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그릇을 발로 차서 엎고,정중히 모셔 왔습니다.

글쓴이: 한마당  |  등록일: 04.29.2023 22:26:11  |  조회수: 1410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어디로 가나...존립(存立)마저 불투명해졌다.

백척간두(百尺竿頭) 에 선 풍전등화(風前燈火)신세

권기훈
3시간  ·
< 한러 밀월의 종언 >

문재인 정부가 끝나가던 2021년말, 한국 언론에 간헐적으로 러시아와의 밀월을 다룬 기사들이 보도된 적이 있다.
러시아의 극동과 북극 개발에 한국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전망하는 기사였는데, 이는 러시아의 동서 균형발전, 북극권 해운과 물류의 선점을 위한 목적과 한국의 유라시아 대륙 진출 목적이 맞아 떨어진 결과였다.

당시 시점에서 가정을 했을 때, 만약 한국에서 민주정권이 이어지고, 한러 양국의 청사진대로 사업이 진행되었다면, 2025년경 러시아는 극동의 내부 불안 요소를 잠재우고 북극 항로 거점 확보, 베링해협을 통한 유라시아와 북미대륙의 육상물류 연결망을 준비하는 단계에 이를 수 있었다. 주로 천연자원과 수산물 수출에 편중된 경제적 불균형을 물류허브 제공을 통해 보완하여 안정적 경제기반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였던 셈이다.

한국으로서도 러시아의 캄챠카 반도 해운운송 거점도시 건설과 야말프로젝트의 확대, 북극해 연안의 거점 항구도시 개발, 동시베리아의 거점도시 건설과 천연자원 개발 기회 획득으로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만들 중요한 분기점을 맞이할 수 있었다.

러시아가 한국과 긴밀한 협력을 추구하는 것은, 확장주의와 지역패권을 노리는 중국을 완전히 믿을 수 없고, 일본과는 역사와 영토분쟁이라는 껄끄러운 상황에 더해 해양 패권국인 미국의 동아시아 핵심거점이라는 점이 있는 반면, 한국은 무력충돌 위험이 없고 한러(한소) 수교 이후 오랜기간 협력을 이어온 흐름이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러시아는 한국에는 지역 개발과 투자를 권유한 반면, 중국에는 투자보다는 즉시성이 있는 물자거래에 초점을 맞추고 일본과는 필수적인 거래 외에는 거리를 두는 전략을 고수했다.

러시아가 2022년 2월 전격적으로 우크라이나에 침공하면서 이 흐름에는 급제동이 걸리게 된다. 미국과 서유럽을 중심으로 러시아에 경제제제를 결의하면서, 러시아의 제안을 받아서 관계부처에서 다방면으로 준비하고 있던 여러 계획들이 보류처분을 받은 것이다.

이후 2022년 3월 한국 대선에서 민주진영이 패하면서 한러의 밀월은 사실상 사형선고를 받은 셈이 되었는데, 2023년 4월에 들어서 현 정권이 우크라이나에 탄약을 우회지원했다는 것이 폭로되고 한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이를 정당화하는 발언을 하면서 러시아의 '교전국'으로 분류되어 완전히 종언을 고하고 말았다. 급기야 러시아의 동방정책 이전부터 오랜시간 러시아에 투자하고 제조업을 이끌어온 한국 기업들의 철수라는 현실을 맞이했다.

건조하게 복기해본 한러관계를 미국과 일본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좀더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
미국은 세계 유일 패권국으로서, 표면적으로 평화롭고 온건한 관계를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철저히 힘과 필요의 논리에 입각한 관계를 추구하며 '잠재적'인 패권 경쟁자는 절대 용인하지 않고 성장의 발판을 부숴버린다. 그것은 동맹국일지라도 가차없는데, 이는 과거 한 때 미국의 그늘 아래에서 세계 경제를 주름잡고 첨단기술에서 미국을 추월할 조짐을 보이던 일본이 프라자합의를 기점으로 '잃어버린 30년'을 맞으며 완전히 몰락해버린 것으로 증명된다.

미국은 러시아를 군사적인 면에서 현실적인 경쟁자로 인식하고 있고, 경제적인 면에서 중국을 경쟁자로 인식하고 있다. 패권유지를 위해 중러 양국의 핵심 동력을 빼앗고 성장기회를 무산시키기 위한 전략을 추구하는데, 표면적으로는 외교적인 대립이나 분쟁으로 나타나지만, 이면에서는 파괴공작이나 국가간 대리전을 유도하기도 한다.

러-우 전쟁을 통해 러시아의 재래식 전력 대부분이 소진되었고, 한국의 투자를 가로막으면서 러시아의 경제적인 부흥 기회를 빼앗았다. 러시아 입장에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은 사실상 외통수에 가까운 필연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정당하다는 말은 아니다) 북해를 가로지르는 노르드스트림 해저 가스관이 폭파되고 우크라이나가 자국을 지나가는 러시아 가스관의 벨브를 잠그면서 러시아의 경제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가스수출이 위협을 받은 경제적 요인에 더해, 우크라이나가 NATO에 가입하는 절차를 진행하면서 러시아의 수도권이 중단거리 미사일의 직접적인 타격 범위에 들어가는 군사적인 위협을 받은 것이 결정타였다.

러-우 전쟁은 당사국간에 국한해서 보자면 외교적 갈등과 군사적 위협이 원인으로 보이지만, 국제관계 전반을 놓고 보면 미국과 서유럽의 이익과 연결된 지점들이 다수 발견된다. 미국의 대전략에 의한 유도된 결과로 보는 것이 지나친 비약일까?
일본은 고착화된 정치환경으로 인해 사회 전반의 활력이 떨어지고 생산력이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점차 후진국으로 밀려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한국에 문재인정부가 출범하고 기존의 종속적인 한일관계를 벗어나 독자적인 노선을 추구하면서 이 흐름이 더욱 가속화된 경향이 있는데, 일본으로서는 '악몽같은 5년'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한러관계가 양국간의 장밋빛 청사진대로 진행된다면 일본으로서는 부흥하는 대륙에서 밀려난 외톨이 주변국으로서, 천천히 몰락해가는 자신들과 비교하여 나날이 전혀 다른 차원으로 도약하는 대륙국가들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을 것이다.

일본의 입장에서 한국의 유라시아 대륙진출 청사진은 자신들의 자체 역량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방향이었기 때문에, 경쟁을 통해 우위에 서는것은 애초에 선택지에서 제외되었고, 한국의 계획을 어떤 식으로든 무산시키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지였다.

한국의 수구정권 출범은 미일에게 있어서 러시아의 부상을 억제하고 독립노선의 길을 엿보는 한국을 주저앉히는 결정적인 기회로 읽혔고, 정권 출범후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현실화 되었다.
넓은 시야로 조망하면, 러-우 전쟁의 승전국은 미국과 일본이고 패전국은 러시아와 한국, 그리고 우크라이나이다. 서유럽과 중국은 그 전쟁의 혼란 중에 실리를 챙기는 기회를 얻었다.

재주넘는 곰을 바라보는듯한 시선으로 '괴뢰국'을 대하는 미국과 자국의 경제식민지로서 한국을 대하는 일본. 비록 외통수에 걸려서 침략전쟁을 일으킨 것으로 일정부분 피해를 자초한 책임이 있다고는 하지만, 판 자체를 엎어버린 한국을 원망하는 러시아. 그리고 미일 앞에 굴종하며 제국주의 전략의 장기말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수구정권과 그 세력들.
현 정권이 임기를 다 채우고 끝난다면 앞으로 남은 4년여의 시간 뒤에 무엇이 남아있을까?

* 관련자료 *
- [한국일보] 러시아의 또 다른 고민 '극동'... 한국, 극동 개발 파트너로 부상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1122710220002081
- [KIEP] 푸틴과 러시아 극동개발 20년 : 한-러 극동 협력 심화를 위한 新방향 모색 https://www.kiep.go.kr/gallery.es?mid=a10101010000...
- [KOTRA] 러시아 극동지역 개발 현황과 한국의 협력방안 http://dl.kotra.or.kr/.../c16960f0-0014-018a-e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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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한마당  04.29.2023 22:34:00  

    백척간두(百尺竿頭) 
    백 자나 되는 높은 장대 위에 올라섰다는 뜻으로, 몹시 어렵고 위태로운 지경을 이르는 말.

  • 한마당  04.29.2023 22:35:00  

    풍전등화 (風前燈火) 
    1. 바람 앞의 등불이라는 뜻으로, 사물이 매우 위태로운 처지에 놓여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2. 사물이 덧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