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자의 소설, 천년의 사랑을 95년도에 읽고, 기쁜 마음으로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소설을 모두 읽고,
마무리가 좀 허전하게 끝난 것같은 느낌이 들어 결례를 무릅쓰고 사족(蛇足)을 달은 점을 송구 스럽게 생각합니다."
억압의 시대와 서사의 재구성 ― 양귀자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에 대한 비평적 재서사
권두안 (Duan Kwon, JD)
만두의 객석 / Los Angeles, CA
Ⅰ. 서론 ― 시대와 성의 경계 위에서
양귀자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1992)은 한국 문학사에서 보기 드문 여성
주체의 폭력적 서사로 기억된다. 이 작품은 1990년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 ―
가부장제, 성별 위계, 사회적 폭력 ― 을 정면으로 제기하며, 억압된 여성의 내면을 복수와
욕망이라는 감정적 폭발로 형상화한다.
그러나 본 평문은 이 작품을 단순히 ‘여성의 분노’나 ‘페미니즘적 선언’으로 읽지 않는다.
나는 이 작품이 1970년대 남성 작가 김홍신의 『장총찬』이 제시했던 사회적 분노를
‘여성의 몸을 통하여 다시 쓰려는 시도’로 이해한다. 즉, 양귀자는 70년대의 장총찬을
90년대의 강민주로 소환하여, 남성 중심 사회의 폭력 구조를 성 전환적 서사를 통해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Ⅱ. 본론 1 ― 사회적 약자로서의 여성과 시대의 굴절
1990년대 초반은 한국 사회가 산업화의 말단에서 신자유주의의 문턱으로 넘어가던
시기였다. 이때 여성은 여전히 사회적 약자였으며, 가부장제의 내면화된 순응 속에서
‘자기검열의 존재’로 살아가야 했다. 강민주는 바로 그 시대의 산물이다. 그녀는
상담소에서 여성 피해자들을 돕지만, 제도와 언어의 한계 속에서 구조적 폭력을 반복
목격한다. 결국 그녀의 폭력은 ‘복수’가 아니라 ‘표현의 불가능성’이 낳은 절망의 언어이다.
이 점에서 강민주는 장총찬이 체제에 대한 분노로 주먹을 들었던 것처럼, 여성의 신체와
감정을 무기화한 장총찬의 또 다른 형상으로 해석된다.
Ⅲ. 본론 2 ― 플롯의 허점과 인물의 비가시성
그러나 양귀자의 서사는 완벽하지 않다. 작품의 구조는 강한 주제의식에 비해 인물 간의
서사적 유기성이 약하다. 특히 김인수라는 인물은 강민주를 따라다니는 그림자임에도
이야기의 핵심적 동력으로 발전하지 못한 채 주변부로 밀려난다. 이는 서사의 긴장을
약화시키고, 결말의 비극성이 필연성보다 우연성으로 읽히게 만든다.
또한 남기와 강민주의 공조 관계 역시 충분히 설득력 있게 그려지지 않는다. 그들의
관계는 공범적 유대에 머무를 뿐, 인물 간의 심리적 이행과 도덕적 변증이 결여되어 있다.
따라서 강민주의 죽음은 상징적이되, 서사적 논리로는 허술하다.
Ⅳ. 본론 3 ― 대안적 결말과 서사적 정당성의 회복
필자는 본 작품의 결말을 ‘정당방위적 재서사’로 재구성하고자 한다. 원작의 자살 혹은
비극적 결말 대신, 강민주가 끝까지 주체성을 유지하며 폭력의 고리를 끊어내는
방식이다.
1. 백승하 납치 후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강민주와 남기는 제2의 은신처로 인질을
옮긴다.
2. 김인수가 집요하게 추적하며, 세 사람의 삼각 구도가 형성된다. 그는 의료기기
전문가로서 항상 정밀한 수술용 도구 ― 작은 메스 칼 ― 을 지니고 다닌다.
3. 남기의 폭주와 불안정한 판단으로 상황이 악화되자, 격렬한 몸싸움 끝에 김인수가
자신의 메스로 남기를 살해한다. 그 칼은 생명을 구하던 도구에서, 사회적 폭력과 광기를
절개하는 해부학적 상징으로 전환된다.
4. 김인수는 남기의 권총을 차지하여 상황을 통제하려 하지만, 이때부터 그의 이성은
무너지고 강민주에 대한 왜곡된 집착이 드러난다.
5. 백승하는 기사도의 본능으로 몸을 던져 김인수를 막아서지만, 그 충돌의 여파로 권총이
바닥으로 튕겨나간다. 강민주는 몸을 가릴 겨를도 없이 알몸의 상태에서 권총을 집어
들고, 김인수를 사살한다. 그것은 복수가 아닌 생존을 위한 마지막 정당방위의 행위였다.
6. 강민주는 스스로 경찰에 자수하며, 백승하는 법정에서 그 행위가 정당방위였음을
증언한다. 그녀는 자신의 재산 일부를 백승하에게 위로금으로 전해 그의 아내와 아들
준을 위해 사용해 달라 하고, 나머지는 사회적 약자와 폭력 피해 여성 복지에 사용해 달라
당부한다.
7. 백승하는 그 뜻에 따라 ‘강민주 여성복지재단’을 설립하여 운영하며, 강민주의 살인이
남긴 상처를 사회적 구원으로 승화시킨다.
8. 강민주는 불가에 귀의하여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어, 폭력의 순환을 끊고 중생을
위한 삶을 선택한다. 그녀의 해탈은 비극의 종결이 아니라 구원의 시작으로 읽힌다.
Ⅴ. 결론 ― 폭력의 해부에서 자비의 구원으로
이 대안적 결말은 원작의 한계를 넘어 폭력, 정당방위, 자비, 구원이라는 4단계의
변증법을 완성한다. 강민주는 더 이상 시대의 피해자도, 복수의 주체도 아니다. 그녀는
폭력의 언어를 해부하고, 그 피의 언어를 자비의 언어로 번역한 존재이다. 그녀의 삭발은
단순한 참회가 아니라 인간과 사회의 폭력 구조를 끊고자 한 최초의 의식적 구원
행위이다.
백승하는 기사도의 본능으로 인간의 윤리를 지켜낸 인물로, 증언자이자 실천가로
재탄생한다. 그가 설립한 재단은 강민주의 죽음이 남긴 고통을 제도적 자비로 승화한
산문적 기념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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