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행성에서 ‘비아’를 적으로 착각하지 말라
― 도전과 응전, 정반합, 그리고 한반도 중립국의 철학
인류는 한때 ‘승리’를 꿈꾸며 전쟁을 치렀다. 승리하면 더 나은 세계가 열릴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핵무기가 등장한 이후, 전쟁은 더 이상 승리를 보장하지 않는다. 전쟁은 곧 공멸의 다른 이름이 되었다. 이제 전쟁은 특정 국가의 승패가 아니라, 인류 전체의 생존 여부를 좌우한다.
1963년 6월, 냉전의 중심에서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는 이 사실을 정치의 언어로 끌어올렸다. 그가 미국 아메리칸 대학에서 남긴 이른바 ‘평화연설’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었다. 그것은 세계를 해석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선언이었다. 그는 말했다. 우리는 모두 이 작은 행성에 살고 있으며, 같은 공기를 마시고,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존재라고. 정치 지도자가 적을 악마가 아닌 인간으로 부른 순간이었다. 냉전의 문법에서 이 발언은 거의 금기였고, 그래서 더욱 급진적 인류지향 선언이 된다.
케네디가 겨냥한 것은 ‘전쟁의 상대’가 아니라 ‘전쟁이라는 사유 방식’이었다. 적을 제거해야 평화가 온다는 믿음은, 핵시대의 현실에서는 자살의 논리가 된다. 그러므로 케네디의 선언은 아름다운 도덕이 아니라 냉철한 진실이었다.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함께 살아남는 길 외에 다른 길이 없다는 진실.
그런데 인류가 이렇게 자주 전쟁이라는 결론으로 미끄러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생각보다 깊은 곳에 있다. 그것은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오래된 방식, 즉 아(我)와 비아(非我)의 구분에서 비롯된다. ‘나’와 ‘나 아닌 것’을 구분하는 힘은 존재의 기초다. 구분이 있어야 정체성이 생기고, 정체성이 있어야 성장도 가능하다. 문명 또한 마찬가지다. 문명은 늘 어떤 ‘비아’를 만나며 성장했다.
토인비는 이 구조를 ‘도전과 응전’이라는 말로 정리했다. 문명은 도전을 받고, 그 도전에 응전하며 발전한다. 이 응전이 바로 기술을 낳고, 제도를 낳고, 예술과 사상을 낳는다. 다시 말해, 문명의 진화는 늘 ‘비아’라는 타자와 함께 시작된다. 그 타자는 위협이기도 하고 자극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도전이 반드시 전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정반합의 논리는 더욱 분명하게 말한다. 정(正)이 있고 반(反)이 나타나면, 문명은 그것을 합(合)으로 끌어올리는 능력을 통해 성숙한다. ‘합’이란 굴복이나 제거가 아니라 승화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인류는 너무 자주 반(反)을 만나는 순간, 그것을 합으로 나아갈 재료로 보지 않고 제거해야 할 적으로 규정한다. 반을 적으로 오해하는 순간, 정반합은 발전의 계단이 아니라 파괴의 폭발물이 된다.
이때 생기는 것이 ‘해석의 오류’다. 원래는 문명을 발전시키는 구조를 전쟁으로 비화시키는 오류. 말하자면 문명은 자신이 가진 발전 논리를 스스로 뒤집어, 퇴행의 논리로 바꾸어 버린다. 정반합의 본래 목적은 전쟁이 아니라 인간의 확장인데, 인류는 그 과정을 너무 쉽게 ‘파괴의 정당화’로 해석한다.
이를 개인의 삶에 대입하면 더욱 선명하다. 인간은 성장하면서 수많은 비아를 만난다. 나를 부정하는 타인, 나를 밀어붙이는 사회, 나를 시험하는 고통. 그러나 그 비아를 모두 ‘적’으로 규정하는 사람은 성장하지 못한다. 세상은 적으로 가득한 정글이 되고, 삶은 공격과 방어의 끝없는 반복으로 피폐해진다. 반대로 비아를 ‘훈련장’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성숙한다. 고통은 의미가 되고, 갈등은 지혜가 된다. 결국 개인의 성장은 비아를 이해하는 방식에 달려 있다.
문명의 발전도 이와 다르지 않다. 개인의 발전단계를 확장하면 그것이 곧 문명의 발전으로 이어진다. 개인의 정신이 성숙하면 사회도 성숙하고, 개인의 해석이 폭력적이면 문명도 폭력적이다. 그러므로 비아는 적이 아니라, 나의 확장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다. 적이 아니라 거울이다. 그 거울 속에서 나의 한계가 드러나고, 그 한계를 넘어설 때 세계가 넓어진다.
따라서 우리는 이 작은 행성에서 아와 비아를 적대적으로 구분해서는 안 된다. 정확히 말하면, 구분 자체를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구분은 인간 존재와 문명의 성장에 필수적이다. 다만 구분을 적대와 전쟁으로 해석하는 오류를 멈춰야 한다. 비아를 나와 적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이 통찰은 한반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반도는 오랫동안 ‘구분의 땅’이었다. 남과 북은 서로 다른 체제와 삶의 방식으로 존재해 왔다. 하지만 비극은 그 구분이 ‘적대’로 굳어졌다는 데 있다. 정과 반이 합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파괴적 대립으로 멈춰 버린 상태. 바로 그것이 분단의 실체다.
이 지점에서 ‘한반도 중립국’과 ‘1국 2체제’는 단지 외교적 장치가 아니라 철학의 제도화로 읽힌다. 상대를 제거하지 않는 제도. 상대를 인정하는 정치. 흡수하지 않고 공존을 설계하는 구조. 정과 반이 무력으로 결론 나는 것이 아니라, 제도 속에서 합으로 나아가도록 길을 내는 장치가 바로 중립의 의미다.
케네디가 말했던 “작은 행성”의 진실은 결국 이런 말로 귀결된다. 전쟁으로 상대를 끝장내는 방식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남는 것은 두 가지뿐이다. 공존의 문명 혹은 자기파괴의 문명. 그리고 그 선택은 거대한 국제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비아를 어떻게 해석하는가의 문제다.
나는 이 말을 분명히 하고 싶다.
나와 비아는 나와 적이 아니다.
비아는 나를 위협하는 대상이 아니라, 나를 더 인간답게 만드는 거울이다. 작은 행성에서 살아남기 위한 문명의 최소 윤리이자, 최대 전략이다.
-만두의 객석, 권두안J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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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의객석13시간 전
신채호 ―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
아(我): ‘나(개인)’가 아니라 민족·국가·집단의 자아
비아(非我): 그 ‘아’를 위협하는 외부 세력(제국주의, 침략자) 또는 내부의 적(매국, 타락, 분열)
*핵심 주장:
역사란 아(我)가 비아(非我)와 싸우며 살아남고 확장해가는 과정이다. 민족이 생존하려면 투쟁을 통해 주체성을 지켜야 한다.
* 한 문장 요약:
“역사는 민족 주체(我)가 적(非我)과 싸우며 존재를 지키는 기록이다.”
만두의객석13시간 전
아놀드 토인비 ― 도전(Challenge)과 응전(Response)
문명의 성장 원리:
도전: 자연환경, 전쟁, 기근, 내부 혼란, 위기 등
응전: 그 위기에 대한 창조적 대응
*핵심 주장:
문명은 편할 때 발전하지 않고, 위기(도전)에 어떻게 응답하느냐에 따라 성장 또는 붕괴한다.
응전에 실패하면 문명은 퇴보하거나 몰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