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당시(唐詩)의 아름다움을 말할 때, 대부분 ‘조발백제성’의 순식간에 만 겹의 산을 지난 가벼운 배로 시작하거나 백제성에 감도는 오색구름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경주이과만중산(輕舟已過萬重山)'의 뒤에는 이백의 비통함과 두려움이 숨겨져 있다.
이백은 만년에 영왕(永王) 이린(李璘)과 같이 일을 하여 그 결과 반군세력에 발을 디딘 것으로 되어 죽을 죄를 범하게 되었다. 759년 이백은 사형에서 유배로 바뀌어 야랑(夜郎)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당시 이백의 여생은 그 황량한 땅에서 보내게 되었는데, 다시 조정의 사면령이 내려졌다. 이때 이백은 유비가 죽어가며 자식을 부탁한 백제성에 있었다.
생명을 보존하고 자유의 몸이 되었다. 인생의 가장 귀중한 두 가지를 얻었는데 이것과 비교해 무엇이 대수겠는가?
이로 인해 이백의 눈에 백제성의 상공에는 온 하늘이 오색구름이었다. 서둘러 강릉으로 가니 천리의 거리는 하루 여정에 불과하고, 양쪽 언덕의 원숭이 소리는 시인의 행복한 탄성이며 만 겹의 푸른 산은 가벼운 배의 속도를 기록하는 수치이다.
수많은 고난을 겪고 비로소 '천리 길 강릉을 하루 만에 돌아오고(千里江陵一日還) 가벼운 배가 이미 만 겹의 산을 지났다(輕舟已過萬重山)'라는 싯구를 지었는데 날아갈 듯 후련한 가장 경쾌한 싯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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