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은 희망을 뭐라고 생각했나

글쓴이: 한마당  |  등록일: 06.07.2024 12:47:59  |  조회수: 775
중국 근대문학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작가 루쉰의 소설 ‘고향’에서
그는 희망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알아보고,우리의 희망도 한 번 찾아보 도록 하겠습니다.

루신(魯迅) / 고향(故鄕)

희망이란
원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다.  원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게 곧 길이 되는 것이다.

希望是本無所謂有  無所謂無的  這正如地上的路
其實地上本沒有路  走的人多了  也便成了路

이렇게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것이 희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어둡고  깜깜한 밤을  더듬더듬 걸어가면 반드시 새벽을 지나  여명의 시간이 온다는 것을  우린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희망입니다.

희망은 우리를 살게 하지만, 이루지 못하는 희망은 고문이며, 실체가 없는 희망은 허망한 신기루입니다.
희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능력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 후에 부단한 노력으로 희망을 이룰 수 있는 적합한 방법과 시간을 찾아 슬기롭게 준비해야 합니다.

물은 99.9도에서는 절대로 끓는 법이 없습니다. 반드시 임계점(critical point) 100도에 도달해야 끓는 것입니다. 그 임계점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임계질량(critical mass)인데,임계질량이란 우라늄이나 플로토늄과 같은 핵물질이 핵연쇄반응의 과정에서 스스로 폭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질량을 말합니다.

자연과 사람에게 적용되는 임계질량은 '누적된 시간과 경험'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챨스 다윈의 진화론이나 리차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1976), 눈 먼 시계공(1986)에서 자연의 선택의 작용과 유전자의 역활을 강조하며, 생명체의 다양성과 복잡성이 우연과 필연의 조합을 통해 발전해 왔음을 설명하고, 그들은 '누적된 시간과 경험'을 바탕으로 자기들에게  생존하기 유리한 쪽으로 진화한다는 이론이 진화론입니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진화된 유전자를 후세에 전달되도록  기를 쓰는 것이  이기적 유전자의 본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이루고 싶은 것을 이루기를 원하지만 인내심이 부족하고 미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없기 때문에 거의 중도에 포기하고 맙니다. 조금만 더  '누적된 시간과 경험'을 투자했더라면 이룰 수 있는 것이었을텐데요.
 
위에서 언급한  냄비의 물에 비유를 하면, 물은  80~90도 정도에서, 99.9도에서도  절대로 끓지 않는다. 반드시 100도가 되어야 끓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은  최선을 다했지만 끓지 않았다고  불평을 하고 포기를 하는 것입니다. 거의 다 왔는데도 미래에 대한  자신의 믿음에 확신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일이면 이루어질 것을  오늘,그 문턱에서 포기를 한 것입니다.

중국의 고사 성어에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열자 탕문편에 나오는 4자성어입니다. 글자 그대로 옮기면  결국'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라는 뜻입니다. 

노인은 자신이 사는 동네에 큰 산이 버티고 있어서 시장에 가려면 산을 돌아서 가야하기 때문에 한 번 시장을 보기 위해 1달의 시간을 허비해야 했습니다. 노인은 이를  시간 낭비라고 여겼고,불편하게 여겨 산을 뚫어 길을 내려고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동네 사람들은 그 노인을 비웃으며  그 삽으로 산을 옮긴다고 옮겨지겠나 하며 '우공이산'이라고 놀렸습니다.   

하지만, 노인은 묵묵히 삽을 들고 산을 파서 옮기는 일을 실행을 했고,계속 팠습니다. 산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것이지만 나는 삽으로 파기 시작했기 때문에 언젠가는 산에 길이 뚫릴 것이라는  확실한 신념으로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만일,내가 하다가 못하면 내 아들이 할 것이고,  아들이 하다가 못하면, 손자가 계속 삽질을 할 것이기 때문에 산은 반드시 옮겨진다고 믿었습니다. 이를 지켜본 산신령이 산이 다 파헤쳐져서 없어지기 전에 스스로 반으로 나누어 산을 옮겼다해서 나온 유래입니다.

행지도(行 之 到)

행동하여 걷기 시작하면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말입니다.

주변에는
늘 행동을 취하지도 않고 탁상공론(卓上空論)만 일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탁자 위에서 이론만 따지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실행하지 않는 세태를 비판하는 4자성어가 탁상공론입니다.

콜롬버스가 그랬듯이,
우리는 배를 타고 큰 바다를 건너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욕망을 가지고 배를 만듭니다. 배는 항구에 묶어 놓았을 때가 가장 안전하지만, 배를 항구에 정박하기 위하여 만드는 사람은 없습니다.   

배는 넓고 깊은 바다를 안전하게 항해하여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폭풍우가 몰아치고, 거센 파도가 배를 덮쳐도 누적된 시간 속에서 배운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얻은 지혜를  동원하여  나침반을 가지고 방향을 잡기도 하고, 어두운 밤에  별빛에 의지하기도 하고, 멀리서 빛을 비추는 등대를 보고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찾기도 합니다.   
배가 가는 여정은 항해(航海)라 하고, 사람이 가는 여정은 인생(人生)이라고 합니다.  물론,도전하려는 용기가 부족하거나 다양한 삶의 경험과 지식에서 얻은 지혜가 없다면 선뜻 길을 떠나기 어렵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일생동안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고  단 한 번도  주인인 갑(甲)의 인생을 살아보지 못하고,  종(從)인 을(乙)의 인생을 살면서 생을 마감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습니다.’

과감히 자신의 우물에서 뛰쳐나와 발을  힘차게 딛을 ‘순간의 선택’을 할 때 비로서  또 다른 세상으로 가는 길을 가게 되고 발전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자신이나  인류문명이나 진보(進步)하지 못하면  발전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머물게 되고 결국 퇴보(退步)하는 것입니다.

진보(進步)란 무엇인가? 글자 그대로, 한 발자국 먼저  새로운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는 것을 말합니다. 
보수(保守)란 무엇인가?  글자 그대로, 예전에 하던 대로 하고, 지키자는 것입니다.

정치 판에서는 이분법으로, 진보와 보수를 두 파로 가르고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려 드는 못된 자들과 언론에 의하여 그 뜻이 변질되어 진보는 좌파,빨갱이요, 보수는 우파, 우리편인 속칭 그들의 민주주의(?)라고 우기고 싸우게 된 것이 현실입니다.

진보는 구태(舊態),과거에  하던 옳지 못한 행동양식에서 벗어나자는 것이고, 보수는  그저 하던대로 그대로 그 자리에 머물자는 것입니다. 기득권층의 자리지키기로 이해를 하면 됩니다.

이렇게 안주하는 태도는 옳지 못하다고 여겨
사자성어에도 온고지신(溫故知新)과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온고지신은 "옛 것을 익혀서 새로운 것을 안다."는 뜻이고,
법고창신은 "옛 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뜻입니다.

옛 것의 바탕 위에 새로운 것을 알게되면 그것을 통섭의 식탁에서 비벼 결국 새로운 것을 만들게 된다는 뜻입니다.
통섭이란 장르를 뛰어 넘는 것을 말합니다.

통섭이란 에드워드 윌슨이 주장한 개념인데요. 서로 다른 분야의 다양한 지식이 연결되어 통합된 접점이 있기 때문에 종합적이고 통일된 관점에서 지식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을 의미합니다.

에드워드 윌슨이  consilience라고 한 것을 생태학자 최재천 박사가 통섭으로 번역을 했습니다.

음악에서 그 비유를 찾아보면 서양음악과 국악과의 만남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서양음악이나 국악이나 그 독창성을 잃지 않고 고유의 영역을 넘어 해석하고 연주하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추세를 통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언가 고집스럽게 만들어 무겁게 눌러 놓은 것을  옮기고,파괴하여 재창조하지 못하면, 새로운 베토벤이나 모짜르트. 스티브 잡스의 싻이 움틀 토양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나는 가야금의 명인 황병기 명인을 통해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요한 파헬벨의 캐논( Johann Pachelbel Canon in D)을 가야금으로 연주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부단한 노력으로 그 꿈을 현실화시켰다고 봅니다. 이것을 진정한 진보의 한 예로 볼 수 있겠습니다.

“크든 작든 간에 다른 자의 이익을 위한다 하여, 자신의 이익을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자기의 참다운 이익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았다면 최선의 노력으로 그것을 성취하시기 바랍니다.”

희망을 갖지 않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희망을 버리는 것은 죄악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2005년 스탠포드 대학교 졸업식에서 한 연설 중 마지막 메세지를 전하면서 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
“갈망하라,무모하라!! 그렇게 살라!!

                                                  -로스 엔젤레스, 萬 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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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한마당  3달 전  

    루쉰의 희망

    https://www.youtube.com/watch?v=DwAsBM5CKtM

  • 한마당  3달 전  

    스티브 잡스, 스탠포드2005 졸업연설

    https://www.youtube.com/watch?v=msJFZdU6rrI

  • 한마당  3달 전  

    황병기 캐논
    https://www.youtube.com/watch?v=WqJLtaMHw94

  • 앤드리따  3달 전  

    맞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보수와 진보의 대립의 역사입니다.
    기존의 질서를 지키려는 사람들, 새로운 생각으로 도전하는 사람들, 이 두 가지 양립한 존재들이
    서로 생존을 걸고 치열한 대립을 하면서, 역사의 수레바퀴가 돌아갑니다.

    천동설 vs 지동설,  왕정 vs 시민의회,  필림카메라 vs 디지털 카메라, 내연기관 vs 전기 자동차...
    새로운 것, 익숙하지 않은 것은 불편합니다. 그러나 밀려오는 파도를 우리가 어쩌지 못하는 것 처럼,
    저항해도 소용없는것 처럼... 언젠가는 다 바뀌게 되있습니다.

    수세기동안 전세계를 지배했었던 Kodak 왕국이 있었습니다.
    필름 말고도, 인화지, 약품, 현상/인화기계들, 건물마다 하나씩 있었던 40분 현상소, 20분 현상소 프랜차이즈들...
    이런 기존의 인프라를 다 버리기 아까워서, 디지털카메라를 최초로 발명해 놓고도, 하루이틀 미루다가...
    지금은 코닥이란 제국 자체가 먼지처럼 사라졌습니다.

  • 앤드리따  3달 전  

    말씀하신대로 진보는 좌파, 빨갱이, 보수는 우파, 우리편이라는 잘못된 현실입니다.

    우리나라 보수는 친일권력에서 시작됩니다, 이승만정권에서도 권력을 유지해온 친일파들이,
    친일파 청산을 주장하는 진보를 좌파라고 매도하면서 좌파 vs 우파의 구도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니까 당시 진보를 좌파라고 낙인찍던 사람들이 정작 자신들은 뼛속까지 친일파였던거죠.

    우파를 보통 자국 지상주의, 내셔날리즘, 민족주의자들을 말하고, 더 나가 파시즘으로 가는데,
    대한민국의 우파는 아주 노골적인 친일 입니다. 우리 민족의 이익이 아니라 일본의 이익을 우선합니다.

    지금은 뉴라이트란 이름 아래, 친일을 정당화 하고, 역사를 왜곡합니다.
    엄마부대 주옥순은 자기 딸이더라도 종군위안부로 보낸다고 하고...
    전광훈은 "일본 수상 아베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귀싸대기를 때리라"고 했습니다.

    친일에 민족은 없고, 민족주의자는 친일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보수는 있어도, 우파는 없다.
    적어도 보수는 우파가 아니다.

  • 한마당  3달 전  

    공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 앤드리따  3달 전  

    이미 다 알고 계시는 내용일 텐데요, 수다방에 보면 모르시는 분들도 계시는것 같아서...
    현학의 허세 부끄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