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의 ‘버터(Butter)’가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6주째(7월 7일 기준) 1위를 지키고 있다. 지난해 ‘다이너마이트(Dynamite)’로 첫 1위를 기록한 이후 세 번째 1위 곡이자 가장 오랫동안 정상을 지키고 있는 곡이기도 하다. 빌보드 차트가 출간된 이래 1위로 데뷔해서 5주 이상 자리를 지킨 노래는 그전까지 열 곡에 지나지 않았다. 머라이어 캐리의 1995년 노래 ‘판타지(Fantasy)’를 시작으로 퍼프 대디, 엘튼 존, 레이디 가가 등이 그 주인공이었다. 비교적 최근에는 드레이크, 아델, 아리아나 그란데 같은 뮤지션들이 기록을 세웠다. 모두 솔로나 듀엣 가수다. 아델과 함께 2010년대의 영국 음악을 대표하는 에드 시런이 ‘버터’의 5주 연속 1위 기록에 괜한 축전을 보낸 게 아니다. 에드 시런을 대표하는 노래인 ‘셰이프 오브 유(Shape of You)’조차도 1위로 데뷔해서 5주 이상 자리를 지킨 기록은 세우지 못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BTS는 빌보드 역사상 처음으로 1위로 데뷔해서 5주 이상 1위를 차지한 최초의 ‘그룹’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그들의 행보가 세계 대중음악의 기록 하나를 갈아 치우는 중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다. 다음 정규 앨범을 낼 때, 1위로 데뷔하지 못하면 그게 뉴스가 될 상황이다.
먼 나라 얘기라 여겼던 영역이 우리와 큰 연관을 맺게 되면 그동안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던 면면이 드러나는 법. 지난해 ‘다이너마이트’의 핫 100 1위를 두고 여러 외신에서 관련 기사를 냈다. 그중 가장 눈에 띄었던 건 ‘포브스’의 보도였다. ‘포브스’는 이 업적의 의의를 “싸구려 상술 없이 자신들이 해오던 방식 그대로 동시대 서구 아티스트를 이겼다”며 BTS와 그들의 팬덤인 ‘아미’에 대해 말했다. “‘다이너마이트’를 구입하거나 스트리밍한 사람들에겐 허위가 없었다. 그들은 브랜드의 스웻 팬츠, 막대 사탕, 불꽃놀이 폭죽을 얻으려고 노래를 구입하지 않았다.” 요약하자면 핫100을 노리고 덤핑과 끼워 팔기가 만연한 팝 시장에서 BTS와 아미는 정공법으로 성과를 이뤄냈다는 상찬이다.
원더걸스, 싸이에 의해 빌보드가 아주 머나먼 얘기가 아니게 된 시점까지만 해도 빌보드는 음악 산업의 절대적 권위자와 동급처럼 여겨졌다. 시장을 유리처럼 투명하게 반영하는 존재로 생각돼왔다. 실제로 그렇기도 했다. 1950년대 이후 팝의 역사를 예술과 시장, 두 개의 관점으로 정리한 밥 스탠리의 명저 ‘모던 팝 스토리’에서 과거의 차트는 가치를 알려주는 지표로 활용된다. 하나의 위대한 노래가 동시대 차트에서 어떤 노래들과 겨뤘는가를 확인해줌으로써 장황한 수사 없이도 설명을 끝낸다.
하지만 빛이 있는 곳에는 어디나 어둠이 있는 법. 인간은 욕망의 동물이고 어떻게든 제도의 틈새를 찾아 자신의 욕망을 꽂아 넣기 마련이다. 미국 음악 차트의 역사에서 첫 조작의 시도는 1950년대에 있었다. 새로운 음악적 조류였던 로큰롤을 방송에서 적극적으로 틀며 흑인 음악을 백인 청년들에게 이식했던 앨런 프리드는 척 베리와 엘비스 프레슬리의 시대를 대표하는 DJ였다. 하지만 1959년 그의 커리어를 한 방에 끝내버리는 사건이 터진다. 그가 음반 회사에서 돈을 받고 특정한 곡을 틀어줬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이로 인해 그는 하원 청문회까지 섰으며 3만달러(약 3400만원) 뇌물 수수와 탈세 혐의로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 일련의 과정은 ‘페이올라(payola·돈을 받고 음악을 틀어준다는 뜻) 스캔들’이라 불리며 음악계의 불법적 뇌물, 또는 음악 시장의 검은손을 일컫는 대명사가 된다(지금은 그에 대한 탄압을 로큰롤이 퇴폐 문화라 여겼던 기성세대의 개입으로 보는 해석도 있다). 이 사건 이후 미국 연방통신위원회는 라디오 재생 횟수와 관련된 규제를 만들었다. 음악 산업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면서 투명한 시장을 위한 각종 장치와 기관들도 나타났다.
BTS는 지난 5월 미국 3대 음악시상식인 빌보드 뮤직 어워즈에서 4관왕에 오르며, 팀 사상 최다 수상기록을 다시 썼다. 사진 연합뉴스
BTS는 지난 5월 미국 3대 음악시상식인 빌보드 뮤직 어워즈에서 4관왕에 오르며, 팀 사상 최다 수상기록을 다시 썼다. 사진 연합뉴스
과거에는 음반과 방송이라는 단순한 지표만으로 차트를 집계했다. 하지만 다운로드를 거쳐 스트리밍, 유튜브와 틱톡 등 다양한 플랫폼과 미디어가 기존 음악 시장에 등장하게 되면서 상황이 많이 달라진 것처럼 보인다. 당장 올해의 상황만 봐도 우려할 만한 징후가 있었다. 미국 음악지 ‘롤링 스톤’은 래퍼 지 이지(G-Eazy)의 매니지먼트 팀이 지난 2019년 돈을 지불하고 스트리밍 횟수를 사는, 쉽게 말해 사재기를 했다고 보도했다. 사재기를 제안한 디지털 마케터는 지 이지 팀에 월 3만~5만달러를 받고 2억 회 이상의 스트리밍 횟수를 늘려주겠다고 했다고 한다. 몇 년 전 한국에서도 논란이 된 음원 사재기의 미국판이다. 스포티파이를 비롯한 유력 음원 업체들은 조작 행위를 강력하게 처벌하고 있지만 허점이 있다고 한다.
이런 명백한 불법이 아니더라도 합법의 틀 안에서 스트리밍 횟수를 끌어올리는 행위는 공공연하다. 발매하고 몇 주가 지나면 음원 가격을 할인하는 ‘음원 덤핑’이나 싱글 발매와 더불어 다양한 리믹스 버전을 내놓는 식이다. 영국 출신으로 빌리 아일리시, 아리아나 그란데와 함께 지금의 팝계를 이끌어가는 두아 리파가 지난해 발표한 ‘레비테이팅(Levitating)’은 약 20여 종의 리믹스 버전이 함께 나왔다. 왜 그럴까. 빌보드를 비롯한 해외 차트들은 리믹스 버전을 별도로 집계하지 않는다.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리믹스 버전을 듣는다고 해도 원곡을 들은 것으로 여겨진다. 리믹스 버전이 많을수록 차트 순위를 올리는 데 유리해진다.
전통적인 시각에서 보면 빌보드의 권위는 분명히 예전 같지 않다. 불법은 없어도 편법이 횡행하는 팝 시장에서 외신이 BTS의 성과를 높게 평가한 이유는 BTS와 그들의 팬덤이 이런 편법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이다. 이 말은 현재의 음악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성공 요소는 강력한 충성도를 가진 팬덤을 확보하는 것에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레거시 미디어와 대형 음반사라고 하는 중원의 지배자가 시장 영향력을 상실한 이후 춘추전국 시대가 열렸다. 뉴 미디어를 기반으로 기존의 시장 바깥에 있던 존재들이 중앙으로 치고 들어온다. 그 대표 기수가 BTS다. 덤핑, 리믹스, 나아가 사재기와 끼워팔기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션을 강력히 소비하고 지지하는 팬덤은 기존의 팝 패러다임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대중과 팬덤이 일찌감치 분리된 한국에서 탄생하고 세계로 퍼지고 있다. 빌보드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잡음, BTS의 판세 굳히기가 혼란한 풍경 위에 피어나는 새로운 질서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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