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사건 또는 박정희 대통령 피격 사건(朴正熙大統領被擊事件), 궁정동 사건(宮井洞事件)은 1979년 10월 26일에 대한민국의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가 박선호, 박흥주 및 안가 경비원들과 함께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하고, 차지철 경호실장, 정인형 대통령 경호처장, 안재송 대통령 경호부처장, 김용섭 대통령 경호관, 김용태 대통령 경호실 차량운행계장 등을 살해한 사건이다
1979년 10월 26일, 대통령 박정희는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과 KBS 당진 송신소 개소식에 참석한 후 궁정동 안가에서 경호실장 차지철, 비서실장 김계원,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와 함께 연회를 가졌다. 연회 중에 박정희는 김재규의 총에 가슴과 머리를 맞았고 곧 국군 서울 지구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이송 중 사망하였다. 당시 박정희의 나이는 만 62세였다
김재규는 사건 직후 자유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위헌적으로 국회를 해산시켰던 박정희 대통령을 정의의 이름으로 처단하였다고 주장하였으나, 권력 암투 과정에서 김재규가 차지철에 밀리는 상황이었고 이에 김재규가 충동적으로 일으킨 범행이라는 설,또는 1972년 유신정권 또는 선포 직후부터 7년동안 장준하와 함께 쿠데타를 준비해 왔다는 설이 있으며, 박정희 정권의 핵개발 추진과 박동선의 코리아 게이트 사건 등으로 한미 관계가 악화되자 미국 정부가 김재규를 통해 박정희의 시해를 은밀히 조장했다는 견해 또한 존재한다
카다피, 후세인,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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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 방문을 마치고 어제 돌아왔습니다.앞서 윤 대통령이 얼어있던 한일 관계를 풀겠다며 내놨던 건 가장 민감한 현안이었던 강제동원 배상 해법이었습니다.정부는 대승적 결단이라고 했고, 일본은 환영했지만, 강제동원 해법만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회담장에서 또 다른 청구서를 내민 겁니다.2015년 위안부 합의를 이행하라고 요구했고, 독도 문제도 꺼냈다고 일본 정부가 밝혔습니다.대통령실은 공식 논의된 바는 없다고 했습니다만만만찮은 후폭풍이 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