르면 김생민은 당시 두 명의 여성 스태프를 연달아 성추행했으며, 이중 한 피해자는 김생민에게 사과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프로그램을 하차해야 했다.

당시 김생민에게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 모두 사건 직후 해당 프로그램에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김생민은 모든 피해자에게 직접 사과하지 않았다. <디스패치>에 제보한 피해자 A씨는 사건 직후 제작진에게 김생민 퇴출을 요구했다. 하지만 제작진은 A씨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해당 프로그램 메인 작가는 방송가에서 이런 일로 출연진을 자르는 법이 없다며 A씨의 항의를 묵살했다. A씨는 '가해자의 경력이 단절될 수 없다면, 피해자의 경력 또한 단절될 수 없다'는 각오로 오기로 버티고자 했다.

하지만 A씨는 보이지 않는 알력으로 인해 스튜디오 촬영현장에서 밀려 났고, 그녀가 맡고 있던 프로젝트 또한 외주 인력에게 넘어갔다고 말한다. 몇 달 뒤, A씨는 해당 프로그램을 스스로 그만두어야 했다.

"김생민이 보기 싫을 테니 스튜디오 업무에서 손을 떼라." (<디스패치> 기사 중)

A씨가 몸담고 있던 프로그램 제작진은 피해자를 보호하기보다 가해자를 두둔했고, 김생민의 퇴출을 요구하는 피해자를 압박했다고 한다. 조직 내에서 흔히 벌어지는 2차 가해의 대표적인 유형이다. 김생민의 하차를 요구하지 않았던 다른 피해자는 김생민에게 직접 사과를 받았고 해당 프로그램에서 계속 일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A씨는 사과는커녕 부당한 이유로 프로그램에서 밀려나야 했다.

2차 가해, 그리고 10년 만의 고백

10년이 지난 지금 전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미투 운동(#MeToo)에 힘입어 A씨는 어렵게 자신이 김생민에게 성추행 당했다고 고백했다. 가해자인 김생민에게도 10년 만에 사과를 받았다. A씨가 원한 건 형식적인 사과가 아니었다. 김생민이 10년 전 A씨에게 저지른 성추행에 대한 인정과 반성이었다.

A씨는 그 사건 이후 그토록 하고 싶었던 방송일을 그만두어야 했으며, TV에서 김생민을 볼 때 마다 혼자 괴로워해야 했다고 한다. 과거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 감독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피해자들도, MBC < PD수첩>을 통해 밝혀진 김기덕 감독, 배우 조재현 성폭행 사건 피해자들도 그래 왔었다. 피해자들 중 상당수는 그 사건 이후 연극계, 영화계를 제 발로 떠나야 했다.

직장-조직 내 성범죄 피해자들이 원하는 것은 범죄 사실에 대한 가해자의 인정과 반성, 피해 정도에 따른 가해자 처벌 규정 및 피해자에 대한 보호 대책 마련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대다수 조직들은 내부에서 성범죄가 발생하면 피해자를 보호하기보다 가해자를 두둔해왔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피해자에게 돌아갔다.

그 사건 이후에도 김생민은 별 탈 없이 방송 활동을 이어갔고, 지난해에는 전성기 수준의 인기를 누렸다.

"경찰로 끌고 가서 금전적 합의를 받고 싶냐? 이런 일은 방송국에 소문이 금방 퍼진다." (<디스패치> 기사 중)

어떤 이는 대중들이 김생민의 성추행 폭로에 유독 분노하는 이유를 두고 김생민이 평소 방송을 통해 보여준 근검하고 성실한 이미지에 배반되는 충격과 배신감이라고 지적한다. 그 말도 일리가 있지만, 김생민 성추행 사건의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김생민이 10년 전 두 명의 여성 스태프들을 연달아 성추행 했던 그 자체만으로도 문제지만, 피해자 중 한명은 사과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조직 내 2차 피해를 고스란히 입으며 방송계를 떠나야 했다는 점이다.

피해자 A씨는 자신의 제보를 계기로 더 이상 방송계에서 그 어떤 성범죄 피해자도 나오지 않길 바란다고 말한다. 김생민 성추행 사건은 김생민의 방송 하차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김생민 성추행 사건은 김생민 혼자만의 개인적인 일탈이 아니다. 김생민의 범죄 사실을 감추기 급급 했던 방송국, 프로그램 제작진에도 책임이 있다. 그리고 이것은 조직 내 성범죄를 대하는 한국 사회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최근 미투 운동의 본질 운운하는 분위기도 있지만, 미투 운동은 더 활성화 되어야 한다. 적어도, 10년 전 김생민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조직 내 2차 가해로 방송 일까지 그만두었던 피해자와 같은 사연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미투 운동에 힘입어 어렵게 자신의 아픔을 고백한 피해자들이 원하는 바는 한결같다. 더 이상 자신이 당했던 끔찍한 일이 재발되지 않는 것. 무엇보다도 피해자의 경력이 단절 되거나 격리 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것이 이 사회에 미투 운동이 꼭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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