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데이 특집, 전문기자가 찾아낸 전국구 수타짜장 명가

글쓴이: boolbaek  |  등록일: 04.14.2022 11:44:26  |  조회수: 449

비록 지금이야 짜장면이 흔하디흔한 음식이지만 과거에는 특별한 날이나 먹는 음식이었다. 입학식이나 졸업식 날이면 동네 중국집마다 짜장을 볶는 냄새가 그득했으니까. ‘블랙데이’라는 날은 짜장면을 찾아먹는 재미를 누릴 수 있는 좋은 핑곗거리가 된다.

경향신문에서 ‘맛잘알’ 기자로 정평이 난 이명희 기자가 전국의 짜장 명가를 찾아서 연재한 ‘오늘도, 배부른 소리’에서 5곳의 정보를 추렸다. 문득 옛날 짜장면의 맛이 그리워질 때 찾으면 좋을 중국집이다. 수타로 면을 뽑고 옛날 방식 그대로 짜장을 만드는, 한마디로 제대로 된 짜장면의 맛을 볼 수 있는 곳을 지금 공개한다.


①경북 청송 ‘고향식당’

경북 청송군 청송읍에 70대 노부부가 운영하는 중국집 ‘고향식당’은 남편인 할아버지가 면을 뽑고, 부인인 할머니가 홀을 담당한다. 지역에서 마니아층을 확보한 맛집이지만, 그 흔한 블로그 리뷰도 찾아보기 힘들고, 언론 노출도 지역 신문에만 소개된 정도로 숨겨진 고수의 맛집이다.

수타는 2인분이 기본다. 주문을 받은 다음 바로 면을 뽑기 때문에 1인분은 주문이 안된다는 것이 식당의 원칙. 대부분의 중국집에서 수타면 같은 쫄깃함을 내기 위해 짜장면을 만들 때 소다라고 부르는 합성 첨가물, 탄산수소나트륨을 넣는데, 고향식당은 아무것도 넣지 않고 반죽한다고 한다. 덕분에 짜장면을 먹고 난 후 더부룩함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주문하고 약 20분 정도 시간이 걸려서 나온 짜장면. 수타로 쳐낸 면은 곱고 냉소다를 넣지 않고 반죽해 면이 새하얗게 빛났으며 굵기는 균일했다. 고명도 갓 볶아낸 것이었다. 센 불에 야채와 고기를 넣고 볶아낸 춘장에는 후끈한 불 맛이 남아 있었다. 야채가 신선하게 느껴졌다.


②충남 서천군 판교면 ‘동생춘’

수타면의 고수를 찾아 두 번째로 간 곳은 충남 서천군 판교면 현암리. 판교면은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홍성·논산과 함께 충남 3대 우시장이 섰던 곳이다. 그러나 우시장이 없어지면서 일자리는 사라지고 사람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옛 모습은 크게 변하지 않아 ‘시간이 멈춘 마을’로 불리는 이 마을에 노부부가 운영하는 중식당 ‘동생춘’이 있다. 수타면으로 꽤 알려진 식당으로 예능 프로그램 ‘수요미식회’에도 소개됐다.

주문과 동시에 백발의 할아버지가 주방으로 들어갔다. 면의 고수는 패션 감각이 남달랐다. 알록달록한 민소매 셔츠에 카고 반바지. 은발의 머리는 뒤로 묶었다. 팔뚝은 건장한 청년 못지않게 다부졌다.

드디어 짜장면 대령. 모두 우리가 흔히 보던 모습은 아니었다. 면은 하얗고 보들보들했다. 짜장면은 건더기라고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소스를 끼얹어 빈약했다. 면의 빛이 오히려 죽는 듯한 느낌이었다. 고춧가루를 달라고 했다.

“음, 그래도 먹을 줄은 아네”(할머니)

면의 고수 조용덕씨(78)는 11살때부터 중국집에서 일했다고 한다. 충남 예산의 화교가 하던 중국집 ‘동생춘(東生春)’에서 일을 배웠다. 그 가게가 없어지자 이름을 빌려와 1969년 판교로 와서 식당을 차렸다. 상호의 한자만 ‘東’에서 ‘同’으로 살짝 바꿨단다. 실내는 개업 당시 모습 그대로다. 면을 쳐대는 게 체력소모가 보통 큰일이 아닐텐데, 면을 치는 할아버지를 보니 여든 가까운 나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취미로 마라톤도 하고 있다고 했다.

동생춘의 메뉴는 간단하다. 짜장면, 짬뽕, 우동, 그리고 탕수육이다. 인근에 간다면 한번 들러 보시라. 해맑게 웃으며 면을 뽑는 고수가 있고, 무뚝뚝해보이지만 속은 다정한 할머니가 있어 마음까지 채울 수 있다.


③충남 공주시 이인면 ‘동신원’

충남 공주에 수타로 꽤 알려진 집이 하나 있다. ‘동신원’은 어린 시절 기억을 소환하는 중국집이다. 이인면 벽화마을이라는 안내글이 보이는 골목 입구에 요즘은 보기 힘든 ‘이인 이용원’이 있다. 이용원을 끼고 들어가면 골목 중간쯤 동신원이 있다.

여기서는 반드시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어봐야 한다고 해서 짜장면과 짬뽕, 탕수육을 주문했다. 오기 힘든 곳이니 수제만두 한 접시도 시켰다. 탕탕탕∼, 작업대를 울리는 반죽의 소리가 컸다. 규모가 크니 반죽의 양도 달라서인지 소리가 육중했다.


양해를 구하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작업대에서 하얗게 피어오르는 밀가루 사이로 이규혁 사장(72)이 반죽을 치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만 41년째라고 한다. 홀은 아들이 보고 있다. 주방은 면을 치는 뒷모습만 보이게 돼 있다. 돌아가서 보니 반죽의 양이 상당한데도 면을 뽑는 고수의 손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희끗희끗한 머리에 표정은 온화했다.

면은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좁은 주방에서 반죽을 치대고 화구에 불을 올린 다음 갓 뽑은 면을 삶아 짜장 소스를 얹으면 한 그릇의 짜장면이 완성된다. 탕수육을 먹는 사이 짜장면과 짬뽕이 나왔다. 짜장 소스를 비벼 무심하게 입에 넣었다. ‘후루룩’, 면은 기계로 뽑은 것과는 달리 부드럽고 슬슬 풀렸다. 오랫동안 알았던 맛이다. 굳이 맛을 표현하자면 유행에 휘둘리지 않은 맛이라고 해야 할까. 짬뽕은 갖은 채소와 해산물로 맛을 낸 깔끔한 스타일이다.

동신원이 있는 이인면은 KTX 공주역과 가깝고, 논산천안고속도로 바로 옆이라 접근성이 좋다. 어릴 적 동네 중국집이 생각난다면 한번 가보시라. 어차피 ‘생애 최고의 짜장면’은 모두의 마음 속에 있다.


④충북 영동 학산면 ‘선미식당’

지금도 수타만을 고집하는 오래된 중국집이 충북 영동 학산면에 있다. 최근엔 유튜버와 인플루언서들 사이에서도 유명해진 이 곳의 이름은 ‘선미식당’. 1982년에 문을 열어 지금까지 똑같은 음식을 같은 자리에서 팔고 있다. 이 집을 지키는 건 박래인 사장(73)과 그의 부인이다. 박 사장이 면을 뽑고, 부인이 서빙과 주방 일을 하고 있다.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 도착한 선미식당은 대로변에 있어 눈에는 잘 띄지만 폐업한 집으로 알 정도로 허름했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니 흑백 영화 속 세트장에 들어선 듯했다. 기름때가 눅진한 바닥과 비닐 테이블보를 깐 테이블, 1970년대 각 가정에 하나 정도는 있었던 찬장, 낡은 나무 의자가 있는 풍경이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손님은 없었다. 짜장 둘, 짬뽕 하나를 주문했다. 온 김에 이것저것 맛보고 싶었지만 고기 짬뽕 맛집이라고 해서 짬뽕까지 주문을 했다.

외출에서 돌아온 할아버지가 주문을 확인하더니 반죽을 꺼냈다. 반죽에는 물 말고는 아무것도 넣지 않는다고 한다. 면의 고수는 힘들이지 않고 반죽 덩어리를 내리치고 늘리고 반으로 접고 다시 내리치고 늘렸다. 몇 번 반복하지 않은 듯 한데 어느새 가늘고 긴 면이 모습을 드러냈다. 128가닥이라고 한다. 반복할수록 면은 얇아진다. “잠깐만요”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새하얀 면은 그대로 끓는 물에 들어갔다.

짜장면은 미끄덩거리지 않았다. 탄력 있는 면발에 소스가 순하고 달지 않았다. 맛이 평범하면서도 특별했다. 고추, 호박 등 야채는 직접 농사를 지은 재료를 사용한다. 짬뽕에는 해물보다 고기가 듬뿍 올라가 있다. SBS <생활의 달인>에도 나온 선미식당 짬뽕의 비결은 ‘볏짚으로 숙성한 고기’라고 한다.

1970년대 면을 뽑는 기계가 들어오면서 중국집들은 너도나도 편리한 기계면을 썼다. 하지만 박 사장은 수타면을 고집했다. 20년전 쯤 선미식당도 기계를 들여놓은 적이 있다고 한다. 할머니는 “2번 정도 기계를 돌려서 면을 뽑았는데 손님들이 면이 맛없다고 하더라”면서 “그래서 다시 수타로 바꾼 후 지금까지 손으로 면을 뽑고 있다”고 했다. 당시 25만원 주고 구입한 기계는 고물상에 가져다 주고 두루말이 휴지 2개를 받아 왔다고 한다. 그는 “수타가 힘든데 누가 하려고 하겠냐”면서 “우리도 언제까지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⑤제주 제주시 ‘송림반점’

제주 원도심. 삼도2동에 있는 ‘송림반점’은 제주 사람들에겐 추억 어린 식당이다. 1950년대 화교가 처음 장사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제주 토박이라면 어린 시절 한번쯤은 가봤던 추억이 있으리라.

남루한 건물에 빛바랜 간판만큼 역사도 길다. 3명의 사장을 거쳐 지금의 주인장이 1979년부터 이 가게를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 60여년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허름한 중국집에서 노부부가 음식을 만든다. 언뜻 시간이 멈춘듯한 공간이 중년에게는 향수를, 젊은 층에는 독특함을 불러일으킨다.

사실 송림반점은 수타 반죽을 쳐 면발을 뽑아내는 집은 아니다. 수타는 아니지만 자가제면 방식으로 직접 면을 뽑는다고 해서 찾아가 보기로 했다. 전국에 면장들이 손으로 면을 뽑는 곳이 거의 사라진 마당에 조금 양보하기로 한 것이다.

송림반점은 수타 고수들이 운영하는 여느 중식당처럼 노부부가 운영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 이 곳의 주방장은 부인이다. 남편이 홀 서빙을 한다. 어느새 허리가 약간 굽은 할아버지가 상을 차리고, 주방에선 할머니가 덜그럭 덜그럭 춘장을 볶고 탕수육을 튀겨 낸다.

간짜장은 윤기가 잘잘 흐르는 면에 반숙 계란 프라이가 올려져 나온다. 고명으로 얇게 썬 오이를 올리고 깨를 뿌려냈다. 그 위에 갓 볶아낸 소스를 부었더니 옛날식 면과 잘 어우러졌다. 송림반점의 주방장은 특이하게 간짜장에 깻잎을 넣는다. 그래서인지 독특한 향이 느껴진다. 간짜장은 짜지 않고 순한 맛이었다. 계란국과 함께 나온 볶음밥도 밥알이 살아 있었다. 송림반점의 음식은 모두 양이 많고 간이 자극적이지 않아 먹고 난 후에도 속이 더부룩하지 않았다. 게다가 값도 싸다.

이 집의 면은 다른 중국집보다 가늘다. 언제부턴가 대부분의 중국집에서 공장에서 생산된 중화면을 당연한 듯 사다 쓰고 있지만 송림반점은 반죽을 해서 직접 뽑는다. 수타는 아니지만 자가제면 방식으로 만드는 면에 대한 자부심도 있다.

송림반점은 제주 공항에서 멀지 않다. 식당 바로 앞에 차량 몇대 정도 세울 수 있는 공간이 있고, 바로 옆에 공영주차장도 있다. 오전 11시30분에 문을 열고 오후 4시30분쯤 문을 닫는다. 재료가 떨어지면 일찍 문을 닫을 수도 있으니 전화를 해보고 가는게 좋다. 제주까지 가서 하필 중국집이냐고 하겠지만 가보면 안다. 간짜장 한그릇에 마음이 차오른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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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 다 먹고싶네요ㅠ
수타짜장 정말 맛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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